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공공자금기금에 수조원 예탁, 곶감 빼먹 듯 회수해 바닥

세출 대비 올해 1조7천억 적자 메우려 전력산업기반기금도 손대

내년 3조1천억 규모 재정 적자 예산 편성, 무공해차 보급 3조 지원

에너지 수급·가격 안정, 전력 공급 확대 등 본래 회계 취지 어긋나

에특회계 재원이 무공해차 보급 사업에 투입되면서 적자 재정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주유소에서 주유 중인 차량 모습.(사진은 특정 기사와 무관함)
에특회계 재원이 무공해차 보급 사업에 투입되면서 적자 재정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주유소에서 주유 중인 차량 모습.(사진은 특정 기사와 무관함)

[에너지플랫폼뉴스 김신 기자]석유, 가스 소비자에게 징수되는 각종 부과금으로 조성된 에너지자원개발특별회계(이하 에특회계)가 적자 재정으로 전환됐다.

세출 대비 세입이 절대적으로 높아 한 때 조 단위 잉여 자금을 공공자금관리기금에 예탁해 한 해 수천억원의 이자 수익을 기록했었지만 환경부의 무공해차 보급 지원 예산이 크게 늘어나면서 올해부터 적자를 기록중이다.

환경부 무공해차 보급 사업에 징수 취지와 무관한 전력산업기반기금까지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에특회계는 ‘에너지 및 자원사업 특별회계법’에 근거해 에너지 수급과 가격 안정, 에너지 자원 관련 사업의 효과적인 추진을 위해 마련된 특별회계다.

에특회계 수입은 석유사업기금, 석탄산업육성기금, 석탄산업안정기금, 에너지이용합리화기금, 해외광물개발기금, 가스안전관리기금 등 산업통상자원부 소관인 에너지 관련 부문에서 징수된다.

걷힌 재원은 에너지 자원 안보나 안전 확보, 재생에너지 보급 등에 투입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에특회계 중 산업부 관련 지출은 매년 줄고 있고 환경부로 이관되는 액수는 크게 증가중으로 대부분이 무공해차 보급 확산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 에너지 소비자에 한 해 조 단위 준조세 징수하지만…

에특회계는 석유수입부과금, 석유판매부과금, 가스안전관리부담금, 광해방지부담금 같은 법정부담금을 주요 수입원으로 삼고 있다.

석유, 가스 가격 등에 원천 부과되는 사실상의 준조세인데 매해 2조원 가깝게 걷히고 있다.

산업부에 따르면 2021년에는 1조6,234억원이 걷혔고 올해는 1조6,500억원, 내년에는 1조,8213억이 징수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중 석유 기여도가 절대적으로 높은데 석유수입부과금 징수액은 2021년 1조2,981억원을 기록했고 올해는 1조2,900억원, 내년에는 1조4,533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LPG 부탄과 고급휘발유에는 석유판매부과금이 징수되고 있는데 역시 한 해 2천억원 내외가 걷히고 있다.

산업부가 출자한 공기업 배당 수입, 공공자금관리기금 예탁금 이자 등도 에특회계 수입원에 포함되지만 기여도가 크지 않다.

이들 재원을 바탕으로 산업부는 내년 에특회계 예산을 올해 보다 14.3% 증액한 5조9,116억원으로 편성했다.

하지만 에너지 주무 부처인 산업부에서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은 1조9.699억원에 그치고 있다.

세부 사업으로는 해외자원개발특별융자 1,754억원, 비축유 구입 672억, 신재생에너지 금융지원 4,173억, 각종 에너지 안전 관련 분야에 2,594억원 등이 편성되어 있다.

반면 환경부 관련 사업 예산으로 3조2,808억원이 책정됐다.

에너지 소비자에게 징수된 에특회계 전체 예산 중 55.5%에 해당되는 금액을 환경부에서 사용하는데 대부분이 전기·수소차인 무공해차 보급 지원에 투입된다.

에특회계 세입 중 산업부에  배정되는 비중은 매년 줄고 환경부 관련 예산이 급증하는 것도 무공해차 보급 지원 사업 때문이다.

2019년 6조원 규모의 에특회계 세출 중 산업부 관련 사업에 4조3,941억원이 사용됐고 환경부 관련 예산은 9,498억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후 산업부 예산은 계속 줄었고 올해는 첫 역전되며 산업부에 배정된 예산은 1조8,698억원, 환경부에 2조,6309억원이 투입중이다.

에특회계에서 무공해차 보급 지원에 투입되는 예산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9년 환경부 무공해차 보급·충전인프라 구축 예산은 8,594억에 그쳤는데 매년 증가해 내년에는 3조,2591억원을 기록하며 연평균 39.5%의 증가율을 기록중이다.

[국회예산정책처]
[국회예산정책처]

◇ 흑자 재정, 무공해차 보급 지원 늘며 적자 전환

지난 해까지는 세출 보다 세입이 많아 에특회계가 흑자 운영됐다.

이 때문에 산업부는 잉여 자금을 공공자금관리기금에 예탁해 왔는데 올해는 적자 재정으로 전환됐다.

여유 재원이 고갈됐기 때문인데 올해는 약 1조7천억원, 내년에는 3조1천억원 규모의 재정 적자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에특회계 잉여 재원을 예탁해놓은 공공자금관리기금 잔액도 2019년 이후 지속적으로 줄고 있는데 환경부 무공해차 보급 지원 예산을 본격적으로 확대한 시점과 맞물린다.

2019년 기준 산업부가 에특회계 예산을 공공자금관리기금에 맡겨 놓은 금액은 4조1,080억원에 달했다.

[자료 : 국회예산정책처]
[자료 : 국회예산정책처]

하지만 이후 매년 예탁액은 줄고 기금에서 회수하는 금액도 2조원을 넘기며 잔액은 빠르게 감소중이다.

올해는 기금 예탁이 아예 없었고 4,632억원만 회수해 에특회계 예산에 반영하면서 현재 남은 기금 잔액은 805억원에 그쳤다.

불과 3년 사이 공공자금관리기금에 맡겨 놓은 에특회계 잉여 재원 4조원이 고갈된 셈이다.

더 심각한 것은 전력산업기반기금까지 끌어 오고 있다는 점이다.

전력산업기반기금은 전기사용자에게 전기요금의 3.7%에 해당되는 부과금을 징수해 조성한 재원으로 올해는 2조816억원, 내년에는 2조5,894억원이 징수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정부가 전기 소비자에게 전력산업기반을 징수하는 이유는 전력산업 발전과 기반 조성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전기사업법에 따르면 전력산업기반기금은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 지원, 전력수요 관리사업, 도서·벽지 전력공급 지원, 전기안전·전기재해 예방 등에 사용하도록 못박고 있는데 올해 에특회계 예산에 전력산업기반기금 1조3,118억원이 전입됐다.

내년 역시 정부가 편성한 에특회계 세출을 맞추기 위해 세입 대비 약 3조1천억원 규모의 재정 적자가 예상되면서 공공자금관리기금에서 1조7천억원 규모를 빌려 오고 전력산업기반기금에서 또 다시 1조3,074억원을 편입해 맞춰야 한다.

[자료 : 국회예산정책처]
[자료 : 국회예산정책처]

◇ 회계 징수는 산업부, 예산 집행은 기재부

에너지 소비자에게 징수해 법에서 정한 용도로 사용하도록 규정되어 있는 특별회계나 기금이 환경부 소관인 무공해차 보급 사업에 전용되고 있고 관련 회계가 적자 편성되는 배경에는 기획재정부가 최종 예산을 편성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에너지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에특회계를 운용·관리하고 있지만 환경부 등 타 정부 부처로 이관되는 에특회계 예산은 기획재정부에서 최종 심의, 편성하고 있어 산업부가 예산을 통제·관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환경부 소관인 무공해차 보급 사업에 투입되는 예산을 에특회계로 충당하면서 천문학적 적자가 발생중이고 이를 보전하기 위해 전력산업기반기금까지 사용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문제는 산업부가 공공자금관리기금에서 끌어온 예수금은 일정 기간 경과 후 상환해야 하고 예수금 이자도 부담해야 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예수금 이자로 올해 27억원, 내년에는 442억원이 편성됐다.

에특회계 재원이 다른 부처의 특정사업에 편중되면서 에너지 공급·수요관리, 안전, 에너지 전환 등의 고유 사업에 투입될 예산이 제한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회예산정책처는 ‘(에특회계 재정 적자 등을 야기하는) 무공해차 보급 사업 예산을 일반회계나 환경개선특별회계로 이관하는 방안을 재정당국과 협의하는 등 에특회계의 중장기적 재정 안정성을 제고하기 위한 근본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휘발유, 경유 소비자로부터 한 해 15조원 규모를 징수하는 교통에너지환경세입 중 3%가 에특회계로 전입됐던 것이 2014년 이후 중단된 것도 현재의 적자 재정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교통에너지환경세입 중 3%가 산업부 에특회계에 의무 편입돼 에너지 자원 관련 사업에 투입되도록 규정되어 있었는데 석유수입부과금 등 에너지 소비자에게 징수한 세입이 에특회계 세출 보다 많은 흑자 재정을 기록한다는 이유로 정부는 에너지자원사업특별회계법 규정을 고쳐 일반회계에 사용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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