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농협, 국책 사업 연계 농민에 자금 지원 모색

5년간 면세유 90% 구매 옵션…특화 사업 농민 부담분 지원 

PE 재질 용기로 안전 문제‧가짜석유 불법 전용 우려도 제기 

한 지역농협이 조합원들에게 발송한 농업용주유기 지원사업 안내 공문

[에너지플랫폼뉴스 지앤이타임즈] 일부 지역농협이 정부 국책사업을 등에 업고 면세유 독점을 추진하려 한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생명농업특화지구 육성사업’이라는 국책사업을 통해 농가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는데 대상에 농업용 주유기 지원 사업을 포함시키고 농민 자부담을 농협이 대신 떠안는 방식으로 면세유 시장 장악을 꾀하려 한다는 지적이다.

그 과정에서 농업용 주유기의 안전성, 가짜석유 취급 등의 부작용도 우려되고 있다.

최근 충북의 한 지역농협은 관내 농민들에게 농업용 주유기 보급사업에 참여하라는 문서를 발송했다.

영농 편의 제공과 농가 경영비 절감을 위해 구매 비용이 310만원에 달하는 농업용 주유기를 농민 자부담 31만원에 구매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대상은 농협 면세유 2000리터 이상을 배정받은 농가로 지난해부터 올해 9월 30일까지 실적 우수 농가를 우선 선정한다고 밝히고 있다.

조건은 5년 이상 농협주유소에서 판매하는 유류를 이용해야 하고 연간 개인별 배정분의 90% 이상을 구매해야 한다.

다만 지원 위반시 농협 지원액을 반환하고 농업용 주유기를 회수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

지역농협의 이 같은 문서발송에 해당지역 주유소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농협이 계열 주유소의 석유 매출액 확대를 위해 정부 지원 사업을 등에 업고 일반 주유소는 배제한 채 면세유를 독점하려 한다는 것이다.

경유 960리터 저장용량의 농업용주유기 모습(사진출처:효창위드유 홈페이지)

◇ 주유기 지원·면세유 구매 요구, 불공정 논란 일어  

본지 확인 결과 해당 사업은 농림부가 진행하는 국책사업인 ‘생명농업특화지구 육성사업’에 근거한 것으로 개발 여건이 불리한 대청호권 남부 3군인 충북 보은, 영동, 옥천군의 지역 특화 작목 명품화를 위해 지원하는 사업이다.

지원 대상은 친환경농업 육성 등 친환경농산물 인증 확대를 위한 사업 자금과 지역별 향토성 있는 특화작목의 품질향상 등 경쟁력 제고에 맞춰져 있다.

농림부 자료에 따르면 해당 사업을 수행하기 위한 재원은 국비 20%, 도비 30%, 융자 30%가 지원되고 나머지 20%는 농가 자부담이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50%를 대고 나머지 50%는 융자와 자부담을 통해 농민이 부담해야 하는 사업이다.

그런데 일부 지역농협에서 지원 대상에 농업용 주유기 보급을 포함시켜 놓고 농민 자부담인 융자 30%와 자부담 20% 등 50% 중에서 40%를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 경우 농민은 10%만 부담하면 농업용 주유기를 구매할 수 있는 셈이다.

다만 농협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농가에서 배정받은 면세유 물량 중 90% 이상을 농협 주유소에서 구매하도록 조건을 달고 있어 불공정행위에 해당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해당지역의 한 일반주유소 운영자는 “농협의 지역 조합장간 실적 경쟁이 심하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로 면세유 판매 확대가 농협 매출액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금융사업을 병행하는 농협이 막대한 자금력을 활용해 정부 국책 사업까지 끌어 들이며 불공정한 방법으로 면세유를 독점하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해당 농협 관계자는 “올해 처음 추진한 농업용주유기 보급사업은 영농 편의를 위해 조합원들의 요구에 따라 추진하게 됐다”며 “정부 사업과 농협의 부담이 포함된 사업으로 농협을 끼지 않고 농민이 직접 지자체에 신청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농업용주유기로 이동주유 가능함을 홍보하고 있다. 사진은 특정 기사와 무관함.(사진출처:효창위드유 홈페이지)

◇ 위험물안전관리법령 지정 수량 미만으로 관리 사각지대 

농협이 구매 지원하겠다는 농업용 주유기 안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국내 시판중인 농업용 주유기 대부분은 수입품으로 PE 재질 용기에 전기구동 펌프와 노즐까지 달려 있다.

저장용량은 100리터에서 960리터까지 다양한 용량으로 판매되고 있는데 현행 법령상 농가에서 소유하는 것이 가능하다.

위험물안전관리법령에서는 경유 지정 수량을 1000리터 이상 저장 용량으로 규정하고 있어 그 미만 용량일 경우 위험물 저장, 취급 등의 제한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법에서 정한 지정 수량 미만일 경우 저장, 취급 등의 관리 규정을 지자체에 위임해 놓고 있는데 지나치게 포괄적인 규정이어서 사실상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농업용 주유기가 달린 저장탱크에 위험물인 경유 등을 담은 상태로 화물차에 싣고 이동하며 사용하거나 주유기 펌프를 자동차 배터리에 연결시켜 작동하는 등 다양한 형태의 저장, 취급이 가능하다.

하지만 소방청은 저장용량이 지정수량 미만이고 농업용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안전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위험물이 담긴 저장탱크에 전기가 공급되는 주유기 펌프를 부착한 것에 대해서는 세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농가에서 면세유 사용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서 주유기 달린 저장탱크 보급이 허용되고 있지만 자칫 가짜석유 보관 등의 용도로 전용될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최근 가짜경유 판매업자들은 경유에 등유를 섞은 가짜경유를 탑차 등에 FRP 물탱크에 담아 판매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농업용 주유기가 설치된 저장탱크가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유소협회 한 관계자는 “가짜석유 판매업자들이 FRP 물탱크와 펌프 대신 농업용 주유기를 이용할 경우 가짜석유는 급격히 확산될 개연성이 크다”며 “저장용량을 줄이거나 트랙터 탱크용량 등을 고려해 농업용 주유기의 저장용량을 500리터 이하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농협이 국책사업까지 이용해 면세유 매출 확대를 꾀하면서 일반 주유소들이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가운데 농협이 농민들에게 지원할 예정인 농업용 주유기에 대한 안전성 문제와 가짜석유 불법 전용 가능성도 간과할 수 없어 이와 관련한 정부의 대처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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