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석 에너지경제연구원 명예선임연구위원

[지앤이타임즈 : 이달석 에너지경제연구원 명예선임연구위원]사우디를 비롯한 OPEC(석유수출국기구) 13개 회원국과 러시아 등 비OPEC 10개 산유국들의 감산 공조 체제인 OPEC+의 생산정책 회의가 교착상태에서 벗어나 8월 이후의 생산에 관한 타협안을 마련했다.

OPEC+는 지난 7월 1일과 2일 열린 회의에서 8월부터 매월 하루 40만 배럴 규모로 감산을 완화(증산)하고 내년 4월 종료되는 감산 기한을 12월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논의했으나 UAE(아랍 에미리트)의 반대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사우디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UAE가 자국의 ‘기준생산량’ 상향 조정을 통한 생산쿼터 확대를 요구하면서 감산 기한 연장에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OPEC+는 18일 동안의 우여곡절을 겪은 후 재개한 회의에서 8월부터 매월 하루 40만 배럴 이내에서 증산하고 내년 5월부터 UAE를 포함한 5개 국가의 생산쿼터를 조정하는 내용의 타협안을 도출해 냈다.

하지만 이번 OPEC+ 회의 결렬이 OPEC 회원국인 UAE와 사우디 사이의 충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로 여겨진다.

중동의 주요 산유국인 UAE는 그동안 쿠웨이트와 함께 OPEC의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사우디를 전폭 지지해왔기 때문이다.

이번에 UAE가 이례적으로 생산쿼터 확대를 요구하며 사우디와 맞선 것은 UAE의 석유산업 상황은 물론 양국 사이의 경제적, 지정학적 갈등이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UAE는 지속적인 석유개발 투자로 생산능력을 확장해 왔으므로 과도한 잉여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즉 실제 생산 가능한 양에서 현재 생산량을 뺀 잉여 생산능력이 전체 생산능력의 약 35%에 해당하는 하루 130만 배럴에 이르고 있다.

더욱이 UAE는 2025년까지 현재 하루 400만 배럴인 생산능력을 하루 500만 배럴로 확대하기 위한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므로 현행 쿼터가 그대로 유지될 경우 유휴 생산시설의 규모가 커지고 투자 손실이 불가피하다.

양국 간 갈등 요인으로는 UAE가 중동 원유의 가격 결정에서 자국 원유의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한다.

UAE는 지난 3월 설립된 IFAD(ICE 아부다비 선물거래소)에서 자국산 머반유의 선물거래를 시작했다.

머반유가 브렌트와 WTI와 같이 선물시장에서 거래되면서 글로벌 벤치마크 원유로서의 위상을 갖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현재 중동 원유의 아시아 판매가격은 두바이유와 오만유의 현물가격 평균에 일정액(조정요인)을 가감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사우디가 중동 산유국들의 원유 판매가격을 선도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한편, UAE는 머만유 선물의 실물 인도지점인 후자이라 항구를 중동의 석유거래 허브로 성장시키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중동의 금융 및 관광 중심지인 UAE가 물류의 중심 역할까지 담당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사우디 역시 ‘비전 2030’으로 명명된 장기 경제전략에서 국제 투자 유치와 중동의 물류 허브를 추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UAE가 선점한 영역에 대해 사우디가 도전하는 셈이다.

지정학적 측면에서는 최근 UAE가 예멘 내전에서 사우디가 이끄는 연합군 활동에서 철수하는 사건이 있었다.

예멘 내전은 대리전 양상을 보이면서 사우디 주도의 연합군이 지원하는 정부군과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Houti) 반군 사이에 6년 넘게 진행되고 있다.

UAE가 사우디 연합군에서 철수해 독자 노선을 취한 것은 수니파 종주국으로서 중동지역 패권을 추구하는 사우디에게 타격을 주었을 것이다.

이처럼 과거와는 달리 양국 간에 갈등 요인이 있지만 UAE가 OPEC을 탈퇴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UAE를 포함한 중동의 모든 산유국에게 석유시장의 안정을 통한 원유 판매수익 확보는 긴요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앞으로 OPEC 회의에서 UAE의 주장과 요구는 더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사우디가 종래와 같이 OPEC과 OPEC+의 의사결정을 주도해 나가려면 더 큰 역량을 발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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