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 길이 길고 플렉서블한 재질, 기계적 한계 작용

국표원도 계량기 기준서 호스 체적 변화 시험 생략

프리셋 대신 검량서 주유기 제어하면 오차 범위 커져

KTC 검정 통과하고도 석유관리원 단속 적발, 신뢰도 추락

[에너지플랫폼뉴스 지앤이타임즈]시장 경제에서 정량을 속여 판매하는 것은 사기 범죄이다.

정해진 양보다 적게 제공하며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범죄를 막기 위해 정부는 ‘계량에 관한 법률(이하 계량법)’을 제정, 운용하고 있다.

계량법 1조에 따르면 ‘계량을 적정하게 함으로써 공정한 상거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석유제품의 정량 준수를 위해서는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사업법(이하 석유사업법)에서 제재 규정이 마련되어 있다.

석유사업법상에서는 행위의 금지 조항을 통해 주유소와 석유일반판매소 등 석유 판매 사업자들이 정량 보다 적게 석유를 판매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주유 계량기의 정량 검사를 신뢰하지 못한다는 불만이 적지 않다.

특히 석유 배달 판매 차량인 홈로리에 장착된 이동식 주유기의 경우 재질이나 호스 길이 같은 태생적인 한계는 물론이고 검량 방식에 따라 정량 검사 결과에 대한 편차가 클 수 있는데 법정 단속이 강화되면서 억울한 범법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 호스 길이, 펌프 압력 등 물리적 한계 뚜렷

주유소와 석유일반판매소는 사업장 내에 설치된 고정식 주유기로 석유를 판매하는 것과 더불어 홈로리로 배달 판매도 할 수 있다.

그런데 홈로리에 설치된 주유기의 정량 검사 신뢰도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동식 주유기 정량 미달로 적발된 사업자들이 재검사를 요구하거나 행정처분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검사 신뢰도에 의문을 제기하는 측은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먼저 주유기 호스 길이와 재질 특성상 이동식 주유기의 검량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 지목되고 있다.

주유소에 설치된 고정식 주유기는 호스 길이가 짧고 강선이나 나일론 편사 재질로 만들어져 주유 과정의 압력 변화가 없어 정량에 영향을 미칠 개연성이 희박하다.

하지만 홈로리에 장착된 이동식 주유기는 주유소에 설치된 고정식 주유기와 달리 길이가 길고 재질도 다르다.

위험물안전관리법령에서는 차량에 석유를 실고 이동 판매하는 특성상 주유기 호스가 지상에서 최고 6층 높이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길이를 최대 50미터까지 허용하고 있다.

고정식 주유기에는 철심이 박혀 있지만 이동식 주유기는 재질이 다르다.

50미터에 달하는 주유 호스를 홈로리의 릴(reel)에 감고 다녀야 하는 특성상 플렉시블(flexible)한 재질을 사용하고 있다.

석유를 이동 판매하는 홈로리의 특성상 주유기 호스 길이가 길고 탄력성 있는 재질을 사용하면서 정량 검사 신뢰를 높일 수 있는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홈로리의 릴에 감겨 있는 주유기로 석유를 옮겨 담는 장면.(사진은 특정 기사와 무관함)

이같은 이동식 주유기의 특성 때문에 정량 검사 과정에서 정확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줄곧 제기되어 왔다.

한 이동식 주유기 제작사 관계자는 “호스나 차량 펌프 압력에 따라 실제 공급되는 유량이 달라질 수 있고 호스의 꼬임 상태도 검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등 물리적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국가기술표준원(이하 국표원)은 액체용 계량기 기술 기준에서 호스 내부 체적 변화 시험을 생략해서 운영하고 있다.

호스 길이가 길고 석유 제품이 통과되는 과정에서 수축, 팽창 현상이 발생할 수 있는 재질이 사용된다는 점 때문에 이동식 주유기에 대한 체적 변화 시험까지 생략하고 있는 것.

이와 관련해 국표원은 액체용 계량기 즉 이동식 주유기 노즐의 정량 신뢰도 향상을 위한 실태 조사와 기술 개발에 나서겠다는 계획이다.

◇ 검량시 주유기 제어하면 꿀렁거림으로 오차 커져

소비자들이 정량의 석유제품을 공급받도록 하기 위해 정부는 크게 두 가지 관리 기준을 운용하고 있다.

먼저 주유기의 기계적 오차를 해소하기 위해 검정 공인 기관인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이하 KTC)에서 매 2년 마다 주유기 검량 검사를 실시하고 주유기 조작을 방지하는 봉인하는 조치를 시행중이다.

그 한편에서 석유관리원은 석유 유통 현장에서 실제로 정량이 주유되는지 여부를 단속하고 있다.

그런데 KTC의 기계 검정을 통과한 주유기가 정작 석유관리원의 검량에서는 정량 미달로 판정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 석유 사업자들의 불만이다.

그 배경으로 석유관리원 검사원들의 검량 방식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정해진 양을 주유기에 세팅하는 ‘프리셋(preset)’ 방식으로 검량하는 것과 검사원이 주유기 건을 손으로 조작하는 방식 사이에는 상당한 오차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유기 제작 업계에 따르면 프리셋 방식으로 소비자에게 정량을 공급할 수 있는 기술적 개발이 이미 갖춰져 있다.

한 주유기 업체  관계자는 “주유기에 주유량을 찍어 세팅하면 해당 량이 찼을 때 솔레노이드 밸브(Solenoid Valve)를 통해 기계적으로 멈추라는 신호가 전달되며 석유가 호스를 이동하는 과정에서 일정한 압력을 받을 수 있도록 미세한 흐름을 차단하는 논드립 밸브도 부착되어 있어 오차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인위적인 조작을 가해 주유기를 작동했다 멈추는 행위가 가해지면 호스 안에 압력 변화가 발생하는 꿀렁거림 현상으로 정량 오차 범위가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석유관리원으로부터 이동식 주유기 정량 미달로 적발된 전북 김제 소재 두 곳의 주유소가 정부에 재검정을 요구하는 배경도 검량 과정에서 검사원이 주유기를 제어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실제로 본지가 확보한 김제 소재 주유소 한 곳의 CCTV 영상에 따르면 석유관리원 검사원들이 이동식 주유기를 인위적으로 제어하며 검량하는 장면이 담겨 있다.

정부 역시 이 같은 문제점을 오래전부터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본 지가 이동식 주유기 검량 방식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취재에 착수했던 것이 지난 2017년 말인데 당시 국표원 계량측정제도과 관계자는 “프리셋 방식으로 주유량을 측정하면 호스에 발생하는 압력이 없는데 반해 주유기 건을 잡았다 놨다 하는 방식으로 검량을 하게 되면 호스내 유속 변화가 발생하는 등의 영향으로 압력이 형성돼 정량 오차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석유관리원 검사원들은 여전히 단속 현장에서 주유기를 조작해 검량하는 방식을 사용중인 것으로 확인되면서 정량 미달로 단속된 석유 판매사업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이동식 주유기 정량 미달로 판정된데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주유소의 변론을 받고 있는 한 변호사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주유기 법정 계량 검정에 통과했는데도 석유관리원의 정량 검사에서는 미달로 판정돼 처분을 받게 된 의뢰인은 정부가 시행하는 이동식 주유기의 검정이나 검량을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석유일반판매소협회는 최근 산업통상자원부에 제출한 건의문에서 ‘석유관리원 검량 방법에 이상이 있어 적발되더라도 피검사자인 석유 판매사업자들은 정량 미달 판매행위로 인한 행정처분을 면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석유일반판매소협회 강세진 사무총장은 “석유관리원의 기준을 벗어난 정량검사나 기계적 한계로 발생한 오차에 대한 책임을 석유사업자에게 물리는 것은 선의의 범법자를 양산하는 과도한 처분”이라고 지적했는데 이동식 주유기의 기계적 한계와 검사 방식의 문제 제기에 대해 주무부처인 산업부가 어떤 해법을 제시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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