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랜1.5, 배출권거래제 4차 계획기간 앞두고 총체적 개선 방안 발표
실질 유상할당 비율 4.38% 불과…다배출업종 유상할당 실시해야 

[에너지플랫폼뉴스 박병인 기자] 배출권거래제 4차 계획기간(2026~2030년)의 이행을 앞두고 정부는 올해 ‘제4차 배출권거래제 기본계획’을 수립할 예정인 가운데 기후환경단체 플랜1.5는 10일 ‘배출권거래제 제4차 계획기간 개편방안’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의 주요내용은 ▲배출허용총량 ▲유상할당 ▲시장안정화조치 ▲상쇄 등 배출권거래제 4차 계획기간의 주요 쟁점에 걸쳐 개선방향을 총체적으로 제시했다. 

◆배출허용총량
보고서는 우선 1차(‘15~’17), 2차(‘18~’20) 계획기간을 거쳐 현재 운영 중인 3차 계획기간(‘21~’25)에도 주요 다배출기업이 남아도는 배출권을 팔아서 막대한 수익을 얻고 있는 문제를 지적했다.

플랜1.5는 2015년 배출권거래제가 도입된 이후 포스코 등 10개 다배출기업이 배출권 판매수익으로 약 4747억원을 벌어들였다고 추산했다. 이처럼 잉여 배출권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이유는 배출허용총량이 느슨하게 설정돼 왔기 때문이다. 

현행 할당계획에 따르면 배출허용총량은 국가 감축목표(NDC)를 기준으로 산정된다. 국가 부문별·연도별 감축목표의 감축 후 배출량에 ETS 적용대상 비중(국가 배출량 대비 EST 적용대상 배출량 비율)을 곱해 부문별·연도별 배출허용량을 산출하고, 이를 합산하여 전체 계획기간 배출허용총량을 산출하는 방식이다. 

올해 4월에 수립된 탄소중립 기본계획은 부문별·연도별 감축목표를 느슨하게 설정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감축 부담의 75%를 현 정부 임기 이후인 ‘28~’30년으로 미뤘고 산업부문의 부문별 감축목표를 기존(△14.5%, 2021년 NDC 상향안)보다 대폭 후퇴(△11.4%)시켰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현행 방식에 따라 국가 부문별·연도별 감축목표에 연동해 배출허용총량을 산정할 경우 4차 계획기간의 총량은 25억2700만톤 수준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며 배출권거래제의 고질적 병폐인 느슨한 총량의 문제가 4차 계획기간에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현행 방식에서 벗어나 배출허용총량을 더욱 빠르게 축소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30년 부문별·연도별 감축목표에 따라 ‘30년 배출허용량을 산정하고 ‘26년부터 ‘30년까지 연도별 배출허용량을 선형으로 감축하는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이러한 시나리오에 따르면 4차 계획기간 동안 연도별 배출허용량의 선형감축률은 4.8%가 되고, 현행 방식에 대비해 전체 배출허용총량을 1억톤 가까이 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유상할당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배출권 무상할당 비율을 정할 때 탄소 배출에 가격을 부과하는 국제사회의 기후위기 대응 동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과거에는 다배출업종에 배출권을 공짜로 할당해 탄소누출을 막고자 했지만 기후클럽과 같이 글로벌 탄소가격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EU CBAM과 같은 탄소무역장벽이 등장하는 시대적 변화에 대응하려면 유상할당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취지이다. 

현행 유상할당 비율은 법정 최저수준인 10%로 설정돼 있다. 그러나 환경부의 ‘감축기술 혁신에 따른 배출권거래제 발전방안 연구’에 따르면, 3차 계획기간의 실질 유상할당 비율은 4.38%에 그쳤으며 특히 산업부문의 실질 유상할당 비율은 0.48%에 불과했다. 이는 산업부문 배출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철강, 정유, 석유화학, 반도체, 디스플레이, 시멘트 등 주요 다배출업종(탄소누출업종)에 대해 정부가 배출권을 전부 무상할당했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우선 전환부문의 유상할당 비율을 100%로 상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환부문은 상대적으로 한계감축비용이 저렴하고 감축 잠재량이 높다. EU, 미국 RGGI, 캘리포니아, 캐나다 퀘벡 등 해외 주요 배출권거래제는 전환부문의 유상할당 비율을 100%로 설정하고 있다. 보고서는 전환부문 100% 유상할당은 배출권 가격 정상화, 전력 믹스 개선, 경매 수입 증가 등 다양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전환부문의 유상할당 비율을 높이면 전력생산단가가 상승해 전기요금이 오를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보고서는 최근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전환부문 100% 유상할당에 따른 전기요금 상승분을 약 9.79원/kWh으로 추산한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최근 2년간 누적된 전기요금 인상분이 51.0원/kWh(‘22년 19.3원/kWh, ‘23년 31.7원/kWh)에 이르는 점을 감안했을 때, 전기요금 인상 수준은 우리 경제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판단했다.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를 통해 전력믹스가 개선되고 전환부문 배출량이 감소하면 유상할당 확대로 인한 전기요금 상승 요인은 더욱 줄어들 수 있다고 봤다. 

보고서는 산업부문에서도 4차 계획기간에 현행 10%인 탄소비누출업종의 유상할당 비율을 단계적으로 상향하고 전부 무상할당 대상인 탄소누출업종의 유상할당을 개시할 것을 제안했다. 

산업부문 배출량이 배출권거래제 시행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증가해 온 문제를 개선하고, 탄소누출에 대한 글로벌 대응방향이 변화하는 상황에 대응하려면 산업부문에도 유의미한 탄소가격을 부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감축 수단과 기술이 마련됐으나 제도적인 유인이 부족한 특정 배출활동(반도체·디스플레이 불소계 가스, HFC 등)에 대해서는 별도의 할당계수를 적용해 추가적인 감축을 유도해야 한다고 적었다.

◆시장안정화조치
국내 배출권 가격은 ‘20년 초반 4만원 선을 돌파한 이래로 지속적으로 하향했으며 ‘23년 7월에는 7.020원을 기록하며 최저치를 갈아치웠다.

이에 대응해 정부는 ‘23년 9월 이월제한 완화 등의 조치를 담은 ‘배출권 거래 시장 활성화 방안’을 내놓았다. 정부 발표 이후 배출권 가격은 잠시 만원 이상으로 오르는 듯했지만 ‘24년 1월 현재 다시 8000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보고서는 적정 탄소가격을 형성하려면 배출권 가격 하락의 근원적 병인인 느슨한 배출허용총량과 낮은 유상할당 비율을 우선적으로 손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현행 시장안정화조치는 세부기준이 공개되지 않고 자의적으로 운영돼 투명성과 예측가능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하며 가격 안정성을 담보하는 명시적인 가격상하한제를 도입할 것을 제안했다. 

이미 뉴질랜드, 미국 RGGI, 캘리포니아 등이 정부 재량권을 배제하고 배출권 가격에 근거하여 공급량을 조절하는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보고서는 우리나라도 가격상하한제를 도입하여 예측가능한 수준에서 적정 탄소가격을 유지함으로써, 할당대상업체들이 중장기적으로 한계감축비용을 평가하고 비용효과적인 감축사업에 투자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밝혔다. 

◆상쇄
보고서는 외부사업을 통해 확보한 감축량을 배출권으로 전환할 수 있는 상쇄 제도와 관련해서도 개선방향을 제시했다. 

외부사업 등록 건수나 상쇄배출권 발행량을 보면 제도가 활성화돼 있는 것으로 보이나, 실제로는 ‘12년 이전에 등록돼 이미 추진 중인 국내 CDM 사업이 전체 상쇄배출권 발행량의 76%를 차지하고 있다. 

국내 CDM 사업은 실질적으로 배출권거래제 시행 이후 추가적인 감축을 발생시키지 않은 셈이며, 오히려 상쇄배출권 발행량만큼 할당대상업체의 추가 배출을 허용하게 되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정부가 4차 계획기간에 상쇄배출권 사용 한도를 5%에서 10%로 확대할 것을 고려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고서는 상쇄 제도가 국가 감축목표 달성에 실질적으로 기여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현행 한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적었다. 

또한 정부 보조금 지원 사업, 국책사업, 추가성이 매우 낮은 사업, CDM 재활용 사업 등 부적격 사업들을 전수 조사해 외부사업 승인을 철회해야 한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대표적인 부적격 사업의 예시로 한국전기연구원의 SF6 회수 사업이 10년의 유효기간이 종료된 이후에 사업 방식을 ‘SF6 재생 및 판매’에서 ‘SF6 파괴’로 일부 변경하여 재승인을 받았으며 이러한 외부사업 승인 과정에서 사업의 재활용에 대한 면밀한 검증이 진행되지 못한 사례를 언급했다. 

플랜1.5의 최창민 변호사는 “정부도 주요 다배출업종의 유상할당 제외, 산업부문 배출권 과잉할당으로 인해 기업의 감축 유도가 미흡했다는 문제를 이미 인식하고 있다”며 “올해로 10살이 된 배출권거래제가 4차 계획기간을 맞아 느슨한 배출허용총량, 낮은 유상할당 비율과 같은 근원적 문제를 개선하고 2030 NDC 달성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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