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송에너지 전환, 정유사는 석유화학 원료 공급 기지로 전락

에경연 김재경 박사팀 ‘E-mobility 성장 따른 석유 대응 전략 연구’

‘정유사 = 공적 자산’ 저탄소 연료 개발 등에 국가적 지원 등 필요

정부 개입 인위적 개편에 영세 주유소 대응은 한계, 지원책 마련돼야

‘정의로운 전환’ 위해 폐업시 토양오염·사업 전환 공적 자금 지원 필요

전기차와 수소차의 확대로 2040년까지 석유제품 내수시장이 15% 이상 축소되고 경유와 휘발유 수요가 37.7% 감소하면서 국내 정유산업에 상당한 타격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 사진은 서울시청 전기차 충전소 모습.

[에너지플랫폼뉴스 지앤이타임즈]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에 근거해 석유 수요 조감 조치들이 실행되면 2040년 석유 내수 시장은 최소 15% 이상 축소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석유제품을 생산하는 정유사들은 석유화학 원료를 공급하는 일종의 하청 역할에 머무를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았다.

우리나라 최초로 도내 모든 차량을 전기차 등 이른 바 그린모빌리티로 전환하겠다는 제주도의 용역을 받아 ‘전기차 보급확산에 따른 기존산업과 상생협력 실행방안’을 연구했던 에너지경제연구원 김재경 박사가 최근 발간한 보고서가 주목을 받고 있다.

김재경 박사팀은 ‘E-mobility 성장에 따른 석유 산업 대응 전략 연구’ 보고서를 발간하고 수송에너지 전환이 국내 석유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전망했다.

◇ 2040년 석유 내수 시장 최소 15% 축소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 해 확정한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에 근거해 수송에너지 전환 같은 석유 수요 저감 조치들이 실행되면 2040년 석유 내수시장은 최소 15% 이상 축소된다.

E-mobility 성장에 따른 석유·전력·신재생에너지 산업 대응 전략 연구보고서

특히 경유와 휘발유 같은 수송용 수요 타격이 심각해 경유는 2040년까지 BAU(기준 시나리오) 대비 37.7%, 휘발유는 37.7%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전체 석유 내수 위축 보다 수송연료 시장이 더 많이 타격을 받게 되는 셈이다.

문제는 정유 산업인데 전체 수익의 2/3가 경유와 휘발유 판매에서 발생하는 점을 고려하면 수송에너지 전환 추진으로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됐다.

특히 정유산업이 석유화학분야의 원료 하청 기지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의 수송에너지 전환 추진은 석유제품 수요 구조에도 변화를 일으켜 내수시장에서 휘발유, 경유 등 수송용 연료 수요를 위축시키고 그 대안으로 정유사들은 산업용 납사 수요 의존도를 60% 까지 늘릴 것으로 예측했다.

이 경우 국내 정유산업은 사실상 석유화학산업의 원료 공급부문으로 전락하고 그동안의 수출 주력산업 지위는 상실하게 된다.

유가 하락으로 지난 해 우리나라 정유사들의 석유수출액이 줄었는데도 241억불로 집계되면서 금액 기준으로 반도체, 일반기계, 자동차, 석유화학, 철강에 이어 6위를 차지했는데 갈수록 수출 기여도는 줄어들 수 밖에 없는 셈이다.

◇ 현재도 사업 지탱 임계 수준, 향후 급격한 위축 불가피

주유소 등 석유 유통 부문에 미치는 영향은 더 심각한 것으로 예측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주유소 시장은 과당경쟁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로 한계주유소들의 폐업이 속출해 지난 10년간 연평균 1.3%씩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3차 에너지 기본계획에 근거한 수송에너지 전환 정책이 시행되면 휘발유나 경유차 규모가 줄어들며 2040년까지 주유소 한 곳 당 평균 영업 손실이 BAU 대비 약 31.9%, 금액 기준 12억 6500만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에 대해 김재경 박사팀은 ‘현재도 영업실적이 사업을 지탱할 수 있는 임계 수준에 근접해 있음을 감안하면 주유소 사업의 급격한 위축은 불가피하다’고 진단하고 ‘현 수준의 평균적인 영업실적을 유지하기 위해 2040년에는 주유소 2,980개만 존립 가능하다’고 예측했다.

2019년말 기준 1만1,509개 주유소가 영업중인 것을 감안하면 74% 수준인 8,529곳이 시장에서 퇴출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연구에 앞서 제주도 용역으로 김재경 박사가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2030 탄소제로 섬 (Carbon Free Island)’이 추진되면 2030년에는 주유소 93%가 사라지고 LPG충전소는 모두 문을 닫아 화석 연료 공급 생태계가 붕괴될 것으로 예측된 바 있다.

◇ 정유사는 적극적 저탄소 대체연료 개발 나서야 

수송에너지 전환 정책이 전 세계적으로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인 점을 감안하면 정유와 석유 유통 산업의 위축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이와 관련해 김재경 박사는 국내 정유 산업이 자기 책임 아래 스스로 대응전략을 마련하기 위한 자구노력과 자기혁신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 일환으로 수송에너지 전환으로 휘발유 등 수송 연료 생산이 줄어들게 되는 만큼 석유화학원료로 공급될 납사 생산과 공급에 집중하는 전략을 제안했다.

최근 해외 정유공장 신설 프로젝트나 중요한 정유 공장 업그레이드 프로젝트 대부분의 주요 목표가 석유화학 생산이고 대규모 정유공장이 석유화학공장과 통합된 사례들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수송에너지 전환에 대응할 수 있는 저탄소 대체연료(Low Carbon Alternative Fuels) 개발도 주문했다.

한편으로는 국내 정유산업을 ‘국민의 공적 자산’으로 해석해  정부와 공공 부문의 대응 전략 마련을 위한 정책적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에 대해 김재경 박사는 ‘수송에너지 전환 등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국내 정유 산업의 기술개발을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보다 체계적으로 연구체계 구성과 예산 지원’을 제안했다.

◇ 정부 주도 구조조정에 주유소 대응 한계, 지원책 마련돼야

석유유통부문은 개별 사업자들이 환경변화에 조직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중소기업 또는 소상공인에 속하는 영세한 주유소들이 개별 사업체 단위에서 수송에너지 전환 같은 정부 개입의 인위적 산업구조 조정의 시장환경에 대응하는 데 한계가 분명하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김재경 박사는 ‘최근 그린뉴딜 논의와 더불어 정의로운 전환 원칙도 함께 조명받고 있음을 고려하면  주유소 사업자들도 노동자에 준하는 중소기업과 또는 소상공인에 속하는 영세한 사업자라는 점에서 동일하게 적용될 필요가 있다’고 해석했다.

내연기관차 판매 또는 등록 금지 같은 수송에너지 전환은 자유로운 시장에 의한 자연스러운 전환 과정보다 정부 개입에 의한 의도적, 인위적인 내연기관차 관련 산업 구조 조정 성격이 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구체적인 지원책도 제안했는데 영업난 등으로 문을 닫는 주유소들의 사업 전환 부담을 줄이기 위해 토양 오염 정화 비용 지원을 주문했다.

주유소 폐업시 토양환경보전법령에 근거해 토양오염도 조사와 오염 토양정화 등의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오염 토양 복원 비용이 평균 1억 3,340만 원, 면적이 클 경우 5억 원 이상이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관련 법규 개정 등을 통해 토양오염 정화비용 지원을 위한 주유소 공제조합 설립과 적극적인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구체적인 지원책으로 주유소 공제조합에 에너지자원특별회계 같은 공적 자금 등 특정 재원을 명시적으로 직접 활용할 수 있도록 석유사업법령 개정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공익적인 사업 특히 수송에너지 전환 정책과 맥을 같이 하는 전기·수소차 공공충전소 구축 과정에서 기존의 주유소 용지를 지목 변경하면 지방세 감면 등의 세제 혜택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중소기업 사업 전환 지원 사업에서 주유소 우대 혜택 지원도 제안했다.

정부 정책 변화로 주유소 사업을 접고 새로운 사업으로 전환할 때 상당한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으로 현행 ‘중소기업 사업전환 촉진 특별법령’에 근거해 주유소 폐업과 전환을 위해 공적 자금 지원이 필요하다고 보고서는  제안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김재경 박사는 "최근 그린뉴딜 논의와 함께 ‘정의로운 전환’의 원칙도 함께 조명 받고 있다"며 "석탄화력 발전소를 넘어 수송에너지 전환을 통해 부득이하게 사업 기회를 박탈당하는 주유소 사업자에도 '정의로운 전환'을 적용해 정부나 공공부문이 사업 전환의 일정부분을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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