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부터 하절기 기준 적용, 주유소가 자체 혼합해 맞춰야
동절기 재고 소진 어려운 영세 주유소, 단속에 무방비 노출
석유관리원, ‘유증기 발생 높아져 폭발 위험성 커진다’ 원론적 해명

[에너지플랫폼뉴스 지앤이타임즈]국내 유일한 법정 석유 품질 관리 기관인 한국석유관리원이 하절기 휘발유 증기압 품질 검사 과정에서 적발 실적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주유소 사업자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휘발유 휘발성 지표인 증기압 법정 기준이 계절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면서 기준 변경 시점을 맞추지 못할 경우 품질 부적합으로 사업정지나 과징금 등의 행정처분을 받게 된다.

이와 관련해 주유소 사업자들은 석유관리원이 독점적인 단속 권한을 활용해 갑질 단속에 나선다는 입장인데 석유관리원측은 품질기준 엄수가 사고 예방과 직결된다며 원론적인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경기도 모 시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A씨는 최근 휘발유 증기압 법정 기준 위반으로 적발돼 처분을 받았다.

이와 관련해 A씨는 “석유관리원이 실질적으로 해결이 불가능한 상황을 문제 삼아 횡포를 부리고 있다”며 “석유관리원의 현재 단속패턴으로는 일선 주유소들이 휘발유 증기압 기준을 맞추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변절기(變節期)에 바뀌는 휘발유 증기압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 품질 부적합으로 적발돼 처분 받는 사례는 적지 않으면서 정유사 차원에서도 계열 주유소에 석유관리원 단속에 대비한 관리 지침을 주문할 정도다.

정유사 차원에서 휘발유 증기압과 관련한 계절별 기준 변경에 대비해 관리 철저를 주문하는 공문을 계열 주유소에 매년 발송하고 있지만 여전히 적발은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정유사 직영 주유소까지 증기압 기준 위반으로 단속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미지는 한 정유사가 계열 주유소에 증기압 관리 관련해 발송한 공문. 

문제는 지속되는 주유소 업계의 경영난으로 판매량이 적어 재고 소진이 어려운 주유소들은 변절기 품질 기준을 정확하게 준수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대목이다.

◇ 주유소가 재고 관리로 품질 기준 맞출 수 밖에…

‘증기압’은 휘발유의 휘발성의 나타내는 단위로 석유사업법령상 기준은 44~82kPa를 유지해야 한다.

다만 7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 적용되는 하절기용은 44~60kPa, 10월부터 다음 해 4월까지 적용받는 동절기 기준은 44~96kPa를 충족해야 한다.

하절기 증기압 기준 상한선을 낮게 유지하는 것은 높은 기온속에서 유증기가 다량 발생할 경우 폭발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석유관리원은 지난해부터 주유소들을 대상으로 휘발유 증기압 단속을 실시하고 있는데 적용 시점에 맞춰 증기압 기준을 낮추지 못하면 영업정지 등 불이익을 받게 된다.

계절에 맞춰 증기압 기준을 준수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저장탱크를 모두 비우고 기준에 맞춘 새 제품을 채워 넣는 것인데 제한된 저장탱크로 영업을 지속해야 하는 한계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결국 비하절기용 휘발유 재고 잔량에 하절기 증기압 기준을 맞춘 휘발유를 섞어 법정 기준에 맞게 조정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유일한 방법이다.

하지만 영업이 부진해 재고 소진이 늦는 영세 주유소들은 비하절기용 휘발유를 처리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주유소 자체적으로 증기압이 서로 다른 휘발유를 혼합해 하절기용 기준을 맞추는 과정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언제든지 품질 기준 부적합으로 적발될 위험에 노출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증기압 점검에서 적발된 주유소 사업자들은 석유관리원이 하절기 품질 기준이 막 적용되기 시작한 7월 초에 단속에 나올 경우 현실적으로 법정 기준을 맞추기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정유사들은 하절기 기준에 맞는 약 55 kPa 증기압 휘발유를 5월 경 부터 주유소에 공급하는데 재고 회전율이 좋지 않은 주유소들의 경우 7월까지 동절기용 휘발유를 소진하기 어려워 하절기용 휘발유와 섞이게 되고 단속 시 기준초과로 처벌받게 되는데 대부분의 주유소가 처한 현실이라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휘발유 재고 회전율이 좋은 도심지역보다 회전율이 좋지 않은 외곽지역의 주유소들이 단속에 걸릴 확률이 더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단속에 대비해 동절기용 휘발유 재고를 대부분 소진한 상태에서 하절기용 휘발유를 채우더라도 석유 저장탱크 구조상 불합격 처분을 당할 개연성이 상존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주유소 지하 저장탱크와 연결돼 석유를 입출고하는 배관이 아랫 방향이 아닌 옆면에 설치되어 있어 잔량 휘발유를 모두 빼내려 해도 탱크 하부에는 어쩔 수 없이 기존 석유 제품이 남아 있어 법정 기준을 위반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A씨는 “7월 초에는 동절기 휘발유 재고량을 소진하기 어렵기 때문에 주유소 대부분이 기준초과로 단속에 걸릴 것”이라며 “심지어 정유사 직영 주유소도 걸리고 있는데 하절기 증기압 기준이 적용되기 시작한 7월초에 단속하게 되면 10군데 중 8군데는 기준 미달로 적발될 것”이라고 말했다.

◇ 휘발유 유증기압, 여름철 폭발 가능성 커… 석유관리원

석유관리원 단속 과정에서 고압적인 자세도 주유소 사업자들의 항의를 받고 있다.

A씨를 비롯해 증기압 기준 미달로 적발된 사업자들은 품질이 다른 휘발유를 혼합해 기준을 맞추는 과정의 어려움을 단속반원들에게 설명했지만 ‘관리를 잘하면 될 것 아니냐’며 ‘관리부실의 책임은 주유소 사장들에게 있다’는 무책임한 답변을 들었다는 주장이다.

석유관리원이 석유 품질관리 전문 기관인 만큼 하절기 증기압 관리 지침을 알려 달라는 요청에 대해서는 ‘유류탱크에 남아있는 휘발유를 다 들어내고 청소하라’, ‘봉인하고 하절기가 끝나는 9월 1일까지 판매를 하지 말라’는 등 황당한 답변만 내놨다고 밝혔다.

사실이라면 1년 365일 영업해야 하는 주유소 현실은 무시한 채 증기압 단속에 적발되지 않기 위해 휘발유를 팔지 말던가 하절기용 품질 기준 적용이 끝날 때 까지 저장탱크를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 석유관리원 단속 과정에서 제시한 해법인 셈이다.

이에 대해 A씨는 “석유관리원이 실질적인 해결책을 내놓지도 못한 채 단속이란 명목으로 주유소에게만 과징금, 영업정지 등 무거운 책임만 지우고 있다”고 실적 위주 점검 행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단속 시점을 늦춰줄 것으로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석유관리원은 주유소 편의를 위해 국민 생명을 담보로 맡길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기화점이 낮은 휘발유는 기온이 상승하면 유증기가 다량 발생해 폭발 위험성이 커지고 특히 1년 중 가장 높은 온도를 기록하는 7~8월 경에는 폭발 위험성이 몇 배가 된다는 것이 석유관리원 측의 설명이다.

석유관리원 측은 일부 주유소들이 불이익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기간 조정 등 휘발유 유증기 단속방법을 변경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석유관리원 관계자는 “휘발유 물량 회전율이 낮은 주유소들이 동절기 물량을 소모하지 못해 불이익이 발생하더라도 가장 기온이 높아져 폭발 가능성이 커지는 7~8월 경에는 반드시 유증기압 단속을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A씨가 주장했던 ‘무책임한 답변’과 관련해서는 일부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한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단속 시 휘발유 탱크가 봉인 돼 있으면 소비자에게 판매하지 않는다고 간주해 시료를 채취하지 않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석유관리원은 각 주유소들이 꾸준한 물량관리를 통해 7월 전까지는 대부분의 동절기 물량을 소진하고 하절기 용 휘발유를 공급받는 5월부터 7월까지 물량을 회전시키면서 석유사업법이 정하는 적정수준의 유증기압을 맞춰야 한다는 입장인데 영업난으로 문을 닫는 주유소가 한 해 수백곳에 달할 정도로 경영 위기를 겪고 있는 주유소 업계가 자체적으로 품질 기준이 다른 휘발유를 혼합하고 재고 관리를 통해 기준을 맞추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해결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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