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플랫폼뉴스 지앤이타임즈]싱가포르나 미국 휴스턴, 유럽 암스테르담 같은 글로벌 석유 허브를 만들겠다는 우리 정부의 청사진이 우여곡절 끝에 ‘용도 변경’ 형태로 다시 시동을 걸고 있다.

지난 2008년 울산에 동북아 오일허브를 구축하겠다는 국정 과제로 착수된 이후 10여년 만에 정부는 이 곳에 대규모 탱크터미널을 건설하겠다고 지난 13일 밝혔다.

산업부는 2014년 설립된 ‘코리아에너지터미널(KET)’이 합작 투자 협약(JVA, Joint Venture Agreement)을 맺었다고 밝혔는데 이제야 쓰임새를 찾은 것인지 억지춘향격으로 쓰임새를 맞추는 것인지 헷갈린다.

울산을 거점으로 동북아오일허브를 구축하겠다던 국책사업은 이명박 정부 이후 국정과제로 추진되어 왔지만 국회는 물론이고 국책 연구기관 등에서도 사업성에 꾸준히 의문을 제시하며 10여년 넘게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오일허브 착수 당시 주주로 참여할 것이라고 정부가 선전했던 글로벌 물류 기업 보팍(Vopak) 등은 당초 약속과 달리 투자를 철회했고 이후 중국 시노마트 등 해외 기업 유치를 추진해왔지만 사업성 등의 문제로 모두 백지화되며 공기업인 석유공사가 대주주로 명맥만 유지해왔다.

그런데 정부는 드디어 이번에 ‘동북아 오일허브 울산 북항사업 합작투자협약 체결’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워 사업 재시동을 선언하고 나섰다.

하지만 오일허브 쓰임새나 참여자, 사업성 모두 고개가 갸웃거린다.

먼저 울산 북항이 과연 오일허브가 될 수 있을 것인가가 의문이다.

정부가 제시해온 ‘오일허브(Oil Hub)’라는 것은 ‘석유제품을 생산˙제조˙저장하고 수출입을 포함한 중계와 금융 지원 기능을 수행하는 종합적인 물류 중심 거점’을 의미한다.

싱가포르나 암스테르담 등에 구축된 오일허브가 실제로 이렇다.

그런데 이번에 울산 북항에 구축하겠다고 제시한 사업은 그저 석유와 천연가스를 보관, 저장하는 탱크 시설에 다름없다는 평가가 높다.

그렇다면 울산 북항에 들어서는 탱크터미널이 정부 표현 처럼 오일허브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용도를 바꿔 단순한 석유저장시설을 짓는 것인지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 필요하다.

‘코리아에너지터미널’에 합작 투자하겠다는 기업들 면면 역시 글로벌 오일허브의 위상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이다.

10년 넘게 좌초중인 울산 오일허브 사업의 명맥을 유지해오던 석유공사가 49.5%의 지분을 투자하고 SK가스가 45.5%의 주주로 참여하는 것이 이번 조인트 벤처 투자 협약의 핵심이다.

싱가포르에서 석유화학탱크터미널을 운영하는 MOLCT가 유일하게 외국 기업으로 참여했지만 고작 5%의 지분에 그친다.

그나마 지금 맺은 것은 협약일 뿐이니 과거 동북아오일허브 투자를 약속했던 보팍 처럼 언제든 뒤집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울산 동북아오일허브에 외국 물류 기업들을 유치하려면 석유 제조나 브랜딩, 유통 등의 규제를 풀어야 한다며 정부는 지난 2017년 석유사업법령을 개정해 ‘국제석유거래업’까지 신설했는데 현재 석유공사를 포함해 탱크터미널 사업을 진행하는 국내 기업들만 8곳 정도 참여했고 거래 실적도 미미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천연가스 저장시설 공급 과잉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는 더욱 심각하다.

가스공사는 현재 81만㎘의 LNG 저장시설을 갖추고 있고 2031년까지 120만㎘ 규모로 확대할 계획으로 알려지고 있다.

민간 LNG 직도입 사업자들인 SK E&S와 GS에너지는 충남 보령에 현재 1~4호기의 LNG 저장탱크를 건설 운영중이고 2021년 6호기까지 증설할 계획이다.

포스코는 광양에 천연가스 터미널을 가동중이고 한양은 묘도에 대규모 천연가스 저장시설 건설을 모색중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울산 북항에 짓겟다는 138만 배럴 규모의 LNG 저장시설이 국내 천연가스 저장설비 과잉을 불러오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같은 우려는 국회 일각에서도 제기되고 있는데 김삼화 의원은 ‘산업부와 석유공사는 당초의 동북아오일허브 사업 취지에 부합하는지 여부와 사업 실현가능성 등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다.

잘못된 길이라면 수업료를 지불했더라도 과감히 되돌아 오는 것이 현명하다.

정부가 추진하는 일이니 되집을 수 없다는 고집은 더 큰 화를 초래할 수 있다.

정부 표현대로 울산 북항이 ‘동북아 오일허브’가 될 쓰임새가 있다고 확신하는 것인지 아니면 억지로 쓰임새를 만들어 끼워 맞추고 있는 것인지는 정부만 알 일이다.

그래서 울산 북항 동북아 오일허브 사업의 결과에 반드시 정부가 책임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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