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퍼 록’ 현상 유발…엔진정지 증상 나타나
7월에만 157곳 적발, 2회 위반시 영업정지 맞을 수도
주유소업계, ‘현 처벌수위 지나치게 과도해…완화해야’ 주장

▲ 석유관리원 관계자가 한 주유소에서 시료를 채취하는 모습(본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지앤이타임즈 박병인 기자] 지난여름, 주유소업계를 태풍처럼 휩쓸었던 석유관리원의 휘발유 증기압 단속 이슈가 주춤해지고 있다.

계절이 바뀌어 증기압 최고점 기준이 완화되면서 더 이상 적발 업소가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휘발유 증기압 기준 위반시 올해는 ‘경고’ 조치에 그친 석유관리원과 지자체가 내년 부터는 영업정지나 과태료 등 실질적인 제재를 가할 가능성도 존재하고 있어 논란의 불씨는 더욱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가짜석유나 정량미달 판매 같은 고의적 불법 행위와 달리 유증기압 위반은 단순 관리 실수에 따른 비고의적 위법 행위인데다 주유소 사업자가 기대할 수 있는 부당 수익도 없다는 점에서 주유소 업계는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 올해까지는 경고, 내년부터는 영업정지? 주유소 업계의 근심

석유사업법에 따르면 동절기(10월~4월)에 적용되는 휘발유 증기압 기준은 44~96kPa, 변절기 기준은(5월~6월) 44~82kPa, 하절기(7월~8월) 기준은 44~60kPa다.

7월부터 하절기 기준이 적용되기 때문에 정유사들은 그보다 앞선 5월부터 하절기 유증기압 기준에 맞춘 휘발유를 각 주유소에 공급하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휘발유 판매량이 적은 영세 주유소들은 동절기에 확보한 재고 물량을 미처 다 소진하지 못하고 단속에 걸리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대부분의 주유소 사업자들이 유증기압도 품질관리대상 항목에 포함되는지를 모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하지만 1회 위반시 경고조치에 그치지만 2회 위반 부터 3개월 영업정지, 3회 위반시 6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휘발유 유증기압 기준초과 적발 업소 수가 상당히 많은데, 석유관리원에 따르면 지난 해 휘발유 증기압 기준 미달도 적발된 주유소는 151곳을 기록했고, 올해도 7월까지 157곳이 단속됐다.

적발시점은 주유소 단계에서 하절기 증기압 기준이 본격 적용되는 7월이 가장 많았다.

지난해는 7월에 총 146개 주유소가 휘발유 증기압 기준 미달도 단속됐고, 올해도 적발 업소 157곳 모두가 7월에 집중됐다.

이처럼 최근 수년 간 증기압 위반으로 경고 조치를 받은 주유소들이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내년 부터는 2회 위반으로 영업정지 처분 등을 받는 주유소도 나타날 것으로 업계에서는 우려하고 있다.

◆ 유증기압, ‘베이퍼 록’ 현상 유발…‘리드증기압’ 방식 활용 증기압 측정

많은 주유소 사업자들은 석유관리원이 어떻게 휘발유 증기압을 측정하는지 궁금해하고 있다.

석유관리원은 단속대상 주유소로부터 시료를 채취하면 ‘리드증기압 시험법’을 이용해 유증기압을 측정한다.

‘리드증기압 시험법’이란 채취한 휘발유 시료를 밀폐용기에 넣고 37.8℃로 가열해 기체화된 휘발유와 액체 휘발유가 평형을 이룰 때의 증기압을 측정하는 방식이다.

이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채택하고 있는 유증기압 측정법으로, 단위는 kPa(킬로파스칼)를 쓴다.

이같은 시험 방식을 통해 정부가 하절기 휘발유 증기압 기준을 유지하는 배경은 자동차에 몇 가지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베이퍼록’ 현상이 대표적인데, 탄화수소화합물인 휘발유는 증기압이 높아질수록 탄소함량이 적어지는 성향이 있다.

탄소함량이 적어지면 적어질수록 화합물이 기화되는 특정온도인 초류점이 낮아지는 성향이 있다.

즉 휘발유의 증기압이 높을수록 초류점이 낮아져 ‘휘발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증기압이 높은 휘발유를 기온이 높은 여름철에 주유하면 엔진 내부에 과도한 증기가 발생해 엔진기관에 연료가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는 ‘증기폐색’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증기폐색이 발생하면 자동차에서 유해가스가 과다하게 배출되며 심하면 엔진이 정지되기도 하는데, 이를 ‘베이퍼 록’ 현상이라고 부른다.

또한 자동차에서 발생하는 배기가스를 잡아주는 역할인 ‘캐니스터’의 포집 성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포집 성능을 초과하게 되고 유해물질이 대기 중으로 노출되면서 운전자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

이와는 반대로 증기압이 낮은 휘발유를 기온이 낮은 겨울철에 주유하면, 휘발성이 떨어져 시동을 걸기 어려워지고, 연료가 적절하게 엔진에 공급되지 못해 연비도 저하된다.

이 때문에 정부가 석유사업법을 통해 계절별 적정 유증기압 기준을 설정, 운용중이다.

하지만 자동차 정비업계에서는 여름철 발생하는 베이퍼 록 현상이 별다른 위해를 야기하는 문제는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여름철 엔진에 베이퍼 록 현상이 발생하면 시동이 걸리지 않는 등 일부 증상이 있을 수 있지만 자주 생기는 일은 아니다”라며 “관련 현상이 발생 시에는 연료펌프에 찬 헝겊을 덮는 등 간단한 조치를 해주면 해결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 과연 철저한 재고 관리만이 유일한 해결책인가?

현재 일부 주유소업자들은 석유관리원이 주간 단위 수급 보고를 이용해 ‘표적단속’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주간 수급보고에는 각 주유소들의 휘발유 유통량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데 석유관리원이 이를 토대로 휘발유 판매량이 적은 주유소만 골라 단속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 석유관리원은 ‘사실무근’이라며 선을 그었다.

석유관리원측은 본지에 ‘석유사업법에 근거해 석유사업자가 취급 중인 석유제품의 적장한 품질관리를 위해 석유관리원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시기에 구애받지 않고 품질관리 명목으로 수시로 점검이 가능하다’라며 ‘특히 하절기 휘발유 증기압과 동절기 경유 유동점은 특정지역이나 특정업체가 대상이 아닌 전체 석유사업자에 대한 점검’이라고 밝혔다.

또한 ‘주유소에서 이전 제품과 새로운 기준에 맞춘 제품을 섞어 가며 변경된 증기압 기준을 맞추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주유소 사업자들의 문제 제기에 대해서는 석유관리원은 ‘철저한 물량 관리가 해법’이라는 답변을 내놓고 있다.

주유소 사업자들이 알아서 기존 제품과 새 제품을 혼합해 변경 기준을 맞출 수 밖에 없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유류를 수송하는 탱크로리 대부분이 100드럼 가량의 석유제품을 적재하는 대형으로, 한 번에 많은 물량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휘발유 물량 회전력이 좋지 않은 주유소의 경우에는 하절기까지 물량을 다 소진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주유소 업계의 설명이다.

석유사업법이 규정한 과도한 처벌 기준도 문제 삼고 있다.

베이퍼 록 현상이 치명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들어 일부 주유소 업계에서는 현재의 처벌 기준이 너무 과도하다고 항의하고 있다.

한 주유소업계 관계자는 “위반자에게는 경고 후 다음에 바로 영업정지 조치를 취할 것이 아니라 한 번의 기회를 더 주는 등 처벌기준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며 “물량소진이 어려운 일부 주유소들의 현실을 감안해 하절기 기간을 유예해 주는 등 관련대책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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