주유소가 자체 브랜딩 통해 하절기 기준 맞춰야

동절기용과 1:1 혼합해도 산술적으로 기준 맞춘다는 보장 없어

기준 적합 확인도 불가능, 회전율 낮은 주유소 단속에 무방비 노출

[에너지플랫폼뉴스 지앤이타임즈]주유소에서 판매되는 휘발유의 증기압 기준 위반으로 적발되는 주유소가 매년 증가 추세이다.

휘발유 증기압 법정 기준이 변경되는 하절기 적발이 절대적으로 많은데 과잉 단속이라는 불만이 적지 않다.

다른 법정 품질 기준과 달리 주유소가 자체적으로 브랜딩 작업을 통해 증기압 수치를 맞춰야 하는데 그 과정을 거치고도 증기압 법정 기준을 충족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는 점에서 검사 당국이 적발 실적을 올릴 수 있는 타깃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관련 업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한국석유관리원이 국회 김삼화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휘발유 증기압 부적합으로 적발되는 주유소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15년 119곳이 적발됐는데 2017년에는 192곳으로 늘었고 지난 해에는 10월까지 194곳이 단속됐다.

<자료 : 김삼화 의원실>

석유사업법령상 휘발유 증기압 기준을 위반하면 1회는 경고 조치에 그치지만 2회 위반 부터 3개월 영업정지, 3회 위반시 6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휘발유 증기압의 법정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자동차나 환경에 큰 위해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세금 탈루를 노린 가짜휘발유 처럼 주유소 사업자가 부당 이득을 취할 수 구조가 아니라는 점에서 단속과 처분이 과도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 주유소가 감(感)으로 품질 기준 맞춰야…

석유사업법에서는 휘발유 증기압 기준이 계절별로 구분되어 있다.

동절기나 하절기 모두 최저점은 44kPa에 맞춰져 있는데 다만 상한 기준은 계절에 따라 바뀐다.

직전 해 10월에서 이듬해 4월 까지의 동절기에는 최고 기준이 96kPa, 7월부터 8월까지의 하절기에는 60kPa로 낮춰 적용된다.

이와 관련해 정유사들은 하절기 법정 기준이 적용되기 이전인 5월 이후 부터 증기압 최고 기준을 낮춘 하절기용 휘발유를 계열 주유소에 공급한다.

동절기와 하절기 사이 2개월의 변절기 동안 주유소가 직접 휘발유 브랜딩을 통해 증기압 기준을 맞출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동절기용 휘발유가 팔려 나가는 사이에 주유소에서 증기압 최고점이 낮은 하절기용 휘발유를 구매해 채우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지하 석유 저장탱크에 보관된 휘발유가 희석되며 증기압이 하절기 기준에 맞춰질 수 있다는 논리이다.

증기압 기준이 변경되는 7월 직전에 휘발유 탱크를 모두 비우고 새 스펙의 휘발유를 채우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만 이 경우 동절기에 팔고 남은 휘발유 재고 처리 방식, 영업 연속성이 제한받을 수 있다는 점 등에서 대부분의 주유소들이 자체 브랜딩을 통해 휘발유 증기압 기준을 맞춘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문제는 주유소가 감(感)으로 직접 휘발유를 브랜딩하며 품질 기준을 맞추는 작업을 벌여야 하고 그 과정을 거친 이후에도 법정 기준 충족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한 정유사 품질 담당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주유소에서 휘발유 증기압을 떨어뜨리는 유일한 방법은 동절기와 하절기 제품을 섞어 희석시키는 것인데 두 제품을 1:1로 섞는다고 혼합 비율 만큼 증기압이 산술적으로 낮춰지는 것이 아니어서 변절기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브랜딩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그렇다고 주유소 사업자 입장에서 하절기용 기준을 충족했다고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영업이 부진해 재고 소진이 늦는 주유소들은 제품 회전율이 낮아 휘발유 브랜딩을 거친다고 해도 지하 저장탱크에 동절기용 휘발유가 남아 있는 경우가 적지 않아 단속에 걸리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증기압 위해성 연구 없이 단속만 몰두' 지적도 제기

휘발유 증기압이 높아지면 휘발성이 높아질 개연성은 있다.

증기압이 높은 휘발유를 기온이 높은 여름철에 주유하면 엔진 내부에 과도한 증기가 발생해 엔진기관에 연료가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는 ‘증기 폐색’ 현상이 나타나고 유해가스 배출 증가나 엔진 정지 등의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이같은 현상이 유발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것이 전문가의 설명이다.

정비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여름철 엔진에 베이퍼 록 현상이 발생하면 시동이 걸리지 않는 등 일부 증상이 있을 수 있지만 자주 생기는 일은 아니며 관련 현상이 발생하면 연료펌프에 찬 헝겊을 덮는 등 간단한 조치를 해주면 해결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석유 품질 관리 전문 기관인 석유관리원에서는 휘발유 증기압이 자동차 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분석 자료가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회 김삼화 의원실은 석유관리원에게 실증 연구 자료 등을 포함해 휘발유 증기압 품질 부적합시 자동차 및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물었는데 ‘관련 연구자료 없음’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김삼화 의원실 질의에 대한 석유관리원 공식 답변 자료(자료 : 김삼화 의원실)

여름철만 다가오면 동절기용 휘발유에 하절기용 제품을 섞어 가며 품질 기준을 맞추는 번거로운 작업을 반복해야 하고 이중에서 품질 기준을 맞추지 못해 200곳 가까운 주유소들이 적발되며 행정처분 위기에 내몰리고 있는데도 석유관리원은 증기압 기준 위반이 자동차 등에 어떤 위해를 가하는지에 대한 기초적인 연구 자료 조차 확보하지 않고 단속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는 지적이 가능한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석유관리원은 주유소 순회 교육이나 서면 안내문 발송 등을 통해 증기압 기준 위반을 방지하기 위한 계도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주유소 업계에 따르면 휘발유 증기압 기준이 적용되는 7월이 시작되면 석유관리원에서 즉각적으로 단속에 나서면서 적발 건수가 늘어나는 경향이 크다는 입장이다.

특히 주유소들이 주기적으로 석유관리원에 보고하는 석유 거래 상황 데이터를 분석해  휘발유 판매량이 적은 업소 즉 휘발유 판매 회전율이 낮아 증기압 기준을 맞추기 위한 브랜딩이 어려운 업소를 중점적으로 단속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되는 실정이다.

실제로 2017년 휘발유 증기압 기준 위반으로 총 192개 주유소가 적발됐는데 이중 81%에 해당되는 157건이 7월에 집중됐다.

이에 대해 주유소협회 심재명 팀장은 “휘발유 증기압이나 경유 유동점 처럼 주유소가 자체적으로 법정 품질 기준을 맞출 수 밖에 없는 경우에도 기준에 어긋나면 품질 부적합으로 적발되는 사례가 많은데 이 경우도 소비자들은 가짜석유 취급 같은 중대한 범죄로 인식해 적발된 주유소가 불필요한 오해를 사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심재명 팀장은 또 “휘발유 증기압이나 경유 유동점 등 계절별로 품질 기준이 다르게 적용되는 것은 주유소의 영업을 어렵게 하는 과도하고 불합리한 규제로 정확한 연구 등을 통해 4계절 동일한 품질기준을 적용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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