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앤이타임즈 : 숭실대 경제학과 조성봉 교수]

숭실대 경제학과 조성봉 교수

전력시장을 재설계한다고 한다.

많이 늦었다.

이제라도 빨리 손을 보아야 한다.

지금의 전력시장은 2001년 전력거래소가 탄생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전력시장만 고쳐서는 될 일이 아니다.

정책 환경이 바뀌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처음 전력거래소가 출범했을 때 잠깐만 비용평가시장(CBP, Cost Based Pool)을 운영하고 곧바로 양방향입찰시장(TWBP, Two Way Bidding Pool)으로 옮겨갈 줄 알았다.

그러던 것이 전력산업 구조에 별다른 진전이 없으면서 지금까지 왔다.

바뀐 것도 많지 않다. 전력시장 규칙을 보완하고 고쳤을 뿐이다.

그렇게 고친 것 상당수가 누더기요, 땜질이다.

이제는 그렇게 고치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무엇을 개선해야 할까?

정부는 안정적인 전력수급과 온실가스 및 미세먼지 감축 등 에너지전환에 올바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자신의 발전량을 제대로 예측도, 제어도 못 하는 재생에너지가 확대되고 있다.

계통운영 측면에서는 큰 골치 덩어리다.

이에 대비해 속응(速應)성 발전설비를 제 때에 투입하려면 실시간 전력시장을 개설할 준비를 해야 하고 보조서비스 시장도 확충해야 한다.

석탄·원자력·천연가스의 삼대 발전원 구성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다음 정부에서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현 정부는 탈원전과 탈석탄을 추진하고 있다.

재생에너지가 늘어나지만 대안은 천연가스밖에 없다.

문제는 천연가스 시장이 급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과 우리나라 등 아시아 지역에서 수요가 급증하지만 미국의 셰일가스로 인해 국제 천연가스 시장이 구매자 시장으로 전환되고 있고 국내에서는 발전용 천연가스 도입에서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또한 과거부터 천연가스 발전소를 건설해 경쟁했던 민간 발전사업자의 수익성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

변화의 한 가운데 있는 천연가스가 발전원으로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나 전력시장은 이러한 변화에 준비되어 있지 못하다.

이처럼 현재의 전력시장에서 손을 봐야 할 부분은 한두 군데가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이 같은 디테일에 있을 것 같지 않다.

아무리 세세하게 전력시장을 재설계하더라도 지금의 정책환경이 변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일례로 가장 큰 문제점은 전기요금 규제이다.

지난해 한전은 1조2765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전기요금을 인상하지 않고 있다.

소매요금을 이렇게 못 올리게 막는 정부의 ‘기민하고 능력 있는’ 공무원들이 전력의 구입원가를 결정짓는 도매시장에서 SMP가 자유롭게 결정되도록 둘리 만무하다.

전력시장에서 보조서비스에 대한 보상이 충분치 못한 이유, 10년 넘게 CP가 인상되지 못한 이유도 따지고 보면 이 때문이다.

우리 전력시장에는 장기적인 전력매매계약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왜 그런 것일까?

판매부문에서 경쟁이 이루어지지 않고 한전이 이를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점적 판매사업자인 한전과 장기계약을 해봐야 협상력의 차이로 불리하기 마련이라는 것을 발전사업자들이 잘 알고 있어서 장기계약을 기피하는 것이다.

정산조정계수라는 희한한 제도도 파행적인 전력산업 구조와 공무원들의 ‘기발한’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6개 발전자회사와 모회사 한전간의 교차보조를 허용하고 다른 발전사에 대해서는 별도의 방식으로 정산하는 현재의 메커니즘은 전력시장을 사실상 한전 그룹의 계열사간 내부거래로 전락시키고 있는 낯부끄러운 제도다.

이 역시 공기업 중심의 정책환경, 독점적 전력산업을 전제로 한 정부의 정책적 전제하에서 나온 발상이다.

전문가들이 모든 지혜를 짜내서 전력시장을 재설계할 것이다.

그러나 경쟁을 통한 효율적인 전력공급이라는 전력시장의 정신은 전기요금의 정치적 결정, 독과점적인 산업구조라는 제한적인 정책 환경에 의해 다시 발이 묶일 가능성이 높다.

전력시장은 결국 그 나라 에너지정책이 어떤 환경에 놓여있냐에 따라 결정된다.

중요한 것을 놔두고 세부적인 것을 고쳐봐야 큰 의미가 없다.

<본 칼럼은 외부 필진 기고문으로 본 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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