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경쟁촉진, 정부간 경쟁이 더 문제
석유경쟁촉진, 정부간 경쟁이 더 문제
  • 김신 편집국장
  • 승인 2010.04.05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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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부처의 석유 물가 잡기 경쟁이 도를 넘어 서고 있다.

석유 유관 부처로 세금 등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와 석유 산업을 육성 발전시키는 역할의 지식경제부, 불공정 거래 여부를 감시하는 공정거래위원회 등 3곳에서 다양한 석유물가 안정화 대책을 쏟아 내더니 이제는 국민권익위원회까지 가세하고 나섰다.

이들 정부 부처는 실용 정부 출범 이후 경쟁적으로 석유 유통 시장의 불투명성을 부각시키며 기름값 안정과 관련한 다양한 작업을 벌여 왔다.

기획재정부는 석유수입사의 관세율을 낮췄고 일본 등 해외 석유 유통시장과 비교하며 국내 정유업계의 과점 체제에 대한 문제점을 끊임없이 지적해 왔다.

지식경제부 역시 석유수입업 활성화를 위해 비축과 저장시설 의무를 낮췄고 석유유통사업자간 수평적인 거래를 허용하는 등 다양한 규제 완화 정책을 펼쳐 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992년 제정된 주유소 상표표시 고시를 폐지시켰고 정유사와 주유소간 배타조건부 거래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등 다양한 형태의 경쟁 촉진 방안을 추진해 왔는데 이번에는 국민권익위원회가 또 다시 칼을 빼 들려 한다.

우려스러운 대목은 층층시하(層層侍下)에서 시장이 비정상적으로 왜곡되거나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이다.

석유시장은 정유사를 비롯해 전 석유 사업자의 판매 가격이 공개 의무화되고 있고 오피넷(www.opinet.or.kr) 등을 통해 리얼 타임으로 소비자들에게 전달되고 있다.

지식경제부의 후원을 받아 시민단체인 소비자시민모임에서 석유시장감시단을 발족해 유통 구조와 가격을 주목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는 정유사를 비롯해 석유대리점과 주유소 등 석유 사업자에 대한 담합과 불공정행위에 대한 감시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원료와 완제품에 대해 경사관계를 채택하는 것이 글로벌 스탠다드인데도 불구하고 원유와 석유제품의 관세율을 동일하게 책정했고 다양한 수입 활성화 방안을 제도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그런데도 시장 구조가 좀 처럼 바뀌지 않자 또 다시 행정력으로 시장을 바꾸려 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석유 완제품을 관세를 또 다시 낮추고 소비자들이 품질에 대한 불신으로 선호하지 않는 혼합 판매주유소에 대해 품질인증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심지어 정유사들이 각자의 로열티 극대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제휴 신용카드나 보너스카드를 정유사가 협약을 맺어 공동 이용하는 방안까지 고민중이다.

석유가격을 지자체에서 관리해 우수한 성과를 거둔 곳에는 인센티브도 줄 수 있다고 한다.

투명성 확보를 이유로 주유소 사업자들에게는 매출액 보고까지 의무화시키려 하고 있다.

듣기에 따라서는 그럴 듯 하게 보이지만 어느 것 하나 현실적인 것이 없고 반 시장적인 해법들이다.

비단 혼합판매 주유소가 아니라 정유사의 관리를 받는 주유소라도 운영자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유사석유나 품질 기준 미달 석유제품을 구매해 판매할 수 있다.

과연 어떤 방식으로 품질을 인증할 것인지 알 수 없고 해당 업소에서 유사석유라도 판매하다 적발된다면 정부 인증 조차 소비자들은 믿지 못하는 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

로열티 강화를 목적으로 정유사가 자기 비용과 라인을 구축해 계열 주유소와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보너스카드 시스템을 통합하라고 주문하는 것은 시장 질서를 정부 스스로가 훼손시키려 한다는 비난을 살 만하다.

석유시장은 자유화됐고 가격 역시 공정위가 담합 등을 불공정행위에 대해서 감시할 수 있는 권한과 수단을 가지고 있는데 지자체가 가격을 관리한다면 행정 권한을 오남용한다는 지적을 살 것이 분명하다.

국민권익위원회도 그렇고 기획재정부 등 석유 물가 잡기 정책에 목소리를 높였던 정부 부처들은 하나같이 현행 석유가격의 문제점중 하나인 고율의 세금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석유세금을 낮추게 되면 관련 사업자들이 유사석유 등을 제조하거나 유통시킬 유인도 최소화할 수 있는데도 경쟁적으로 석유산업을 ‘공공의 적’으로 몰아 세우고 있는 것은 고유가 부담을 진실로 덜어주려는 의지 보다는 소비자들의 불만을 일시적으로 희석시킬 희생양을 만들어 책임을 면피하려는 것으로 밖에 해석할 수 밖에 없다.

또 하나 공통적인 대목은 정유사의 우월적이고 부당한 권한과 압박에 주유소업계가 희생당하는 것을 안타까워 하는 듯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 역시 경계해야 한다.

얼핏 보면 주유소를 사회적 약자로 감싸 안는 모습이지만 깊숙이 들여다 보면 주유소에 대한 배려는 없다.

대형마트의 주유소 진출을 독려하는가 하면 현장 판매가격을 실시간으로 공개하도록 의무화시킨 것이 바로 정부다.

주유소가 자유롭게 공급사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정책의 밑바탕에서 기름 구매 가격이 인하된 만큼 주유소들 역시 경쟁하라는 시그널이 깔려 있다.

기름물가가 정책으로 잡힐 수 있는 대상이었다면 여러 정부 부처가 경쟁적으로 나서기 이전에 벌써 성과를 거뒀을 것이다.

정부가 진정으로 기름물가 잡기를 희망한다면 누수되는 세금에 집중하는 것이 더 현명할 것이다.

잘 알려진 것 처럼 면세유나 유사석유의 불법 유통으로 한 해 탈루되는 세금의 규모는 많게는 4조원 이상로 추정되고 있다.

석유 부정 유통 시장을 바로 잡고 질서를 회복한다면 탈루되는 세금을 되찾고 기름 세율을 인하해 서민 기름 물가를 낮추는 직접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

석유세금을 낮추게 되면 관련 사업자들이 유사석유 등을 제조하거나 유통시킬 유인도 최소화할 수 있다.
보다 현명한 길을 놔두고 현실성도 없고 시장원리에 반하는 정책에 정부 부처가 경쟁적으로 고민하는 일을 이제는 멈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