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릴 적에 나무로 만든 장난감 자동차를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자동차가 만들어낸 숯이라니.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무를 열분해할 때 나오는 목가스(wood gas 또는 syngas)를 이용한 자동차도 아니고 말이다.(그런데 북한에는 이 자동차가 지금도 굴러다닌다고 한다)

포드자동차의 모델 T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보기로 한다. 모델 T는 포드자동차가 1908년부터 1927년까지 생산한 모델로, 오늘날 대부분의 자동차 회사들이 하고 있는 조립 라인 시스템을 통한 대량 생산 방식에 의해 제작됐다. 19년 동안 1,500만 대에 가깝게 팔리면서, 자동차 대중화를 통해 미국의 보통 사람들에게 자동차 여행의 꿈을 실현시켜준 기특한 녀석이다.

모델 T는 최고속도 70 km/h 정도를 낼 수 있는 20 마력 4 사이클 엔진 (배기량 2900CC)을 장착하였고, 18-11 L/100 km (5.5-9 km/L) 정도의 연비를 지녔다고 한다. 이 모델 T는 에탄올은 물론이고 휘발유 또는 등유로 작동 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지금 재조명받고 있는 바이오에탄올이 당시에는 보편적인 자동차 연료였던 것이다. 그러나 휘발유 가격이 점차 낮아지고 금주령 (마피아의 전설적 대부인 알 카포네가 판치던 1919-1933년)이 도입됨에 따라, 대부분의 사용자에게는 에탄올이 비실용적인 연료가 되었다.

석유가 일반적인 연료로 이용되기 전에 미국에서 사용된 연료는 에탄올이었는데, 보통은 캄펜과 같은 테레빈유 (turpentine)를 혼합한 것을 사용하였다.

에탄올이 엔진의 연료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826년부터인데, 1876년 발명된 근대적인 4 사이클 엔진에서도 에탄올을 연료로 사용하였고, 포드자동차의 모델 T에도 사용되었던 것이다. 1920년대와 1930년대에는 옥탄부스터로서 휘발유에 에탄올을 혼합하였는데, 제2차 세계대전 시에는 연료 부족으로 인해 에탄올의 수요가 증가하기도 하였다.

한편 1859년 미국의 펜실베이니아에서 석유가 발견된 후 공급이 점차 확대되면서 자동차의 연료도 서서히 휘발유로 바뀌게 되었다. 또한 금주령 시기에 알코올에 대한 역차별적인 세금 부과도 자동차 연료가 알코올에서 휘발유로 바뀌게 하는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포드자동차는 모델 T의 프레임, 계기판, 스티어링 휠 및 휠과 같이 많은 부품에 목재를 사용하였다. 자동차가 많이 팔릴수록 자동차에 사용되어야 하는 목재의 양이 제법 많았기 때문에, 포드 (Henry Ford)는 목재부품을 스스로 생산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는 미시간의 부동산 중개인이자 매제인 킹스포드 (Edward G. Kingsford)의 도움을 받아 목재 공급원을 찾았다. 드디어 미시간주 킹스포드 (Kingsford)에 인접한 아이언마운틴 (Iron Mountain, Michigan)에서 대형 목재공급용 임지를 확보하고 제재소 및 부품 공장을 지었다.

제재소와 공장에서는 자동차 생산에 충분한 부품을 생산하였는데, 한편으로는 그루터기, 가지 또는 톱밥과 같은 폐기물이 많이 발생하였다. 늘 자원의 효율적 이용을 찾던 포드는 모든 목재 폐기물 조각을 숯으로 만들 것을 제안하였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대학과 산업의 연계는 매우 중요하다. 당시 오리건 대학 (University of Oregon)의 화학자인 스태퍼드 (Orin Stafford)의 도움을 받아 톱밥과 분쇄 폐기물을 타르와 함께 옥수수 녹말로 결합함으로써 베개 형태의 연료를 만드는 방법을 발명했다. 그는 이를 ‘숯 브리켓 (charcoal briquette)’ 이라고 불렀다. 이를 생산하기 위해 1920년 제재소 옆에 에디슨 (Thomas Edison)이 설계한 숯 브리켓 공장을 세우고 운영은 킹스포드가 맡았다. 이렇게 하여 포드 숯이 탄생하였다.

이 사업은 효율성 제고의 모델이 되었고, 목재 폐기물 1 톤당 275 kg 정도의 숯 브리켓을 생산하여 포드자동차 딜러를 통해서만 판매하였다.

포드는 새로운 회사의 이름을 Ford Charcoal이라 하였고 제품 이름을 ‘브리켓’이라 하였다. 처음엔 이 숯을 고기와 생선의 훈제 공장에 팔았지만 공급이 수요를 초과했다.

이후 포드는 숯과 휴대용 그릴이 함께 들어있는 피크닉 키트를 포드자동차 딜러를 통해 마케팅하였다. 자동차와 야외 모험 간의 연결 고리를 활용하는 전략을 구사하였다. 이는 미국 가정의 아이콘인 뒤뜰 바비큐 문화를 탄생시킨 계기가 되었다.

Ford Charcoal은 1951년 투자 회사에 팔리게 되었고, 투자 회사는 에드워드 킹스포드와 공장 본거지인 킹스포드의 이름을 기려 회사명을 Kingsford Charcoal로 바꾸었다.

아직도 매년 100만 톤 정도의 목재폐기물이 킹스포드의 로고가 선명한 킹스포드 숯으로 변환되어 유통되고 있다. 자동차 회사의 부품 조달을 위해 시작된 목재사업이 혁신의 산물로서 새로운 형태의 바이오연료를 잉태하였던 것이다.

<에너지칼럼 기고 : 충북대학교 목재종이과학과 한규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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