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출처: Singapore Government (www.gov.sg/news/)

[에너지플랫폼뉴스 지앤이타임즈]한반도의 0.003배에 불과한 동남아시아 작은 섬나라 싱가포르는 세계 3대 오일허브중 하나다.

‘오일허브(Oil Hub)’는 ‘석유제품을 생산˙제조˙저장하고 수출입을 포함한 중계와 금융 지원 기능을 수행하는 물류 중심 거점’을 말한다.

우리나라 내수 석유 가격 기준으로 준용되는 국제 석유 가격은 싱가포르 현지에서 거래되는 아시아 석유 현물 거래 가격인 이른 바 ‘몹스(Mops, Mean of Platt's Singapore)가격’을 의미한다.

4개 정유사가 생산하는 석유의 절반 가까이를 수출하는 우리나라도 오일허브 싱가포르의 영향력 아래 있는 셈이다.

싱가포르와 더불어 미국 걸프만과 유럽 암스텔담-로테르담-앤트워프가 세계 3대 오일허브로 꼽히고 있는데 우리나라가 도전장을 던졌다.

여수와 울산에 동북아 오일허브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 사진출처: 한국석유공사(www.knoc.co.kr)

동북아 오일허브는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추진되어온 국정과제중 하나다.

3면이 바다라는 지리적 위치와 세계 6위의 정제능력, 항만인프라 등을 감안할 때 싱가포르를 잇는 신규 오일허브 형성에 적합하다고 정부는 판단하고 있다.

1단계 사업으로 정부는 지난 2008년, 전남 여수에 820만 배럴 규모의 저장시설을 갖춘 ‘오일허브코리아여수(주)(이하 오일허브여수)’를 설립했다.

이어 울산에 2단계 오일허브 사업을 추진중인데 이들 저장능력을 합산하면 3500만 배럴에 달한다.

1979년 설립된 한국석유공사가 약 40년 가까이 정부 석유 비축사업을 위탁 수행하면서 건설한 1억4600만배럴의 저장시설과 비교해도 약 24%에 해당되는 엄청난 규모다.

또한 오일허브여수의 5170억원을 포함해 총 2조1340억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국책사업이다.

그런데 여전히 오일허브 경제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 산업부와 석유공사가 보팍 등 주주들과 코리아오일터미널 설립식을 여는 모습. 이후 보팍은 주주 참여를 철회했다.

여수에 이은 오일허브 2단계 사업으로 정부는 지난 2014년 1월, 동북아오일허브 울산북항사업 합작법인인 코리아오일터미널(주)를 설립한다.

SPC(특수목적법인) 방식으로 석유공사 51%, 보팍 그룹(로얄보팍․보팍 아시아) 38%, S-OIL이 11%의 지분 참여 계획도 발표했다.

특히 세계적 석유 물류 기업인 보팍은 울산 오일허브의 주주이자 이곳에 조성되는 저장시설을 임차해 글로벌 석유 트레이더로 참여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것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돌연 보팍은 투자 참여를 철회했고 4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코리아오일터미널은 추가 주주를 유치하지 못하고 있다.

그 여파로 당초 올해 준공 예정이던 북항 오일허브는 석유공사와 S-OIL 등 국내 기업만 초기 자본금을 납입하며 간신히 생명만 유지중이다.

1850만 배럴 규모의 저장시설을 건설하겠다는 울산 남항 프로젝트는 아직까지도 KDI가 예비타당성 조사를 진행중인데 부정적인 결과가 도출되면 사업 추진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

 

사실 동북아 오일허브 사업 경제성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은 오래전부터 다양한 경로로 제기되어 왔다.

19대 국회에서는 경제성 부족, 시설 과잉 투자 우려가 제기됐는데 당시 국회 예산정책처가 발간한 ‘공기업 사업영역 확장 평가와 개선과제’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는 울산 오일허브 규모가 지나치게 크다며 사업 규모 재검증 작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석유공사가 2014년에 연구 의뢰한 ‘동북아 오일허브 추진 전략’의 결과에서도 오일허브 구축으로 유치 가능한 석유 물동량 대비 저장시설 건설 규모가 커 시설 과잉이 우려된다고 보고됐다.

우리나라가 동북아 오일허브를 구축해 유치할 수 있는 석유 물동량 보다 더 많은 저장시설을 건설하려 한다는 것이 경제성 논란의 핵심으로 국부가 투입된 과잉 저장시설은 고철이 될 수도 있는 셈이다.

▲ 지난 2013년 11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울산 동북아 오일허브 구축사업 기공식이 열리는 모습.

최근 석유사업법이 개정돼 ‘국제석유거래업’이 가능해지면서 산업부와 울산시는 지지부진했던 오일허브 사업에 본격적인 탄력이 붙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제석유거래업’은 보세구역안에서 석유제품 등을 혼합, 제조하고 거래하는 사업으로 오일허브 구축의 중요한 전제가 된다는 것이 정부측의 설명이다.

현재도 보세 구역내 단순한 석유 품질 보정이 허용되지만 국제석유거래업 신설로 석유나 석유화학제품간 혼합 등을 통한 석유 제조가 허용되고 수출입을 포함한 다양한 거래가 가능해 진다는 점에서 글로벌 석유트레이더들의 다양한 활동이 보장된다.

문제는 국제석유거래업 허용이 동북아 오일허브에 글로벌 석유 물류 기업을 유치하고 트레이더들을 불러들일 필요조건은 될 수 있지만 오일허브 성공을 담보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정부는 건설 운영중인 오일허브 여수가 상당한 수익을 창출하고 높은 저장시설 계약률을 유지하는 점을 근거로 울산 오일허브도 장밋빛 전망을 하고 있다.

하지만 오일허브 여수가 당기순익을 거둔 것은 2015년부터로 그 전에는 매년 수십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주주도 공기업인 석유공사와 정유사, 종합상사 같은 국내 기업들로 채워져 있고 외국기업으로는 중국항공유료집단(China Aviation Oil Holding Company)의 자회사인 CAOT가 유일하게 26%를 보유중이다.

오일허브가 성공하기 위해 글로벌 석유 물류 기업들의 주주 참여가 중요한데 오일허브여수는 국내 기업 중심의 리그가 되고 있는 셈이다.

지난 해 이후 저장시설 계약률이 100%에 가깝다는 정부 설명도 주주와 맺은 저장시설 의무 사용 계약, 저유가라는 특수 상황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오일허브여수는 정유사나 종합상사 등 주주들에게 저장시설 사용 계약을 의무화하고 실제 사용 여부와 상관없이 이용료를 청구하고 있다.

그 결과 오일허브여수는 흑자 전환에 성공한 반면 이 회사 설립을 주도한 대주주인 석유공사 조차 저장시설을 재임차하지 못해 막대한 손실을 입고 있는 상황이다.

여수 저장시설 의무 사용에 따른 임차료는 매년 100억원 이상씩 지불하는데 재임차 수요가 많지 않아 수익을 올리지 못하면서 수십억원에 달하는 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석유공사 손실이 오일허브여수의 이익이 되는 구조다.

다수의 글로벌 석유트레이더들이 저장탱크를 임차해 석유를 사고 팔면서 순환 저장율이 높아져야 하는 오일허브의 기본 수익 요건에 어울리지 않게 마땅한 임대 수요를 찾지 못한 석유공사의 저장시설은 놀려지고 있는 것이다.

▲ 사진출처: flickr (www.flickr.com/photos/bfishadow)

미국 걸프만 연안과 유럽 ARA 오일허브 성공 비결은 대규모 원유 생산지를 중심으로 소비지 인근에 자연스럽게 저장시설이 건설됐고 미국은 시카고 CME와 뉴욕 NYMEX, 유럽은 런던 ICE 등 금융 거래 중심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와 중국 등을 대상으로 석유 관련 중계 무역과 싱가포르 상업 거래소(SMX)를 통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단시간에 아시아 지역 오일허브로 급부상했다.

석유 거래 수요를 예측해 단순히 저장시설만 짓는다고 오일허브 역할을 할 수 없으며 석유 직접 거래는 물론 중계거래, 파생상품거래 등 다양한 유형의 거래에 참여할 수요자를 끌어 모으고 거래를 뒷받침할 수 있는 금융 기법 등을 제공할 역량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제석유거래업이 가능해졌다고 오일허브에 참여할 글로벌 주주사가 늘어나 저장시설 건설에 탄력이 붙고 석유 트레이더들이 물밀듯 몰려와 석유거래중심지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맹목적인 장밋빛 전망은 잠시 접어 두고 오일허브 경제성에 대한 엄격하고 정확한 진단이 선행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묻지마식 해외자원개발 투자에서 초래된 국부 유출의 또 다른 버전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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