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앤이타임즈 : 에너지경제연구원 이달석 명예 선임연구위원]

에너지경제연구원 이달석 명예 선임연구위원

중동 산유국인 아랍에미리트(UAE)는 지난달 29일 머반유에 대한 선물거래를 시작하면서 모든 자국산 원유의 실물거래에서 도착지 제한을 폐지하기로 했다.

머반유가 새로 출범한 ICE 아부다비 선물거래소(IFAD)에 상장돼 거래됨에 따라 중동 원유의 가격 투명성이 제고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머반유 선물은 트레이더와 정제업체들로 하여금 중동 원유의 가격과 정제마진에 대한 폭넓은 헤지(hedge)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머반유 선물가격은 기존 S&P 글로벌 플래츠가 평가하는 두바이유 현물가격과 두바이상업거래소(DME)에서 거래되는 오만유 선물가격을 제치고 아시아 시장의 새로운 벤치마크 원유가격으로 부상할 가능성도 있다.

머반유가 두바이유나 오만유에 비해 유동성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머반유 생산량은 UAE 국영석유회사 ADNOC이 생산하는 원유의 절반가량인 하루 2백만 배럴에 이르고, 이중 하루 1백만 배럴은 세계적으로 60개가 넘는 정유회사들이 수입해 사용하고 있다.

이와 비교해 두바이유 생산량은 하루 3만 배럴에도 미치지 못하고, 오만유 생산량은 하루 80만 배럴 정도이지만 대부분이 중국으로 수출되는 물량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와 같은 중동산 원유의 수입국들에게는 머반유의 선물거래보다는 이를 계기로 UAE가 판매 원유의 도착지 제한을 폐지했다는 점이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중동 산유국들은 막대한 양의 원유를 생산해 수출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국가들이 현물 판매보다는 기간계약으로 수입국의 정유업체들에게 직접 원유를 판매하고 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이란 등 수출량이 많은 산유국이 더 엄격한 판매정책을 채택해 오직 기간계약으로만 원유를 거래한다.

자국 원유의 판매 물량을 장기간에 걸쳐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이에 더해 중동의 주요 산유국들은 판매하는 원유에 대해 도착지를 제한하고 제삼자에게 재판매하는 것을 금지하는 경직적인 판매방식을 취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북아시아 원유수입국의 정유업체들은 중동산 원유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

아시아 지역 내에 원유의 수출 여력을 가진 국가가 거의 없는 데다 우리와 가까이 위치한 중동 지역이 수송비용 등 원유수입의 경제성 면에서 다른 지역에 비해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중동 산유국들의 도착지 제한과 제삼자 판매 금지는 아시아 정유업체들로 하여금 원유의 가격 변동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없게 한다.

또한 중동 원유가 역내 시장을 지배하므로 가격 변동에 대응해 수입선을 다른 곳으로 전환하기도 어렵다.

이와 같은 상황은 중동산 원유의 아시아 지역 판매가격이 미국과 유럽 지역 판매가격보다 높게 책정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른바 중동 원유의 ‘아시아 프리미엄’이 그것이다.

그러나 오랜 기간 견고하게 유지돼 왔던 중동 원유의 경직적인 판매방식이 UAE의 도착지 제한 폐지로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UAE의 판매정책 변화는 과거와는 달리 아시아 시장에서 산유국들의 판매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시장의 힘만으로는 중동의 주요 산유국들이 오랫동안 유지해온 판매방식이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동북아시아 지역의 원유수입국 정부와 정유업체들이 힘을 모아 도착지 제한과 제삼자 판매 금지 등 중동 산유국들의 경직적인 원유 판매방식에 대한 개선을 촉진시켜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중국‧일본의 에너지 및 경제 협의체 등 역내 국가들의 협의체를 활용해 공조 방안을 모색하는 동시에 중동 산유국과의 다자간‧양자간 대화를 통해서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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