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부의 혹세무민
재경부의 혹세무민
  • 김신편집국장
  • 승인 2007.06.12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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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솟는 기름값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에서 벗어나기 위한 재정경제부의 노력이 눈물겹다.

문제의 본질은 외면한 채 시장 경쟁에서 원인을 찾고 있고 심지어 민간 기업들의 부도덕성까지 직접 거론하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울 정도다.

재경부는 올 하반기 석유제품에 대한 실행관세율을 상반기에 비해 2%p 낮춘 3%를 적용하겠다고 최근 밝혔다.

6월 들어 11일까지 싱가포르 현물시장에서 거래된 휘발유 평균 가격은 배럴당 85.12불로 관세율 5%가 적용받는 것에 비해 탄력관세율이 반영되면 리터당 약 10원 정도의 원가 절감 요인이 발생한다.

그만큼 소비자 가격 인하 효과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데 실제로는 허수에 불과하다.

지난해 기준 휘발유 수입량은 제로이기 때문이다.

석유를 수입해야 인하된 관세율을 적용받고 그만큼의 가격인하효과가 발생하는데 휘발유 수입 자체가 이뤄지지 않으니 효과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휘발유를 수입해 봐야 내수 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다.

6월 기준 수입 휘발유 가격은 85불로 정유사들이 주로 수입하는 두바이유 가격보다 배럴당 20불 정도가 비싸다.

싱가포르 현지 휘발유 가격에 수송비와 내수 시장의 유통비용까지 더해 져야 석유수입사들의 도입 원가가 형성되는데 원유를 도입해 정제하고 내수 시장에 공급하는 정유사 가격보다 크게 높아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재경부가 희망하는 석유 관세율 인하 효과가 시장에 전달되기 위해서는 석유수입사들이 구매하는 국제 석유가격이 크게 낮아 져야 하는데 대한민국 정부의 힘으로 가능하지 않다.

그런데도 재경부는 이번 석유 관세율 인하로 석유수입업이 활성화되고 정유사와 경쟁이 촉진돼 소비자 가격 인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포장하며 국민들에게 홍보하고 있다.

◆ 휘발유 수입 없는데 관세 인하가 무슨 효과?

재경부는 공식 자료를 통해 석유수입사들이 내수 시장을 7% 이상 점유했던 때를 상기시키고 이번 석유 관세율 인하 조치가 기름값 상승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데 당시 상황은 실제로도 그랬다.

2002년 두바이유 가격은 배럴당 23불에 불과했고 싱가포르에서 거래되는 휘발유와 경유 가격은 이보다 3~4불 높은데 그치면서 운송비용이나 내수 유통비용을 감안하더라도 충분한 가격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다.

하지만 고유가 기조가 본격화되면서 국제 석유가격은 원유보다 많게는 배럴당 15불 이상 높아졌고 올해 들어서는 20불까지 차이가 나고 있다.

단순 원가만으로 수입 휘발유는 원유에 비해 리터당 117원 이상 비싼 구조로 석유 관세율 인하로 10원 정도가 낮춰진다고 해도 경쟁력을 찾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다.

6월 기준 휘발유의 세전 가격은 리터당 606원으로 이중 원유 도입가격이 377원 정도를 차지하는데 수입 휘발유는 500원에 가까운 원가 구조를 가지고 있어 도저히 내수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재경부는 이번 석유의 관세율 인하조치를 산자부와 합의해서 결정했다고 밝혔는데 석유산업을 관장하는 산자부가 석유수입업이 갖는 태생적인 경쟁력 한계를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도 이들 두 부처는 석유 관세율을 2%p 인하하면 석유수입이 봇물을 이루고 정유사와 경쟁이 심화돼 소비자 가격 인하로 이어질 것이라는 무책임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심지어 정유사의 비도덕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재경부는 관세율 조정과 관련한 공식 자료에서 공정위가 담합을 이유로 정유사에 엄청난 과징금을 부과한 사실을 언급했고 휘발유 유통마진 추이를 분석하며 정유사들이 폭리를 취하고 있는 것 처럼 소개했다.

공정위의 담합 결정에 대해 정유사들은 이미 이의신청 등의 절차를 밟고 있고 공정위의 형사고발에 대해 검찰조차 경유의 부분적인 담합 사실만 확인하고 있을 뿐인데 재경부는 진행중인 사건을 공식 문서에서 언급하며 정유사의 부도덕성을 재단하고 있다.

재경부 고위 관계자는 기름에 부과되는 고율의 세금을 인하하라는 사회적인 요구에 대해 시장 원리에 맡겨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렇다면 석유산업이 자율화됐고 가격이나 유통에 개입할 근거가 없는 정부는 기름값 결정 역시 시장 자율에 맡겨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담합이나 폭리 등의 근거가 있다면 법으로 차단하고 처벌하면 된다.

그런데도 기름값을 낮출 수 있는 스스로의 수단 즉 세율 인하는 뒤로 숨겨 놓고 효과도 없는 석유 관세율 인하로 생색을 내면서 민간 기업은 부도덕한 기업으로 내몰고 있다.

재경부의 급한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정이 이 정도면 가히 혹세무민(惑世誣民)이라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어 보인다.

하반기 석유 관세율을 내렸는데도 석유수입업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기름값 인하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재경부는 또 어떤 변명을 내놓고 누구를 탓할지 벌써부터 궁금해 진다.

정유사와 싸우라고 석유 관세 내려 놨는데도 시장을 활성화시키지 않는다고 석유수입사를 비난할 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