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싫다' 민영화 CEO거부

▲ 당초 오전에 치뤄질 예정이던 취임식은 노조와의 갈등으로 오후에서야 열렸다.
- 국내 유일한 송유관전문가 '깡패'로 전락
- 고용보장, 명퇴금 보장 요구 -
- 사장 출근저지 운동으로 갈등 본격화 -

조헌제사장이 대한송유관공사의 초대 전문경영인을 맡게 된 것은 분명 우연은 아니었다.

국내 최대 정유사인 SK(주)에서 영업과 마케팅을 총괄하는 전무이사를 지내던 조헌제씨는 2000년의 어느 날 대한송유관공사의 전문경영인으로 자리를 옮길 것을 통보받는다.

당시 상황에 대해 조헌제사장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송유관공사로 좌천당했느냐며 동료나 선후배들이 위로했다”고 회상했다.

F학점을 거듭해 학사 경고가 누적되고 언제 제적당할 지도 모르는 학생을 우등생으로 만들라는 책임을 부여받는다면 그 지도자는 얼마나 막막하겠는가?

이 때문에 조헌제사장의 송유관공사 행(行)을 두고 ‘어차피 안되는 회사, 은퇴하기 전에 몇 년 쉬었다 가라는 배려’쯤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도 적지 않았다.

그만큼 송유관공사는 회생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암담한 상태였던 셈이다.

하지만 조헌제사장이 송유관공사로 자리를 옮긴 것은 다른 시각에서 해석해 볼 수도 있다.

가능하지는 않아 보이지만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면 결국 누군가는 그 어려운 일을 맡아 해결해야 한다.

파산에 직면한 회사가 화의를 신청하거나 또는 부도 난 회사가 법정관리로 재기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담당 법원은 관리인을 파견한다.

관리인의 역할은 망가진 회사를 살리는 것으로 대개 경영이나 위기관리와 관련된 자질과 경험이 충분히 검증된 인사들이 임명된다.

송유관공사 주주사들의 절박감은 국내 유일한 송유관 운영 전문가로 불렸던 조헌제 SK 전무에게 부도기업을 살려 내는 관리인과 같은 중요한 역할을 맡기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

좌천이든 아니면 또 다른 의미가 있든 당시 SK의 조헌제전무가 송유관공사의 초대 전문경영인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조헌제사장의 프로필 곳곳에는 ‘국내에서 거의 유일한 송유관 운영 전문가’로 평가받을만한 다양한 경력을 읽을 수 있다.

조헌제사장은 송유관공사의 설립 초기에 SK측의 비상근 이사로 선임돼 한동안 주요 의사결정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주한미군의 TKP(Trans-Korea Pipeline, 한국종단송유관) 운영권을 국방부에서 넘겨 받을 당시 SK측의 ‘인수단장’도, 이후 5년 동안 총괄운영한 이도 바로 조헌제사장이었다.

미국 애틀랜타 콜로니얼 파이프라인을 찾아가 송유관 운영 등과 관련된 전문 연수를 체험하기도 했다.

결국 조헌제사장은 민영화 이전부터 회사의 경영정상화에 투입될 수 밖에 없는 ‘준비된 송유관공사의 경영인’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송유관공사 노조측의 입장은 달랐다.

회사의 노조는 조헌제사장을 강경하게 거부했다.

문제는 조헌제사장이 아니었다.

공기업의 민영화가 곧 ‘강력한 구조조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믿고 있던 회사의 노조는 민영화를 거부했고 ‘민영화 CEO’ 그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 대표적인 사례중 하나.

초대 전문경영인으로 선임되고 첫 출근길에 나선 2001년 조헌제사장의 시선에 처음 잡힌 장면은 붉은 조끼를 입은 일단의 노조원들이었다.

회사 본관을 가로 막은 노조원들은 조헌제사장의 사무실 진입을 차단한 체 단체협약서에 서명해줄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공기업 막바지 즈음에 전임 사장이 고용보장과 명예퇴직금을 보장하는 내용의 단체협약서를 노조측과 체결한 것을 놓고 회사의 주인이 정부에서 민간기업으로 바뀐 이후에도 인정해 달라며 조헌제사장의 출근을 가로막았던 것이다.

신임 사장의 기선을 제압하고 순한 양으로 만들겠다는 노조측의 계산된 출근 저지 행동은 하지만 조헌제사장을 붙잡지는 못했다.

“부당하게 해고당한 사람이 출근투쟁한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있소. 하지만 일하겠다는 사람을 출근하지 못하게 하는 투쟁이 있다는 소리는 금시초문이요. 얼마든지 대화하고 토론할 용의가 있으니 할 말 있으면 아무 때고 내 방으로 오시오”

당시 상황에 대한 조헌제사장의 회고다.

노조원들을 헤집고 집무실로 자리를 옮긴 조헌제사장을 노조위원장은 또다시 뒤따라와 민영화 선물을 요구했다.

부천의 한 화력발전소가 민영화되는 과정에서 직원들의 혼란과 불안을 달래기 위해 노조에 특별보너스 지급을 약속했다는 것을 빗대어 송유관공사 노조 역시 뭔가 특별한 선물을 요구했던 것이다.

이후 하룻만인 2001년 1월 30일의 신임 사장 취임식에서 조헌제사장은 ‘깡패CEO’로 등극하며 고달픈 노조와의 갈등이 본격화된다.

▲ 송유관공사 노조는 민영화 논의가 한창 진행중이던 2000년 5월26일, 본사에서 부태환 사장 후보자의 선임을 거부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날 시위에는 민영화 이우 고용보장도 요구했다. 당시 산자부 김동원 에너지산업심의관(앞줄 왼쪽)이 난감해 하는 모습이다.
당초 오전 9시30분부터 열릴 예정이던 사장의 취임식장에 노조원들은 투쟁을 상징하는 붉은색 조끼를 입고 머리에는 ‘단결투쟁’ 이라는 글씨가 적힌 띠를 두르고 입장했다.

조헌제사장은 ‘취임식장은 사장과 직원들이 싸우는 자리가 아니다’며 투쟁복을 벗고 입장할 것을 주문했지만 노조측은 ‘전 직원의 고용보장과 공로퇴직제 시행을 약속받아야 하는 전쟁상황에서 투쟁복을 벗을 수는 없다’고 거부했다.

투쟁복을 벗지 못하겠다면 취임식장에 들어오지 말라는 조헌제사장의 호통에 결국 노조 집행부는 ‘노조원 반수만 투쟁복을 나머지는 근무복을 입겠다’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 역시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결혼식장에 상복을 입고 오는 것은 안된다’는 조헌제사장의 생각은 확고했다.

팽팽한 긴장속에 사장취임식은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었고 정오가 지나면서 조헌제사장은 간부진과 점심식사를 위해 구내식당을 찾았다.

노조원들이 밥을 먹고 있어 자칫 불편할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근처의 한식당으로 자리를 옮기자는 간부진의 설득도 조헌제사장의 발길을 멈추지는 못했다.

조헌제사장은 오히려 마주치는 노조원들마다 “일을 하고 밥을 먹어야지! 내내 싸움질만 하다가 때 됐다고 회사밥을 먹나! 밥을 먹으려거든 그 볼썽사나운 투쟁복이나 벗고 와서들 먹어!”라며 호통을 쳐댔다.

사장이 구내식당에서 식사하는 것도 익숙하지 못했던데다 강성노조의 기세에 몇 풀 꺾였어야 하는 신임 사장이 오히려 큰 소리로 노조원들을 나무라는 모습은 어쩌면 회사 직원들에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던 것이 분명했다.

오후로 접어 들면서 ‘노조집행부만 투쟁복을 입고 나머지 노조원들은 근무복을 입겠다’는 새로운 제안이 전해졌으니 양측간의 기세싸움은 이미 조헌제사장측으로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다.

‘노조가 갖는 최소한의 상징성만 인정해달라’는 어쩌면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마지막 협상카드와도 같은 제안도 조헌제사장의 마음을 바꾸지는 못했고 결국 노조집행부가 불참한 가운데 취임식을 진행됐다.

더 큰 해프닝은 그 다음부터였다.

취임식을 마친 후 회사의 모든 사무실을 일일이 방문하던 조헌제사장은 급기야 노조사무실에 도착했고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서자마자 “너희들은 송유관공사 식구들 아냐?” “사장이 새로 왔는데 뭔 소리 하는지 궁금하지도 않아!”라고 소리질렀다.

다음날 아침 본사 건물 곳곳에는 커다란 대자보가 내걸렸다.

“깡패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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