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제개편 왜곡*에너지 믹스 훼손 우려 들어 주유소 반발

연구용역 통해 타당성 확보중인 충전업계는 정중동

지난해 연말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에너지절약추진위원회에서 경차 보급 활성화 방안중 하나로 그 가능성이 거론된 LPG 경차가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LPG 경차 허용과 관련해 정부가 추진중인 에너지세제개편의 무효 시비가 제기되고 있는가 하면 휘발유 시장 상당부분을 빼앗길 수 있다는 주유소업계의 위기감이 커지면서 집단 반발 양상도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을 통해 LPG 경차 보급이 확정된 것처럼 보도되면서 열쇠를 쥐고 있는 산업자원부도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LPG 경차 허용여부를 고민하는 단계’이지만 일부 언론을 통해 확정이 된 것처럼 알려지면서 주유소 등 직접적인 피해가 불가피한 사업자들의 반발이 조기에 촉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행규칙만 바꾸면 되는데… = 산자부가 운용하는 ‘액화석유가스의 안전관리 및 사업법(이하 액법)’에서는 LPG 연료 수요자를 제한할 수 있는 규정이 마련되어 있다.

액화석유가스 즉 LPG의 적정한 수급이나 사용상의 안전관리, 기타 공익상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자동차나 그 사용자에 대해서 연료로 사용하는 것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만 LPG 승용차를 사용할 수 있는 예외조항을 마련하고 있는데 국가유공자나 장애인, 광주민주유공자가 LPG 자동차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액법에서 허용했기 때문이다.

경차 LPG 역시 산자부가 액법 시행규칙에 근거한 LPG 사용 예외조항을 개정하면 곧바로 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

경차 LPG가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법령 정비 절차는 그만큼 간단하다.

하지만 이 경우 수송연료시장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적지 않아 관련 법령을 개정하는 과정이 말처럼 순탄치 만은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건설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 2월 기준 800CC 미만의 경차는 총 74만4911대가 등록되어 있어 796만 여대에 달하는 휘발유 등록차량중 9.35%에 달하고 있다.

산술적으로 경차 연료 수요가 LPG로 전환되면 주유소 고객인 휘발유 차량의 9% 이상이 충전소로 이탈되고 휘발유 소비량도 5% 정도 감소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내년 이후부터는 경차의 범위가 현재의 800CC 미만에서 1000CC 미만으로 확대되고 이 경우 현재 출시중인 기아자동차의 ‘모닝’도 경차에 포함돼 LPG 전환 휘발유 차량의 비중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 때문에 주유소업계는 관련 협회를 중심으로 대정부 건의서를 전달하고 고위 관료를 면담하는 등 긴박한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세제개편 왜곡 등 집단 반발 예상 = 주유소협회가 산자부, 환경부, 재경부 등에 전달한 건의문을 통해 LPG 경차가 허용되면 오히려 에너지절약 정책에 배치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휘발유나 경유에 비해 LPG의 에너지소비효율이 낮다는 이유에서다.

에너지관리공단에서 발표하는 ‘자동차 에너지소비효율등급’에 따르면 현대자동차 쏘나타 2.0의 경우 휘발유와 경유 연료를 사용하는 차량의 소비효율등급은 1~3등급을 기록했지만 LPG는 4~5등급에 그쳤다.

연비 역시 휘발유나 경유 연료를 사용하는 차량이 LPG에 비해 평균 25.9%가 높다는 것이 주유소협회측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주유소협회측은 “정부가 지난 1992년부터 자동차 에너지 소비효율제도를 운영하는 취지는 전체 에너지 소비량중 21%를 차지하는 수송용 에너지 절약이 목적인데 오히려 연비가 낮고 소비효율도 떨어지는 LPG를 경차 연료로 허용하는 것은 에너지절약정책에 배치된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2001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에너지세제개편의 취지도 훼손된다는 지적이다.

연료간 상대가격의 형평성이 결여 되면서 특정 연료를 사용하는 차량이 급증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이 세제개편의 근본 취지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부는 휘발유 가격대비 경유와 LPG의 세금이 낮고 특히 LPG의 차량이 급증하고 있다며 휘발유와 경유, LPG간의 2000년 상대가격비인 100:47:26을 100:75:60으로 조정하는 내용의 세제개편을 2001년 이후 시행해 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경유 승용차 시장이 허용되면서 휘발유 승용차가 경유 승용차로 급격하게 전이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자 또 다시 2차 세제개편 작업을 벌여 휘발유와 경유, LPG의 상대가격비를 100:85:50으로 재조정했고 그 결과 올해 7월에도 경유 관련 세금이 5% 추가 인상될 예정이다.

결국 선진국형의 적정한 에너지 믹스가 세제개편의 근본 취지였는데 정부는 세수지향적인 개편으로 연료 관련 세수 증대효과만 얻고 에너지절약을 이유로 LPG 경차를 허용하게 되면 지난 7년간의 세제개편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주유소협회는 부득이 하게 경차 LPG를 허용할 경우 에너지믹스를 감안한 또 다른 에너지세제개편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유소협회 정상필 기획팀장은 “2005년에 실시된 2차 에너지세제개편이 경유 승용차의 출시를 계기로 경유차의 급증이 초래될 수 있다는 이유로 경유 상대 가격은 높이고 LPG는 낮추는 방식으로 재조정된 만큼 LPG경차가 허용되면 경유 세율은 낮추고 LPG 세율은 높이는 3차 세제개편이 전제가 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RV차량의 LPG 사용을 전면 금지해 전체적인 LPG 국내 수요의 급격한 증가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만약 이같은 전제가 선행되지 않고 LPG 경차가 허용되면 집회 등 주유소 업계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을 동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석유협회는 국내 석유수급의 불균형을 우려하고 있다.

계절적 수급 불균형 현상이 뚜렷한 LPG는 특히 공급처도 중동 일부 국가에 집중되고 있는데 내수의 57.7%를 수입하고 있는 국내 LPG의 수요가 늘어나게 되면 국제 가격 상승을 초래해 무역수지가 악화되고 에너지 안보도 위협받을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LPG 경차의 안전성이나 환경성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경차의 트렁크 공간이 협소해 후방 추돌시 연료 탱크 폭발 등의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은데다 일산화탄소와 탄화수소 등 일부 대기오염물질의 배출량이 휘발유에 비해 낮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05년 환경부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경차의 경우 LPG 연료를 사용하는 차량이 휘발유 차량에 비해 일산화탄소는 200%, 탄화수소는 120%, 질소산화물은 151%가 더 많이 배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 석유협회측의 설명이다.

◆산업연구원 용역결과에 주목 = 이 같은 석유업계의 분위기와는 달리 충전사업자들은 말을 아끼고 있다.

LPG 경차 허용논란이 자칫 주유소와 충전사업자간의 밥 그릇 싸움으로 비춰지는 것에 대해서 극도로 경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공론화를 자제하고 수면아래서 진행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점도 십분 활용하고 있다.

다만 LPG 경차가 허용되고 LPG수급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는 내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지난해 기준 연간 5만대 정도 판매된 경차가 모두 LPG를 사용한다고 해도 증가되는 신규 수요는 연간 20여 만톤 정도에 불과할 것이라는 분석 때문이다.

특히 최근 들어 LPG차 판매량이 늘고 있지만 90년대 말 출시된 LPG RV가 대폐차 시기를 맞고 있고 현재 장애인 LPG보조금 축소, 경상용차 라보와 레조의 판매 중단 등의 움직임을 감안할 때 수송용 LPG 수요는 축소될 가능성이 있어 LPG 경차가 보급된다고 전체적인 수급 불안이나 도입 가격 상승을 야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LP가스공업협회와 LPG산업환경협회는 지난해 연말 산업연구원 전재완 연구위원측에 연구용역을 의뢰해 LPG 경차 보급의 당위성을 확보중이다.

연구용역에서는 경차가 보급될 때의 에너지 절감이나 대기환경개선 효과에서부터 LPG 수급에 미치는 영향, 경차 보급 활성화 방안 등 다양한 주제가 다뤄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유럽이나 일본 등 해외 경차 시장의 실태조사와 국내 자동차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LPG 연료의 만족도나 경차 구매 동기 등의 의식 조사도 병행하고 있다.

LP가스공업협회 등에서 의뢰한 연구용역의 결과는 산업자원부의 정책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LPG 경차 허용의 열쇠를 쥐고 있는 산업자원부는 아직은 공식적인 입장을 정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산업연구원의 연구결과를 지켜본 후 최종 판단을 내릴 계획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가스산업팀의 경우 관련 업계와 부처간의 의견 조율을 거쳐 LPG 경차 허용을 위한 관련 법령 개정작업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석유산업팀에서는 보다 신중한 고민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석유산업팀 박상희 사무관은 “LPG 경차가 허용되면 LPG 수급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휘발유 차량에 비해 환경오염이나 안전성 등의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며 “다만 산업연구원에서 LPG 경차 허용과 관련한 연구용역이 진행중인 만큼 그 결과가 나오면 팀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정하겠다”고 말했다.

결국 에너지절약을 유도하겠다는 긍정적인 명분과 에너지세제개편의 취지가 훼손되고 에너지믹스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등의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반대 논리 사이에 산자부가 어떤 정책적 판단을 할 것인지는 산업연구원의 연구 결과가 나오는 이달말 쯤 대충의 윤곽이 정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편 LPG 경차의 안전성과 관련해서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돼 주목을 사고 있다.

산자부 에너지 안전팀 심성근 팀장은 “경차 LPG허용과 관련해 안전성 측면을 면밀히 검토해 보지는 않았지만 현재 택시로 운행되고 있는 승용차와 마찬가지로 기준에 부합만 되면 경차라고 특별히 위험성이 증가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환경성과 관련해서는 환경부의 입장이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아직 산자부의 최종 입장이 확정되지 않아 부처간 협의 등이 진행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언급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환경부 교통기획과 박광칠 사무관은 “소형차는 에너지소비 효율성 개선은 기대되고 있지만 국내 완성차 업계 기술 현황으로는 소형차와 중대형차의 환경오염물질 배출량이 비슷한 상황”이라며 “관련 업계와의 의견 조율, 기술개발 실태, 오염물질 배출 등에서 대해서 좀 더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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