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모임 통한 가격정상화 시도 여부가 관건

▲ 공정위 김병배 부위원장이 22일 기자 브리핑을 갖고 정유사 담합 결정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공정위 - ‘가격인상 논의 위한 별도 논의 있었다‘
정유사 - ‘단편적 자료로 광범위한 혐의 추정’

공정위가 정유사의 담합행위를 확정지었다.

SK 등 4개 정유사가 지난 2004년 4월 1일부터 6월 10일까지 70일동안 경질 석유 가격을 공동으로 인상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총 52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최종 의결했다.

정유사별로는 SK가 192억원으로 가장 많고 GS칼텍스가 162억원, 현대오일뱅크 93억원, S-Oil이 78억원 등이다.

또 이들 4개사를 검찰에 고발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무려 4년여를 끌어 왔던 조사 결과 담합으로 최종 판정내린 근거로 공정위는 일부 정유사들로부터 확보한 자료에 기록된 ‘시장 안정화’ 등의 표현을 문제삼고 있다.

공정위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2004년 6월에 작성된 한 정유사의 내부 문건에서는 ‘2004년 4월 이후 정유사간 공익 모임이 운영중’, ‘손익 제고를 위해 공익모임을 통한 시장안정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시장안정화 추진시 경쟁사 일부 가격 대응’, ‘공익모임을 통한 가격안정화의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음’ 등의 표현이 담겨져 있다.

이와 관련해 공정위는 시장안정화와 가격정상화 등의 표현은 담합을 통한 가격인상을 의미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정유사들이 공장도 기준 고시 가격과는 다른 일일 판매 기준가격(현물가격)으로 도매가격이 형성되고 그 과정에서 SK의 공장도 고시 가격이 모든 정유사의 할인가격을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는 점도 문제삼았다.

목표가격을 SK가 고시하는 공장도 가격 대비 할인가격으로 결정하고 정유 4사가 이를 일일판매의 기준가격으로 채택하고 있어 ‘구체적인 목표가격(합의가격)을 설정하고 있다’는 것이 공정위의 해석이다.

또 다른 문서에서는 ‘할인폭 축소 시기에는 자영대리점을 활용해 시장관리’, ‘경쟁자제 시기에도 독자적인 추가 할인 지속’ 등의 표현이 발견됐는데 이를 두고 담합기간이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는 문건으로 공정위는 해석했다.

모 정유사의 시장동향보고자료에서는 ‘경쟁사와 합의해 시장가격의 안정화를 추진할 경우 시장은 3가지 유형으로 반응한다’고 소개되어 있고 그 방안중 하나로 ‘현물대리점을 통한 우회판매 및 일부 거래처 가격할인하는 경우 경쟁 정유사에 항의하면 공식가격은 절대 안변했다고 한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합의 이탈행위의 감시’로 규정지었다.

즉 정유사들간 합의로 담합이 성립됐는데 이를 이행하지 않는 행위에 대해서 그 합의 이행을 촉구한 사실이 확인됐다는 해석이다.

공정위의 해석대로라면 정유사들은 이른바 ‘공익모임’이라는 형태로 시장 가격 등의 안정에 합의했고 소비자들에게 2400억원 정도의 피해를 끼쳤다.
하지만 정유업계의 시각은 정반대다.

담합을 합의한 사실도 없고 더욱이 실행에 옮기지도 못했는데 공정위가 오히려 과도하게 정유사를 부도덕한 기업으로 몰아 가고 있다는 반응이다.

실제로 공정위가 공개한 모 정유사의 ‘시장동향보고’라는 제목의 내부 자료에는 ‘시장 안정화’라는 표현이 언급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문건이 제시하는 결론은 정유사들간의 가격경쟁이 심각하고 해당 정유사가 시장의 선(先) 안정화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거래처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는데 맞춰져 있다.

다음은 해당 문건의 결론부분이다.

‘전체 시장 상호간에 시장 안정화가 됐다고 해서 당사(해당 정유사)가 거래처를 설득해 판매했지만 이후 시장가격이 더 하락됐을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어 당사에 대한 거래처의 신뢰 형성에 어려움이 있다’

결과적으로 시장을 선도하는 선발 위치의 이 정유사가 과도한 경쟁을 자제하기 위해 가격할인자제 같은 시장안정화를 시도했지만 오히려 경쟁정유사들의 가격할인판매로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사실에 대해 내부 동향 보고하는 자료인 셈이다.

또 다른 자료에서는 공정위가 정유사들의 담합 시점으로 언급한 2004년 4월 이후 (석유유통시장의) 경쟁자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모 정유사가 저가판매로 시장을 주도해 점유율이 대폭 상승했다는 사실이 언급되어 있다.

‘2004년 4월 이후 시장 대응 자제 및 가격안정화 주도중으로 점유율은 소폭 하락했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담합 혐의를 받고 있는 그 기간동안에도 이 정유사는 경쟁 정유사나 석유수입사가 제시하는 현물 할인가격을 따라가지 않고 자체적으로 가격안정화를 시도했다가 오히려 점유율이 떨어졌다는 의미다.

정유사 내부 문건에서 언급된 ‘공익모임’이라는 표현과 관련해서도 공정위와 다른 해석이다.

한 정유사 문건에서는 ‘공익모임을 통해 시장안정화를 추진하고 있다’는 표현이 언급되어 있는데 이와 관련해 정유사는 그 공익모임이 유사석유근절과 관련해 산자부를 중심으로 운영되던 유사석유 테스크포스팀을 의미한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로 이 기간동안에는 정부와 석유업계가 공동으로 참여한 유사석유 대응 테스크포스팀이 운영됐다.

하지만 공정위측은 유사석유 테스크포스팀과 별개의 모임을 통해 정유사들이 담합을 시도했다는 입장으로 양측간의 해석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이에 대해 정유업계는 당시 정유사들이 공식적인 모임을 가진 것은 유사석유 테스크포스팀 말고는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공익모임이라는 표현은 한 정유사의 내부 문건에서만 확인되고 있고 나머지 정유사에서는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단어 선택에 미숙한 영업부서 직원의 표현상 실수라는 설명이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공정위가 주장하는 것처럼 공익모임을 통해 가격합의 논의가 있었다면 그 모임이 어떤 성격이고 어떤 활동을 했으며 구성은 어떻게 되는지 등을 밝히는 책임도 있는데 단순히 단어상의 표현만 가지고 정유사를 담합으로 몰고 있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SK가 발표하는 공장도가격이 모든 정유사의 현물 할인가격의 기준가격이 되는 것과 관련해서는 시장의 편의에 의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정유사마다 제시하는 공장도가격이 제각각 다른 상황에서 다양한 상표를 선택하고 있는 주유소들간의 석유 사입가격을 비교하기 위해서는 기준 가격이 필요한데 그 가격이 국내 최대 정유사인 SK가 제시하는 공장도가격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같은 정유업계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공정위의 입장은 단호하다.

공정위 김병배 부위원장은 22일 가진 기자브리핑에서 “정유산업은 순수과점시장에서 상호의존적 가격결정구조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카르텔로 가격인상이나 경쟁자제에 대한 기본 합의만으로도 상호간 가격모방에 의한 일일가격의 지속적인 인상이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또 “직접적인 가격관련 의사연락을 위한 공익모임이 결성됐고 가격정보를 교환하며 상호 이행 감시한 행위를 확인한 것 만으로도 공정거래법에 위반되는 합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고 못박았다.

한편 정유업계는 공정위의 조사 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며 이의신청이나 행정소송 등을 통해 억울함을 벗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어 정유사가 실제로 담합했는지 여부에 대한 최종 판단은 상당 기간 늦춰지게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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