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업 부도나면 들여다 보지 말고 지금 들여다 보라
정유업 부도나면 들여다 보지 말고 지금 들여다 보라
  • 김신 발행인
  • 승인 2020.04.16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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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앤이타임즈]국가 기간 동력원인 석유에너지를 생산하는 정유산업은 안정적인 수급과 비축 안보, 가격 안정 등에서 다양한 의무와 규제를 받고 있다.

정유사들은 석유사업법령에 근거해 일평균 내수 판매량의 28일분에 해당되는 운영재고량을 포함해 연간 40일분에 해당되는 석유 비축 의무를 감당하고 있다.

석유산업의 정부 재정 기여도는 단연 높다.

기획재정부 자료에 따르면 휘발유와 경유에서 걷히는 교통에너지환경세가 2018년 기준 15조3천억원에 달했다.

당시 전체 국세 징수액이 293조원을 기록한 것을 감안하면 5.2%의 기여도에 해당되는 엄청난 규모이다.

어디 그뿐인가?

교통에너지환경세액에 연동돼 15%에 해당되는 교육세, 26%의 지방주행세가 매겨지니 이 또한 연간 6조원이 넘는다.

정유사들은 지난 해 약 701억불 규모의 원유를 수입했는데 그 과정에서 3%에 해당되는 관세도 부담했다.

해외자원개발이나 재생에너지 확대 보급 등 정부의 에너지 행정 재원이 되는 에특회계 세입 중 정유사가 부담하는 석유수입·판매금 비중 역시 절대적으로 커서 매년 1조원 넘게 부담하고 있다.

석유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수출 전략 산업중 하나이다.

우리나라는 원유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데 생산 석유 중 절반을 수출할 만큼 무역 수지 기여도가 높다.

SK에너지를 비롯한 국내 4개 정유사들은 저급한 중질유를 휘발유 등 부가가치가 높은 경질 석유로 전환하는 고도화설비 구축에 조 단위의 천문학적 자금을 투입해왔고 수출 경쟁력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석유 만큼 정부로부터 유통과 가격 통제를 받는 산업도 찾기 어렵다.

독과점 폐해나 가격 담합 같은 불법을 감시하고 처벌하는 공정거래위원회 같은 정부 기관이 살아 있고 수많은 언론과 시민단체들이 석유 유통과 가격 적정성을 지켜보고 있는데도 정부는 직접 유통시장에 개입하고 있다.

‘기름값이 묘하다’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정부는 알뜰주유소 상표를 런칭했고 공기업 석유공사를 통해 석유를 공동구매중이며 전체 주유소 중 10%의 점유율로 시장 가격을 통제하고 있다.

주유소를 비롯한 석유사업자들은 판매 가격을 실시간으로 정부에 보고해야 하고 소비자에게 공개되고 있으니 밑바닥까지 내보이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석유 산업 정책을 두고 언론에 쓴 소리를 한 정유사 임원을 색출하라고 정부가 지시했다는 보도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다.

‘(정유사) 어디 한 곳이 부도나면 그때서야 산업부가 제대로 들여다볼까’라며 정부의 무관심과 책임 방기를  지적했던 정유업체 임원을 색출해 산업통상자원부에 즉각 보고하라고 지시했다는 한 언론 보도에 대해 산업부는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언론 보도 처럼 정부가 그런 저급한 처사를 하지 않았으리라 믿고 싶다.

하지만 정부가 정유산업에 무관심하지 않았다며 제시한 근거들은 너무 무성의하고 공감되지 않으며 설득력이 떨어져 현 위기상황에 대한 현실 인식 수준을 의심하게 만든다.

산업부는 지난 3월 OPEC+ 감산 협상 결렬로 국제유가가 급락한 이후 한달 동안 업계·전문가와 6차례의 실무회의를 개최했다며 소통을 강조하고 있다.

정유사에 대한 석유수입·판매부과금 납부를 3개월 동안 유예해 약 9천억원 규모의 유동성 확보를 지원했고 석유공사 여유 비축시설을 석유업계에 적극 임대하고 있다고도 강조했다.

그런데 1분기에만 우리나라 정유 4사의 적자가 3조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는 석유 소비가 30% 가량 감소하고 공급 과잉에 따른 초저유가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석유메이저들의 잇따른 자산 매각, 미국 셰일기업들의 줄도산, 세계 주요 정제공장들의 가동률 축소 등 글로벌 석유 산업을 위협하는 경고음도 커지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국가 기간산업인 정유업 지원책에 스스로 흡족해 하고 있다.

절대 망하지 않을 것 같던 정유사들이 도산하고 외국 자본에 넘어 가는 일들은 멀지 않은 우리 석유산업 역사에 이미 기록되어 있다.

국내 석유 산업이 자유화됐던 지난 1997년, IMF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심각한 자금난에 처해진 한화그룹은 정유 계열사인 한화에너지를 포기했고 이후 인천정유로 사명을 바꾸며 독자 회생을 모색하다 최종 부도 처리되는 운명을 맞았다.

현대그룹 계열사였던 현대정유는 아랍에미레이트 IPIC로 경영권이 넘어갔고 쌍용정유도 쌍용그룹에서 계열 분리되면서 외국계 자본인 사우디 아람코사가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다.

서울과학기술대 유승훈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더 이상 정유산업을 방치하면 안되며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면 10년 후 정유사 중 절반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제라도 관세를 비롯해 정유산업 경쟁력을 훼손하는 세제 정책을 과감하게 손질해 폐지하거나 일시적으로라도 감면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각종 시설 투자에 대한 세액 감면은 확대하고 정부가 민간과 경쟁하며 시장을 왜곡시키는 석유 유통 개입은 멈춰야 한다.

‘어디 한 곳이 부도나면 그때서야 산업부가 제대로 들여다볼까’라는 정유사 임원의 고백에 불쾌해 하는 사이에 정유산업 위기 상황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