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기운 에너지정책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에교협) 공동대표]

▲ 온기운 에교협 공동대표
▲ 온기운 에교협 공동대표

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이 감소 경향을 보이고 있어 ‘2030 NDC(국가온실감축 목표)’나 ‘2050년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 청신호가 켜졌다. 지난해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2.6% 늘었는데도 배출량은 오히려 3.5% 줄었다. 배출량이 2018년을 정점으로 2019년 -3.5%, 2020년 –6.4% 등 2년 연속 줄다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경기회복에 따라 2021년에 3.3% 증가했으나 지난해 다시 줄어든 것이다. 

국내 총배출량의 38%를 치지하는 산업 부문에서 철강 및 석유화학 생산 감소 등으로 배출량이 6.2% 줄고, 총배출량의 33%를 차지하는 전환 부문에서 신재생에너지 및 원전 발전량 증가와 석탄발전량 감소로 4.3% 줄어든 것이 총배출량 감소에 크게 기여했다. 수송 부문도 미미하지만 0.8% 줄었다. 반면 건물, 농축수산 부문에서는 배출량이 각각 3.0%, 1.0% 늘었다. 

늘기만 하던 온실가스 배출량이 감소 경향으로 바뀐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NDC(2018년 대비 40% 감축)를 달성하려면 향후 8년간 온실가스를 연평균 4.9%씩 줄여야 한다. 지난 4년간 연평균 감축률 2.6%의 약 2배로 매우 도전적인 과제다.  

앞으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려면 모든 분야에서 고르게 배출량을 줄여야 하는데, 다양한 긍정적 효과를 나타내면서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전기화(electrification)다. 

전기화란 전기를 동력원으로 사용하는 제품이나 서비스 도입을 추진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테면 열차나 버스, 승용차 등 화석연료에 의존하던 수송수단을 전기 수송수단으로 바꾸거나 가정에서 전기레인지나 전기건조기 등 전기제품 사용을 늘리는 것이다. 

전기를 최대한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방식으로 생산하고 생산된 전기를 수송이나 산업현장, 사무실, 가정 등에서 사용하면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다.

전기화는 국가의 에너지 집약도(일정 GDP 당 투입되는 에너지 양)를 줄여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할 뿐 아니라, 노동생산성을 높여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생산인구 감소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해 해준다. 

전기화는 또한 석유, 가스 등 화석연료에 대한 수입의존도를 낮추고, 국제 연료가격 변동에 따른 리스크를 줄여주는 효과도 있다. 송·배전망 투자 확대로 계통의 효율성 및 유연성을 높일 수도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금까지 석유가 에너지 수요를 이끌었다면 앞으로는 전기가 이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기가 ‘새로운 석유’로 일컬어지고 있는 이유다. IEA에 따르면 세계 최종 에너지 수요에서 전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5~2021년에 연평균 2.1% 증가했다. 

현재는 그 비중이 약 20%인데, 탄소중립 시나리오에서는 2030년까지 약 30%로 연평균 3.5%씩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주요국들은 전기차 보급이나 전기 냉난방, 산업용 전기보일러, 전기아크 용광로 이용 등 다양한 형태로 전기화를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발전량 세계 8위, 1인당 전력 소비량 세계 13위 등 한국은 세계적으로 전력을 많이 생산하고 많이 쓰는 나라다. 이는 한국이 제조업 비중이 높은 나라로서 산업 부문의 전력 소비량이 총 전력 소비량의 60%에 육박할 정도로 높은 영향이 크다. 수송이나 건물 등의 전력 소비량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 향후 전기화의 성과를 내려면 모든 부문에서 화석연료 대신 전기 사용을 늘릴 필요가 있다.  

수송 부문에서 한국은 주요국들에 비해 전기차 보급이 상대적으로 뒤져 있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전기차 판매는 전년보다 63.8% 증가한 16만 4482대로 전체 자동차 판매의 9.8%를 차지했다. 전기차 판매가 빠르게 늘고 있으나 전기차 판매 비율은 노르웨이(79%), 스웨덴(33%), 중국(26%), 독일(18%), 영국(17%), 프랑스(13%) 등보다 낮다. 전기차 보급을 제약하는 충전 인프라 부족과 높은 차 가격, 화재위험성 등을 개선하는게 선결과제다.  

산업 공정 분야에서는 대표적으로 국내 온실가스 배출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철강 부문에서 수소환원제철 기술 실용화를 통해 온실가스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철광석에 함유된 철을 산소와 분리시키는 환원제로서 코크스 대신 수소를 사용하고, 이 수소는 원전이나 신재생에너지 전기로 물을 전기분해 함으로써 대량 얻을 수 있다. 

봄·가을철 전력수요가 상대적으로 적은 시기에 주로 발생하는 잉여 전력을 억지로 출력 제어하기 보다는 전기사용에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플러스DR(Demand Response)’을 적용해 전기 사용을 촉진하고, 이를 통해 온실가스를 줄일 필요가 있다. 

전기화를 위해서는 송배전망 확충이 불가결하다. 전기를 생산해도 이를 실어나를 송배전망이 없으면 전기소비가 불가능하다. 현재 2021년 수립된 9차 송변전 설비계획에 담긴 28건의 전력망 구축 사업 중 11건의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 

송배전망 미비로 전력이 부족해 기업의 설비가동이 지장을 받거나, 출력제어로 전기가 아깝게 버려지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전력망 구축 비용을 채무위기에 빠진 한전이 전적으로 감당하는게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정부의 재정 투입과 기타 지원 등 특단의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2030년에 전기화에 의한 전력 수요는 약 15TWh로 전력 목표수요량 703TWh의 2.4%에 불과하다. 세계 평균 수준(20%)보다 매우 낮다. 전기화 수요를 다시 예측하고 이에 맞는 여건 조성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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