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기운 에너지정책합리화 교수협 공동대표
▲ 온기운 에너지정책합리화 교수협 공동대표

[온기운 에너지정책합리화 교수협 공동대표] 지난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세계 천연가스 시장에 큰 변화가 일고 있다. 액화천연가스(LNG)를 중심으로 한 수요 급증으로 가격이 폭등하고 물량 확보를 위한 국가간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특히 천연가스 수요의 40%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던 유럽은 러시아-유럽간 3대 가스 파이프라인(야말-유럽선, 노르트스트림1·2선, 우크라이나선)이 마비 지경에 이르면서 새로운 공급처를 찾는데 필사적이다. 가스수요가 연중 피크에 이르는 동절기를 앞둔데다, EU집행위원회가 다음달 1일까지 회원국들에 가스 저장시설의 80% 이상을 채우도록 요구하고 있어 유럽국가들은 그야말로 초비상이다.  

올해 5월에 발표된 유럽의 에너지계획 ‘리파워EU(RE-powerEU)’에 따르면 러시아 파이프라인가스(PNG) 공급이 3분의 1로 줄어들 경우 유럽은 지하 가스저장시설 재고를 예년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4400만톤 LNG 상당의 추가 확보가 필요하다. 지난해 우리나라 연간 LNG 수입량 정도다. 

러시아 PNG 공급이 전면 중단되는 극단적인 경우에는 1억 300만톤 LNG 상당의 추가 확보가 필요하다. 세계 LNG 공급능력이 단기적으로 제약된 상황에서 유럽 국가들은 한·중·일 등 아·태지역 국가들과 LNG확보 경쟁을 벌일 수 밖에 없다.  

러·우 전쟁 후 세계 천연가스 시장에 나타나고 있는 변화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거래 수단이 PNG에서 LNG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2020년 천연가스 거래량 1조 2437억 m3 중 PNG는 7558억 m3(전체 거래량의 61%), LNG는 4879억 m3(동 39%)였다. LNG 비중은 1990년  20%대 초반에서 두 배 가까이로 증가했는데 러시아의 대유럽 PNG공급이 급감하면서 그 비중은 더욱 커지고 있다. 

둘째, 현물가스 가격 급등 속에서 유럽과 동북아 현물가격이 역전됐다. 과거에는 동북아 현물가스 가격 지표인 JKM(Japan Korea Marker)이 유럽 현물가스 가격 지표인 TTF(Title Transfer Facility)보다 높았다. 하지만 러·우 전쟁  이후 유럽의 현물 수요가 급증하면서 TTF가 JKM을 웃돌게 됐다. 

올해 9월 TTF가격은 MMBtu 당 63달러로 전년 동기비 3배로 상승했으며, JKM가격은 53달러로 전년 동기비 2.8배로 상승했다. 세계 LNG계약은 70~80%가 장기계약이어서 유럽 국가들이 가스의 긴급수요 대부분을 현물시장에서 충당할 수 밖에 없다.  

셋째, LNG선 행선지가 아·태지역에서 유럽으로 바뀌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 멕시코만 액화기지에서 LNG를 싣고 파나만 운하를 통과해 아시아로 향하던 선박이 하와이 앞바다에서 180도 진로를 변경해 다시 파나마 운하를 반대 방향으로 통과해 유럽으로 향하는 사례가 자주 관찰되고 있다. 

넷째, 장기계약 비중이 줄고 현물계약 비중이 늘고 있다. EC(유럽위원회)는 탈탄소를 위해 가스의 상류개발 투자를 촉진하는 20년 이상 장기가스 계약을 억제하는 쪽으로 정책을 추진해 왔으며, 이로 인해 유사시 유럽국가들은 신규 LNG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장기계약 대신 현물계약을 이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세계 LNG 계약 물량에서 현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5년 3.4%에서 2018년 26%로 상승했으며, 러·우 전쟁 이후 이 비중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다섯째, LNG가격과 유가와의 동조성이 약화되고 있다. 장기계약은 지금까지 유가연동형 가격결정 방식이 주를 이뤄 왔으며, 현물가격은 기본적으로 천연가스 시장의 수급에 의해 결정돼 왔다. 최근 현물거래 증가로 LNG가격과 유가와의 동조성은 약화될 수 밖에 없다. 

여섯째, LNG시장에서 미국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미국은 2016년 LNG 수출을 개시한 이후 수출량이 지난해 6700만톤으로 전년 4480만톤 대비 50%나 늘었다. 올해는 수출량이 8000만톤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미국은 호주(7850만톤), 카타르(7720만톤)에 이어 LNG 수출 순위 세계 3위(시장 점유율 18%)를 기록했는데, 러·우 전쟁 이후 아·태지역과 유럽 지역간 가스공급 지렛대 역할이 더욱 커지고 있다. 

세계 3위의 LNG 수입 대국인 우리나라는 이상과 같은 세계 가스시장 변화에 주목하고 치밀한 대비책을 수립해야 한다. 장기계약과 현물계약을 적절히 조합하되 유사시에 대비해 비축물량을 충분히 늘려야 한다. 올해 8월 현재 우리나라는 LNG 총 저장용량 557만톤의 34%인 181만톤을 비축하고 있는데, 이를 대폭 늘려야 한다. 

목적지 조항이나 의무인수 조항이 부과되지 않아 유연성이 높은 미국산 LNG를 최대한 활용하며, 가격결정 방식도 유가연동형에서 가스시장 수급상황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개선되도록 주요 LNG 수입국들과 공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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