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들이 공익모임을 통해 시장안정화를 추진했다‘

‘정유사들의 폭리로 소비자들이 2400여억원의 기름값을 더 냈다’

‘국제원유가가 리터당 20원 오르는데 그쳤지만 정유사들이 공급하는 휘발유는 40원, 등유는 70원, 경유는 60원 정도 올랐다’

‘담합으로 정유사들은 2004년 한해 동안 전년대비 최대 400%가 넘는 이익을 거뒀다’

대중적인 영향력이 가장 큰 공중파 방송들이 정유사 담합과 관련해 보도한 내용들이다.

이 내용들은 22일 공정위가 발표한 보도자료에 근거했거나 공정위 김병배 부위원장의 기자브리핑에서 언급된 내용들로 소비자들은 상당한 충격을 받고 있다.

실제로 한 공중파 방송의 인터뷰에 응한 한 기름 소비자는 “시민을 우롱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다‘고 전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방송의 보도 내용에서는 빠진 부분이 있다.

22일 오후 가진 기자 브리핑에서 김병배 부위원장은 몇가지 주목할 만한 발언을 했다.

먼저 정유사 내부 문서에 언급된 공익모임과 관련된 대목이다.

김병배 부위원장은 “(일반적인 담합 관련 조사에서) 완벽하게 담합의 증거가 발견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회의 자료 등을 통해 누가 언제 어떻게 만나서 담합을 결정했는지를 확인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것보다 못한 경우가 이번 경우(정유사들의 담합 조사 과정)”라고 말했다.

실제로 정유사 내부 문건에 언급된 공익모임의 실체는 공정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만한 대목은 가격담합을 전제로 시장안정화를 추진하겠다고 언급된 그 ‘공익모임’이라는 표현은 공정위가 확보한 정유사 자료들중 오직 한 업체의 내부 문서에서만 발견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정유업계는 세녹스를 비롯한 첨가제형 유사석유가 한창 기승을 부리면서 정부 주도로 구성된 유사석유대책 테스크포스팀을 특정 정유사가 자의적으로 공익모임이라고 지칭했을 뿐이라는 입장이니 공정위의 입장과는 한참 다르다.

공정위가 내세우는 담합의 유일한 증거가 정유사 내부문건에 언급된 ‘공익모임’뿐인데도 그래서 정유사들이 엄청난 폭리를 취한 것 처럼 비춰지는 대목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공정위는 정유사 담합을 발표하는 보도자료에서 2004년 이후 정유업계의 순익이 크게 증가했다는 대목을 삽입하며 분위기를 띄웠지만 브리핑 과정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음을 시인했다.

공정위 김병배 부위원장은 “당시 정유사들의 영업이익이 많이 난 것이 꼭 담합의 결과이고 인과관계가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고유가로) 2005년 미국 의회가 휘발유 가격에 대한 담합 조사를 요청하면서 미국 공정위가 1년에 걸쳐 조사했지만 증거를 찾지 못했고 그 기간동안 외국 정유사들도 상당한 이익을 실현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도 말했다.

공정위는 2004년 정유사들이 석유제품 사업부문에서 거둔 영업이익이 그 전년에 비해 평균 188.1%가 증가했고 S-Oil과 SK는 무려 각각 433%와 363%가 상승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유가 상승기조가 본격화되면서 수출채산성이 크게 높아져 수익성이 개선됐다는 사실은 간과하고 있다.

실제로 원유가격과 국제석유제품가격간의 차액인 정제마진은 2003년 배럴당 6.24불에서 2004년에는 12.8불로 두배 이상 뛰었다.

영업이익률 상승세가 가파랐던 SK는 2004년 한해 동안 생산한 석유제품중 40% 가까이를 외국에 수출했고 전형적인 수출지향 정제기업인 S-Oil은 약 60%에 가까운 수출비중을 기록했다.

이와 관련해 S-Oil측 관계자는 “회사의 수익구조중 내수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낮고 시설고도화 비율은 타 정유사에 비해 높아 수출 채산성이 크게 개선된 것은 당연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결국 공정위가 통계를 통한 착시현상을 유도하고 있는 셈이다.

정유사들의 석유수출금액이 사상 처음으로 100억불을 돌파한 시점도 2004년이다.

이 기간동안 정유사들은 그 전년에 비해 12.5%나 늘어난 2억3560만배럴의 석유제품을 그 전년보다 두배 가까이 증가한 정제마진을 향유하며 수출하는데 성공했는데 그 수출금액만 102억불을 기록했다.

특히 2004년 파업으로 몸살을 앓았던 GS칼텍스는 공정위 스스로가 밝혔듯이 영업이익율 증가율이 31%에 그쳤을 정도로 사별 경영환경이 천차만별이었는데도 전체 정유사의 영업실적 호전이 마치 담합의 결과인 것처럼 공정위는 설명하고 있다.

담합기간으로 지적한 4월 1일부터 6월 10까지의 가격을 단순 비교해 원유가격은 리터당 20원이 올랐는데 석유제품 가격은 그 이상으로 상승했다고 지적한 대목 역시 설득력이 떨어지고 있다.

유가가 자유화된 1997년 이후 대부분의 정유사들이 국제 석유가격을 근거로 내수 석유시장 가격을 결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제 석유제품 가격이 내수 가격에 반영되는 시차를 감안하지 않고 특정일의 가격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통계가 보여주는 오류에 가깝다.

또한 대한석유협회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공정위가 주장하는 70일간의 담합기간동안 원유가격은 리터당 24.72원이 상승한 반면 한 정유사의 휘발유 가격은 15.9원, 경유와 등유는 각각 24원과 22원이 인상됐을 뿐이다.

정유사 담합으로 소비자가 피해를 입었다고 공정위가 밝힌 2400억원과 관련해서도 언뜻 수긍이 가지 않는다.

공정위는 정유사가 담합한 기간의 매출액 대비 15%에 해당되는 2400억원을 소비자가 피해를 입었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구체적인 담합의 연결고리나 가격의 합의를 통한 정유사들의 반사적인 이익규모에 대한 언급은 전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공정위는 일부 정유사의 내부 문서에서 언급된 ‘공익모임을 통한 시장 정상화’와 ‘시장 안정화’라는 표현에 정유사들의 영업이익이나 내수 가격 변동 흐름 등을 덧붙여 ‘담합’으로 포장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

사실 정유사가 담합의 가능성을 의심받기 시작한 것은 4년 전부터다.

고유가 기조가 뚜렷해지고 기름값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지면서 공정위는 정유사의 담합 가능성을 제기했고 같은 해 8월 관련 회사들에 대한 현장조사를 벌이며 영업 관련 내부 문건 등을 압수한 바 있다.

이후 유가가 더욱 치솟고 기름값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져 가는 상황에서도 공정위는 정유사에 대한 뚜렷한 담합 혐의를 확보하지 못한 체 ‘조사 중’이라는 애매한 표현만 남발해왔다.

지난해 8월에는 또 다시 정유사 본사와 영업 현장에 대한 현장 방문 조사를 실시하며 담합의 고리를 밝히려 했지만 그 어떤 증거도 확보하지 못했다.

그러는 한편에서는 공정위 고위 관계자들이 나서 국회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정유사의 담합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 발언을 계속했고 이를 지켜보는 측에서는 ‘드디어 공정위가 기름값 폭리로 배불리는 정유사의 부도덕성을 파헤쳤다’는 메시지로 이해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공정위는 정유사 담합 혐의를 확정지었으니 보는 이들은 뒤늦게 나마 속이 시원할 판이다.

하지만 정작 공정위가 제시한 담합의 증거는 이미 2004년의 현장조사 과정에서 확보한 정유사의 내부 문건중 일부 단어에만 악센트를 주고 정황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공정위가 정유 4사를 담합 혐의로 검찰에 고발조치했고 이에 맞서 정유사 역시 이의신청이나 행정소송 등의 과정을 통해 억울함을 호소하겠다는 입장이니 최종적인 판단은 유보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국민 정서를 지나치게 의식하고 짜 맞춘 듯 어색한 공정위의 담합 결정만으로도 정유사들은 부도덕하고 몰염치한 기업으로 전락하고 말았으니 정유사들의 속만 터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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