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건설경기 하락과 산업단지 대기업 철수로 경기침체 심각
판매량 적고 주유소 과포화에 알뜰 참여로 주유소 시장 경쟁 심화
임대 주유소 매입해 계열화로 몸집 늘려 최저가 경쟁…‘대판’ 경쟁주도
경쟁 막기위해 주유소 늘렸지만 결국엔 가격인하 주도하며 ‘괴물’로
알뜰공급가·현물가격 보다 낮은 가격에 판매…정상적 판매는 생존 불가

▲ 경영난으로 주유소 운영을 포기하고 임대로 내놓은 주유소
▲ 경영난으로 주유소 운영을 포기하고 임대로 내놓은 주유소

[에너지플랫폼뉴스 정상필 기자] 전국에서 경쟁이 가장 치열한 대구 주유소 시장에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대형 판매점, 일명 ‘대판’이 등장해 지역 시장을 하고 있다.

그동안 석유시장에 등장했던 대판들은 대형 딜러라 불리며 덤핑 물량을 집중 매입해 주유소 시장에 공급하던 현물대리점들을 부르는 말이었다.

그런데 최근 대구시장에 등장한 ‘대판’은 석유대리점이 아닌 일반 주유소 사업자들이 공급자가 아닌 자신 또는 배우자 명의로 주유소 수를 늘려 몸집을 키운 주유소를 일컫는 말로 변모했다.

정유사와의 거래에서 주유소 1곳 보다는 2~3곳을 운영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이득이 크다는 것은 이미 정설이 된 말이다.

하지만 오너 1명이 5~6곳의 주유소를 운영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그런데 대구 주유소 시장에는 본인 소유 주유소는 1~3곳 정도 운영하면서 나머지 4~7곳은 임대형태로 운영하고 있는 대판은 6명 정도로 확인되고 있으며, 이들이 운영하고 있는 주유소는 34곳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욱이 대판들이 운영하는 주유소는 대부분 경쟁이 가장 치열한 지역에 위치해 있어 저가 경쟁을 더욱 과열시키고 있다.

◇ 대구 물동량 감소에 경쟁 심화

대구 주유소 시장은 과거부터 경쟁이 치열한 것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과거부터 영남권 교통의 중심지였던 만큼 현재도 영남지역 물류의 중심지로 구미시나 포항 등 영남권 대표 산업단지를 이용하는 화물차 등이 꼭 들려야 했던 곳이다.

이런 이유로 대구시 주유소들은 인근 산업단지나 물류단지 등을 이용하는 차량들에 기름을 넣기위해 치열하게 경쟁해 왔으며, 리터당 1원만 높아도 주유소 판매량이 크게 달라지는 전국에서 경쟁이 가장 치열한 지역이었다.

현재도 대구시는 휘발유와 경유 모두 전국 최저가 지역으로, 지난달 25일 기준 전국 최고가인 서울이 휘발유 1,660, 경유 1,587원인데 비해 대구는 휘발유 1534원, 경유 1452원으로 각각 126원, 135원 싸게 판매되고 있다.

알뜰주유소 등장 이후 경쟁이 치열했던 대구 주유소 시장에 대판이 등장한 것은 최근 6~7년 사이로, 대판들이 등장해 가격을 주도적으로 낮추면서 시장 가격은 더욱 하락했다.

대판들은 5~7곳의 주유소를 운영하면서 좀 더 낮은 가격에 팔아 판매량을 높이는 전략으로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다.

공급사와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더 많은 판매량을 유지해야 판매량에 따른 인센티브로 1원이라도더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구시 석유 물동량이 크게 위축된 것도 경쟁을 더욱 부추겼다.

최근 몇 년 사이 대구시 내 아파트가 대거 미분양 사태를 겪으면서 건설시장이 얼어붙었다.

또한 주변에 고속도로가 대거 개통되면서 대구를 통하지 않고도 포항이나 울산 등 인근 대도시 등으로 직접 이동이 가능해졌다.

더욱이 구미 등 인근 국가산업단지에 대기업들이 줄줄이 사업을 철수하면서 물동량 자체가 크게 감소하다 보니 줄어든 물동량에도 판매량을 유지하기 위해 가격을 내리는 주유소들이 속출했다.

대구시내 알뜰주유소들이 조합을 만들어 공동구매에 나선 것도 판매가격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대구시 주유소업계는 이미 한계를 넘어서 끝을 향해 달리고 있는 상태다.

이런 가운데 최근 대판들이 주요 경쟁노선에 들어서면서 대구 주유소 시장은 더욱 끝을 알 수 없는 맨홀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 경영난에 사업포기 주유소 속출

대구 주유소 시장에 대판이 처음 등장한 것은 7년여 전으로, 이른바 선수 한명이 주유소 시장에 참여하면서 주유소 판매가격이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주유소 1곳을 운영하던 해당 운영인은 임차와 매입을 통해 짧은 순간 10곳의 주유소를 운영하게 됐고, 이 운영자는 10곳 모두 지역 내 최저가로 판매하면서 높은 판매량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해당 운영자가 과도한 경쟁으로 인해 자금이 딸리면서 무자료 거래에 나서게 됐고, 결국엔 기름 판매 보다는 무자료 거래를 위해 현금거래를 유도하는 등 시장 질서를 흐리면서 본인 주유소 사업도 어려움을 맞게 됐지만 이후 대구 주유소 시장은 겉잡을 수 없는 최악의 경쟁상황을 맞게 됐다.

이런 상황을 곁에서 지켜봤던 몇몇 주유소 사업자들이 본인도 주유소 수를 늘리면 가능할 것 이라는 생각으로 주변 주유소들을 매입하거나 임대해 주유소수를 늘리기 시작했고, 늘어난 판매량을 무기로 공급사와 협상해 매입단가를 낮추거나 추가 인센티브를 지급받으면서 몸집을 키워왔다.

대구 주유소업계에서는 이들 대판을 ‘괴물’이라고 표현한다.

이들의 처음 시작은 가격을 주도하거나 경쟁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경쟁이 치열해진 상황에 인근 주유소가 경영난에 사업을 포기해 임대 매물로 나오게 되고, 해당주유소를 자신이 매입하지 않으면 이른바 ‘선수’가 임차받을 경우 시장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에 해당 주유소를 임대받아 운영할 수 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처음에는 경쟁을 지양하고 시장 가격에 판매가격을 맞추면서 수익 위주로 운영했지만 점차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결국 판매가격을 낮추게 됐고, 2곳의 주유소를 운영하면서 생긴 가격경쟁력을 가격할인에 쏟아부으면서 판매량은 더욱 늘어나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경쟁노선의 임대로 나온 또 다른 주유소를 임차하고, 공급사로부터 인센티브를 더 받기 위해 판매량을 높여야 했으며, 물량을 채우기 위해 1원이라도 더 낮게 판매해야 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게 됐다.

더욱이 한두달 적자를 보더라도 마진이 좋아지는 순간 적자를 만회할 수 있었고, 일반 주유소 보다 더 큰 이익을 얻게 되면서 막연한 기대감에 사업을 계속 확장해올 수 있었던 것이다.

▲ 경쟁과열로 임대사업자가 운영을 포기한 후 문을 닫은 주유소.
▲ 경쟁과열로 임대사업자가 운영을 포기한 후 문을 닫은 주유소.

이처럼 경쟁을 막으려고 주유소를 추가 매입한 것이 결국엔 경쟁을 주도하는 입장이 될 수밖에 없었고, 현재는 4~7곳의 주유소를 운영하는 ‘괴물’이 됐다고 지역 관계자들은 분석했다.

주유소협회 대구시회에 따르면 1명의 소유주가 5~7곳의 주유소를 운영하는 대판은 대구시에만 6곳이 운영되고 있으며, 이들이 운영중인 주유소는 34곳에 이르고 있다.

대구시 전체 주유소가 333곳(군위군 제외인 것을 감안하면 10%의 주유소가 대판들이 운영하는 주유소다.

대구 주유소 경쟁의 시작은 알뜰주유소였지만 이제는 주유소를 계열화해 몸집을 키운 대판 계열 주유소들이 시장을 주도하면서 대구 주유소 시장은 더욱 엉망이 되어가고 있다.

더욱이 경쟁에서 밀려 임대로 나오는 주유소가 계속 늘어나고 있고, 이렇게 임대로 나온 주유소는 해당 공급사까지 나서 대판에게 임차 운영을 의뢰하고 있어 대판 사업자들의 주유소 계열화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 대형판매 사업자는 “한 두달 손해를 보더라도 마진이 좋아지는 순간 적자를 만회할 수 있고, 많이 팔수록 더 큰 수익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은 절대 적정마진으로 주유소를 운영할 생각이 없다”며 “이렇다 보니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주유소는 점차 도태될 수 밖에 없고 대판은 더욱 몸집을 키우게 되는 구조가 고착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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