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앤이타임즈 김신 편집국장] 에너지 시장에서 가진 자들의 횡포는 한 두가지가 아니다.

카르텔인 석유수출국기구 OPEC은 원유 생산량을 조절해 전 세계 석유 가격을 통제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 일본 등 중동산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을 대상으로는 이른바 ‘아시아 프리미엄’이라는 웃돈을 요구하고 있다.

공정거래법상 시장지배적 지위를 명백하게 남용하는 불법이다.

‘시장지배적 사업자’란 특정 분야에서 단독으로 또는 다른 사업자와 공동으로 상품 가격, 수량 등의 거래 조건을 결정하거나 유지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사업자를 뜻하는데 국제 에너지시장에서 OPEC이 바로 그렇다.

LNG 거래는 더 불공정하다.

LNG 수출국들은 테이크 오어 페이(Take or Pay), 도착지 제한 조항(Destination Clause) 같은 불합리하고 경직된 계약 조건을 강요하면서 시장을 움켜쥐고 있다.

‘테이크 오어 페이’는 약정 물량만큼을 인수하지 못하더라도 계약 총액을 지불해야 하는 대표적인 독소조항이다.

‘도착지 제한 조항’은 LNG 수출국이 LNG 도착지를 제한하는 불공정 강요 행태다.

LNG 수입국에서 잉여 LNG를 제3국 등에 재판매하게 되면 현물 시장이 형성되고 가격 결정권을 뺏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LNG 수출국은 판매 과정에서 도착지 제한 규정을 강요하고 있다.

공정거래법상 거래지역이나 거래상대방을 제한하는 불공정 행위에 해당된다.

이같은 부당 공동 행위가 가능한 것은 필수 동력원인 에너지를 보유하고 있고 수출 능력을 확보한 국가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처럼 에너지 빈국이고 수입의존도가 높은 국가에서는 에너지 수출국의 요구가 공정하지 못하더라도 수용할 수 밖에 없다.

다행인 것은 전 세계 석유와 천연가스 등의 소비와 수입을 주도하는 한, 중, 일 3개국을 중심으로 에너지 수출국의 불공정 행태를 바로잡으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는 대목이다.

지난 3월 한국가스공사와 일본 JERA, 중국 CNOOC 등 한·중·일 3개국의 주요 천연가스 기업들은 천연가스 관련 프로젝트에 공동 참여하고 천연가스 구매 과정에 적용될 표준계약조건을 개발하며 공조하는 등 수출국의 불공정 행태 공동 대응에 협력하는 내용의 협약을 맺었다.

최근에는 세계 최대 LNG 수입국인 일본의 공정거래위원회에서 LNG 수입 과정의 목적지 제한 독소 조항과 관련한 실태 조사 보고서를 발표하고 LNG 판매자를 대상으로 불공정 거래 관행의 시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 역시 국제 LNG 거래 시장의 판매자 중심 독소 계약과 관련한 실태 조사를 벌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LNG 수입국 정부가 불공정 계약 시정을 주문한다고 카르텔을 형성중인 에너지 수출국 기업들이 수용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다만 에너지 수급 시장에서 힘의 균형이 공급자에서 구매자 중심으로 이동하려는 움직임은 충분한 동력이 될 수 있다.

미국의 셰일에너지 개발 붐 등에 힘입어 에너지 카르텔의 중심인 중동 산유국들이 불공정 계약을 강요할 힘을 잃고 있는 시점에서 세계 에너지 수입을 주도하는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동북아 중심 국가들이 보다 강력하고 조직적으로 독소 계약 시정을 요구하고 구매자 중심 시장으로 전환하려는 노력에 합심해야 한다.

상품을 생산하고 부가가치를 높이려는 노력만 경제적 활동이 아니다.

불공정한 계약 관행을 바로 잡고 공급자간 경쟁을 유발시켜 합리적인 가격으로 에너지를 수입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과정 역시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 중요한 활동이다.

이제는 정부 차원에서 에너지 수출국의 불공정행위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국제적으로 공조하고 바잉 파워를 결집하려는 구체적인 실천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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