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석유 관세를 인하했다.

대표적인 수송연료인 휘발유, 경유와 난방유인 등유, 산업용인 중유의 관세율을 3%에서 1%로 조정했다.

긴급 할당 관세를 적용한 것이다.

정부는 대형 할인마트 사업자들의 주유소 진출을 촉진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도 밝혔다.

석유수입업을 활성화 시키기 위해 규제를 발굴하고 개선하겠다는 청사진도 발표했다.

모두가 서민 생활 안정화 대책의 일환으로 제시된 것들이다.

요약하면 이렇다

석유의 최상위 공급자인 정유사에 경쟁의 유인을 제공해 석유가격을 낮추겠다는 것이다.

정유사와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석유수입사를 육성하고 이들이 도입하는 석유 관세율을 낮춰주면 석유수입이 활성화되고 정유사들은 불가피하게 경쟁에 나서게 되면서 기름 소비자 가격이 떨어질 것이라는 논리다.

대형 할인마트의 주유소 시장 진출 역시 이마트 처럼 강력한 바잉 파워를 행사할 수 있는 소매 마켓이 주유소 사업에 진출하게 되면 정유사의 가격결정권도 뺏어 올 수 있다는 생각인 듯 하다.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대통령이 직접 나서 진두 지휘하고 관련 부처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 짜낸 금과옥조같은 정책이고 보면 듣기만 해도 기름값이 이미 떨어진 것 처럼 마음이 가볍다.

◆ 소비지정제주의 포기한 것인가?

이번 발표를 지켜 보면서 정부가 소비지 정제주의를 포기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석유는 에너지이자 안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대부분의 석유 소비국들은 자국에 정제시설을 구축하고 육성하며 에너지 비용의 절감과 다양한 소비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원유의 97% 가까이를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대표적인 소비지 정제주의를 표방하고 있는데 이번 정부의 대책에는 적극적으로 시장을 개방해 완제품의 수입을 장려하고 관세 인하 같은 인센티브를 제공해 소비지 정제품과 경쟁 구도를 형성하는데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성장 보다는 물가 안정이 더 시급하다’는 것이 대통령의 현실 인식이고 보면 일견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 수단이 문제다.

휘발유는 단 한방울도 수입되지 않는데 관세율을 백번 낮춰봐야 소비자 물가에 영향이 없다.

지난 해 내수 판매를 목적으로 수입된 경유는 76만 배럴에 그쳤는데 같은 기간 내수 소비된 1억4229만배럴의 0.5%에 불과하다.

원유가격이 오르면서 국제 석유가격이 더 크게 상승했기 때문인데 관세율 1~2% 낮추는 효과로는 수입 경제성을 확보할 수 없다.

이번 조치로 석유 수입이 활성화될 수 없다는 뜻이다.

지금도 차고 넘치는게 석유수입사다.

불과 몇 년전까지만 해도 정부에 등록된 수입사의 수가 40~50개를 넘었다.

심지어 대기업인 삼성물산이나 STX에너지 같은 회사들도 석유수입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최근의 국제 석유가격 상승으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석유수입업을 하기 위해서는 법에 근거해 저장시설만 갖추면 된다.

저장시설은 임대해도 상관없으니 사실상 최소한의 요건만 갖추면 누구나 석유수입사업자가 될 수 있는 셈인데 정부는 석유수입업 규제를 찾아내고 활성화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대형할인마트 역시 지금도 자가 상표로 주유소를 하는데 별다른 규제가 없다.

다만 스스로의 경영 판단에 따라 주유소에 진출하지 않는 것 뿐이다.

여러 정황상 정부가 서민물가 안정대책의 수단이라고 제시한 내용들은 ‘양두구육(羊頭狗肉)’과 다름없어 보인다.

양의 머리를 걸어 놓고 개고기를 판매하고 있는 셈이다.

그럴싸해 보이는 물가 안정 대책을 양고기로 생각했던 소비자들은 느닷없는 개고기에 실망할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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