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언·협박 난무, 법도 멈춰섰다

▲ 품검직원이 화물차에 실린 유사석유를 압류하는 장면(좌측)과 김정태경인지소장이 판매점내 압류물품을 점검하는 모습
-돈되는 유사석유, 압류해도 그때뿐-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험했다.

유사석유 단속반원을 접한 판매사업자들은 거친 욕설에 신변에 대한 위협을 서슴치 않았다.

행정대집행에 나선 담당 공무원과 석유품질검사소의 단속요원들에게 주먹질 일보직전의 험악한 분위기도 연출됐다.

심지어 행정대집행을 진행중인 와중에도 버젓이 유사석유를 판매하는 대담함에는 단속반원이나 동행한 본지의 취재진 모두 손을 들 수 밖에 없었다.

유사석유 이동판매차량을 발견하고 앞길을 막아선 석유품질검사소 임직원들을 거친 악설레이터 소음으로 위협하고 급기야 밀치고 도주했던 지난달 3일의 서울 강변북로 단속현장은 비할바가 못됐다.

유사석유 판매를 금지하고 단속하는 법은 있지만 그 효력이 멈춰선 ‘법의 사각지대’에서 단속공무원이나 석유품질검사소 요원들은 ‘×새끼’고 ‘때려 죽일 ×’이었고 ‘악덕 공무원’으로 내몰렸다.

▲ 현장에 동행한 경찰관도 유사석유 압류에 바쁘다. 우측은 오토바이 시트아래 부착된 유사석유 주입호스를 철거하는 모습이다.
지난 18일 오후 2시 석유품질검사소 경인지소(지소장 김정태) 단속팀원들은 서울 마포구청앞에 집결했다.

김정태 지소장과 이현명 LPG·기동팀장을 비롯해 모두 7명이 출동했으니 총 32명의 지소인원중 1/4정도가 빠져 나온 셈이다.

담당 공무원과 합동으로 관내 유사석유 용기판매업소들에 대한 행정대집행에 나서는 길에는 본지 취재진도 합류했다.

유사석유를 제조하고 판매하는 현장에서 관련 시설물들을 압류하고 봉인하고 폐쇄시키는 행정대집행의 과정들을 보다 가까이서 지켜보려는 것이 동행취재의 목적.

행정대집행은 비교적 치밀한 사전 각본에 의해 움직여진다.

먼저 대집행에 나서기 전 증거 확보를 위해 해당업소에서 유사석유를 판매하는 장면을 사진 촬영한다.

증거 확보후 첫 번째로 대집행에 나선 곳은 도심 한 복판에 위치한 유사석유 판매업소.

3평 남짓한 허름한 반지하 점포에 단속반원이 들이 닥치자 판매원은 ‘친구의 가게를 잠시 봐줄 뿐’이라며 발뺌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실제 업주와 연락을 시도했지만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 안내멘트만이 되돌아 왔다.

판매원은 자신과 상관없는 일로 증거를 대라며 목소리를 높였고 촬영사진을 보여주자 업주와 이야기하라며 배짱이다.

내친김에 단속반원들은 인근지역 수색에 나섰다.

현장에서 적발된 물량이 많을수록 벌금 등의 형량이 커지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판매업소 인근에 은밀한 보관창고를 마련해 놓기 때문이다.

경험 많은 단속반원들은 이내 매장 뒷편의 아파트단지에 주차되어 있던 미심쩍은 차량을 발견했다.

단단히 문이 잠궈진 건물 옆 에어컨 수리업소도 단속반원들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문을 열어 유사석유통들을 확인했다.

이곳에서 보관중인 것만 18리터 용기에 담겨진 총 22통의 유사석유.

두 번째 단속 현장에서 마주친 유사석유 주유차량의 운전자는 ‘유사휘발유인지 몰랐다’며 불이나케 줄행랑친다.

이곳 판매원 역시 업주가 자리를 비워 잠시 지키고 있을 뿐이라며 오리발을 내밀었다.

전화연락 끝에 판매현장에 나타난 업주는 “단속만 벌써 세 번째인데 자신만 괴롭힌다”며 화를 낸다.

생계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항변도 늘어 놓았다.

판매점 옆에 택배차량으로 위장해 주차되어 있던 화물트럭에는 무려 93개의 유사석유 용기가 발견됐다.

이미 팔린 빈용기에서는 유사석유 잔량이 줄줄 흘러 내려 고약한 알콜냄새가 진동하는 위험천만한 장면도 연출됐다.

세 번째 현장은 사전 연락을 받은 업주가 도주해 행정대집행에 실패.

네번째 행정대집행 업소는 ‘ㅅ건축설비’라는 상호를 내건 점포로 상호와는 무관하게 유사석유 판매로 재미를 보던 이 업소의 사장 역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전화 연락에 성공한 단속반원에게 업주는 “칼들고 쫒아 갈테니 도망가지 말라”며 윽박질렀고 이후 한참만에 차량 가격만 5~6천만원이 넘는 국산 최고급 승용차를 몰고 현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업주는 인상만으로도 산전수전 다 겪은 듯한 조직풍(組織風)의 냄새가 물씬 풍겼고 거친 항변과 욕설을 내뱉기 시작했다.

동행한 경찰이 지켜보는 와중에도 흥분을 가라 앉히지 못한 업주는 단속반원들을 ‘어려운 서민이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을 막는 악덕 공무원’으로 몰아 부치며 주먹질까지 불사할 태세다.

돌아 서는 단속반원들에게 “밤길 조심하라”며 내뱉는 협박에 취재진들의 뒷통수까지 뜨뜻해진다.

판매점 인근에 주차된 차량에는 이미 팔린 유사석유 빈 용기로 가득 차 있었고 미처 팔지 못한 제품들도 상당량 눈에 띄었다.

▲ 판매점을 폐쇄하는 모습과 단속중에도 유사석유를 사고 파는 장면.
-유사석유 단속하면 악덕공무원-

5시간여에 걸친 행정대집행 결과 단속반원들은 4곳의 대상업소중 3곳에서 총 126개의 유사석유 판매용기를 압류하는데 성공했다.

압류된 유사석유는 경기도 용인의 안전물류센터로 옮겨진 후 재처리된다.

위험하고 고된 작업 끝에 긍정적인 결과를 얻었지만 단속반원들의 표정은 그리 개운해보이지 않는다.

이들 단속업소들은 2∼3일후면 보란 듯이 또다시 유사석유 판매에 나설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유사석유 판매점은 지난 1월 한차례의 행정대집행을 통해 판매제품을 압류하고 관련 시설물들을 폐쇄조치했는데 또다시 영업을 재개했고 이날 2차 대집행이 이뤄졌다.

다른 업소들 역시 해당관청의 경고와 단속을 무시하며 꾸준히 유사석유를 판매해왔고 이번 행정대집행 이후에도 곧바로 유사석유 판매에 나설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단속반원들은 그간의 경험으로 알고 있다.

본업인 석유품질검사와 시험 업무 등에 지장을 주면서까지 비 석유사업자들과 관련된 유사석유 단속에 업무력의 상당부분을 빼앗기고 있지만 발본색원이 사실상 불가능한 현실은 석유품질검사소 단속반원들에게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이번 행정대집행을 포함해 올해 들어서만 벌써 3번째 행정대집행을 벌였지만 판매업자들의 수는 좀처럼 줄어 들지 않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재판부의 미온적인 태도다.

석유사업법에서는 유사석유를 제조하거나 판매하는 것은 물론이고 저장이나 운송·보관하는 경우라도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지만 재판부의 판단은 심각하지 않다.

유사석유 판매업자들을 무허가 포장마차처럼 생계형 범죄로 인식하는 경향이 크다.

실제로 적발된 유사석유 판매업자들 대부분은 가벼운 벌금형에 처해지는 경우가 허다하고 검찰에서 공소권을 포기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1∼2백만원 정도의 벌금은 10여일 정도만 유사석유를 팔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니 업자들은 또다시 유사석유 판매에 나선다.

단속현장에서 만난 한 업주는 유사석유 18리터들이 한통을 팔면 4∼5천원 정도가 남는다고 말했다.

차량 한 대에 평균 2통의 유사석유가 주입되는 것을 감안하면 승용차 1∼2백대 정도의 판매물량이면 벌금은 뽑을 수 있다.

전문기관인 석유품질검사소가 단속권한이 없는 것도 한계다.

지자체나 경찰 등 수사기관의 협조없이 석유품질검사소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뚜렷하다.

유사석유의 제조나 판매장에 대해 폐쇄나 철거 등을 명령하고 이를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은 각 지자체장에게 위임되어 있다.

지자체 담당 공무원들이 유사석유 단속에 미온적일 경우 석유품질검사소는 손을 놓을 수 밖에 없다.

사법권을 가진 경찰 역시 대부분이 불기소 처분되는 유사석유 사건에 적극적으로 매달려야 할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유사석유 판매업자들이 단속에 익숙해져 있는 것도 문제다.

판매제품이나 시설물들을 압류하고 철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당 업주에게 행정대집행 영장을 전달해야 하는데 이를 악용한 판매업자들은 대부분 자리를 지키지 않고 대리 판매인을 고용한다.

18일 진행된 마포구 일대의 유사석유 단속 현장 역시 총 4곳의 대상업소중 업주에게 영장이 전달된 것은 두곳에 불과했다.

고유가와 경기침체 등을 이유로 유사석유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사회적인 인식도 문제다.

행정대집행을 지휘한 석유품질검사소 김정태 경인지소장은 “끊임없이 유사석유를 단속하고 처벌하는데도 다양한 현실적인 한계로 판매점들이 줄어 들지 않고 있다”며 “속모르는 이들이 석유품질검사소는 뭐하고 있느냐고 비난할 때 가장 속이 상하다”고 털어놓았다.

경칩과 춘분을 훌쩍 넘어 길어진 해도 뉘엿 뉘엿 기울어 갈 때 쯤 석유품질검사소 단속반원들은 행정대집행 작업을 마치고 압류한 유사석유 용기를 화물차에 실어 담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행정대집행의 결과로 유사석유를 압류당한 업소들이 내일 모레쯤이면 또다시 장사에 열을 올릴 것이 분명해 안전물류센터로 향하는 단속반원들의 발걸음은 무거워만 보였다.

저작권자 © 에너지플랫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