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플랫폼뉴스]현재도 정유사들은 ‘주간, 월간 단위 평균 석유 판매 가격’을 정부에 의무 보고하고 있다.

그런데 가격 공개 범위를 전체 석유 판매 대상과 지역별로 세밀하게 확대하는 내용의 석유사업법령 개정 작업을 진행중이다.

정유사 가격 공개를 법으로 최초 의무화하는 과정에서도 관련 업계는 '영업 기밀 유출' 등을 우려해 반대 입장을 제시했지만 ‘경쟁 유도를 통한 기름값 안정’이라는 정부 명분에 밀려 허용됐다.

한 발 더 나아가 이제는 정유사의 전체 석유 판매처 그리고 지역별 공급 가격까지 정부가 보고받겠다고 나섰다.

정부는 지난 1990년대 석유 산업 자유화 이후 석유 가격 결정 권한을 민간 자율 경쟁에 맡겨 놓고도 국제유가가 급등할 때 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가격 관련 규제와 시장 개입을 서슴치 않고 있다.

정유사부터 소매 주유소 단계까지 다양한 가격 보고 의무를 부여해 오피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지난 2011년에는 ‘알뜰주유소’ 상표를 출원하고 공기업을 통해 석유 유통 시장에 진출했는데 현재는 전체 주유소 중 11% 수준의 점유율을 차지하며 정유사를 제외한 국내 최대 대형 딜러 역할을 하고 있다.

정부를 대신해 알뜰주유소를 운영하는 석유공사와 도로공사, 농협이 공동 구매 방식으로 석유를 조달하는 창구가 정유사인데 바로 그 정유사 상표 주유소들과 소매 시장에서는 경쟁하고 있다.

알뜰주유소의 최상단에 정부가 있고 공기업들이 운영 주체로 석유 유통에 참여하고 있으니 가격, 수급 같은 민감한 영업 기밀을 서로 침해하면 안되는 것은 당연한데 정부는 행정력을 이용해 정유사와 주유소의 거래 장부를 들추고 있다.

알뜰주유소에 소득·법인세 감면, 석유 전자상거래 거래시 수입부과금 환급 같은 특혜를 제공하며 똑같은 정유사 제품인데도 어떤 상표 주유소를 통해 유통되느냐에 따라 소매 가격이 달라져 ‘일물일가(一物一價)’에 위배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알뜰주유소에 대한 우위적인 정책 지원으로 형성된 판매 가격으로 나머지 90%의 일반 주유소 판매 가격을 낮추며 통제하는 시장 왜곡이 벌어지고 있다.

현재의 상황도 공권력을 이용한 정부의 불공정 개입이라며 시장과 적지 않은 경제학자들의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데 이제는 더욱 세밀한 정유사 판매 정보를 제공받겠다며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다.

정유사 석유 공급 가격은 세계 경기 흐름과 석유 수급, 정제사 간 경쟁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 작용하는 국제 석유 거래 가격을 기초로 설정되고 있어 충분히 투명한 구조로 인정받고 있다.

에너지 전환 기조 속에서 매년 수백 곳씩 폐업하는 심각한 구조조정을 겪고 있는 주유소 업계는 정부 상표 주유소와도 경쟁하며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다.

이런 마당에 정유사 장부를 더 들여다 본다고 시중 기름값을 낮출 수 있을지, 설령 가능하더라도 과연 바람직한 행정력의 사용인지 알 수 없다.

고유가 원인인 국제유가, 환율 등의 외생 변수에 대응 수단이 없어 속수무책인 정부가 소비자 시선을 정유사 탓으로 돌리려고 ‘쇼’를 하고 있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설령 소비자 편익을 높인다는 명분이 있더라도 시장 경제에서 경쟁은 공정해야 한다.

공정거래법에서 부당 염매나 불공정한 방식으로 경쟁 사업자를 배제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은 ‘경쟁의 공정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공권력을 동원해 석유 유통 시장에 진출하고 시장 가격을 조정하며 심지어 시장에서 같이 경쟁하는 사업자의 거래처와 석유 판매 가격까지 보고받겠다는 것은 ‘불공정 경쟁’의 끝판과 다르지 않다.

정부라고 '불공정 행위'가 용인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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