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앤이타임즈 : 에너지경제연구원 이달석 선임 연구위원]

에너지경제연구원 이달석 선임 연구위원

국제 석유시장에서 형성되는 정제마진은 생산한 제품의 절반가량을 수출하는 국내 정유업의 수익성과 직결된다.

싱가포르 시장에서 두바이유 기준의 월 평균 정제마진은 지난 10월에 배럴당 1.57달러에 불과했고, 11월과 12월에도 각각 1.07달러와 0.87달러에 머물렀다.

통상 정유업의 손익분기점에 해당하는 정제마진은 배럴당 4달러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의 보도를 보면, 지난 11월 이후 국제 유가가 큰 폭으로 상승했지만 정제마진은 상승하지 않아서 정유업의 손실액이 커지고 있다는 내용이 많다.

그러나 정제마진은 국제 유가의 전반적인 상승이나 하락과는 큰 관련이 없다.

정제마진은 석유제품의 복합가격에서 원유가격과 정제비 및 수송비 단가를 뺀 금액을 말한다.

정제비와 수송비에 변동이 없다면 정제마진은 석유제품가격과 원유가격의 격차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므로 정제마진은 국제 유가의 등락 그 자체보다는 등락의 요인과 관계가 있다.

일반적으로 소비 증가 등 석유제품의 수요 쪽 요인에 의해 유가가 상승할 때는 제품가격의 상승 폭이 원유가격의 상승 폭보다 커서 정제마진은 상승한다.

이와는 달리 생산 차질 등 원유의 공급 쪽 요인에 의해 유가가 상승할 때는 원유가격의 상승 폭이 제품가격의 상승 폭보다 커서 정제마진은 하락한다.

그렇다고 해서 지난 11월 이후의 국제 유가 상승이 원유 공급 쪽 요인에서만 비롯됐다는 것은 아니다.

세계 석유수요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1차 봉쇄령이 있었던 2분기를 저점으로 3분기에 이어 4분기에도 회복세를 보였다.

물론 2020년 4분기 수요량은 2019년 4분기에 비해서는 여전히 6% 적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석유수요의 완만한 회복과 함께 코로나19 백신 개발과 접종 개시 등이 향후 석유수요 증가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등 수요 쪽 요인이 유가 상승에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공급 쪽에서는 사우디 등 석유수출국기구(OPEC) 산유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이른바 OPEC+에 의한 원유 감산 체제가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OPEC+는 지난 3월과 4월 일시적으로 와해됐던 감산 체제를 복원해 5월부터 대규모 감산에 돌입했고, 그 이후의 감산 준수율이 100%에 근접하고 있다.

또한 지난 12월 3일 회의에서는 2021년 1월부터 감산 규모를 축소해 생산을 늘리기로 했던 당초 합의안을 수정했다.

즉 1월부터 감산량을 하루 770만 배럴에서 580만 배럴로 190만 배럴 축소하기로 했던 것을 매월 하루 50만 배럴 이내에서 점진적으로 축소하기로 변경한 것이다.

OPEC+의 감산 이행과 감산 전략 변경 등 공급 쪽 요인도 유가 상승에 기여했다.

이처럼 수요와 공급의 상호 작용으로 유가가 상승하는 가운데, 석유 정제마진이 회복되지 않는 것은 유례없이 누적된 석유제품의 재고 물량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 석유재고는 코로나19의 영향이 극심했던 2020년 상반기 중에 12억 배럴 넘게 증가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리고 과거 석유시장의 공급 과잉과 유가 하락 시기에는 원유 중심으로 재고가 증가했지만, 이번에는 석유제품 중심으로 재고가 증가했다.

세계 정유업체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코로나19로 인한 갑작스런 석유수요 감소에 대응해 정제시설의 가동률을 신속하게 조정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반기 들어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면서 재고가 감소하고 있지만 석유제품 재고는 여전히 사상 최고 수준이다.

에너지정보업체인 에너지 인텔리전스(EI)의 추정에 따르면, 2020년 상반기에 늘어난 재고 물량이 11월 말 기준으로 9억 배럴가량 남아있고, 이 중 5억 4천만 배럴이 석유제품이다.

석유 정제마진이 상승하려면 누적된 석유제품 재고 물량이 소진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정제마진이 손익분기점 위에서 안정화되는 시점은 코로나19 백신의 보급 효과가 나타나 경제활동이 정상화되고 세계 석유수요가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는 시점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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