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송유관 도유(盜油)는 공익 위협하는 ‘테러’다
[석유] 송유관 도유(盜油)는 공익 위협하는 ‘테러’다
  • 김신 기자
  • 승인 2017.01.31 1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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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앤이타임즈 김신 기자] 사랑하는 연인의 마음을 훔치는 것은 달콤한 로맨스 소재가 됩니다.

로빈후드나 홍길동처럼 부패한 권력자의 재산을 훔치고 가난한 대중과 나누는 소설 속 이야기는 대중의 카타르시스를 불러 일으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아주 나쁜 ‘훔침’이 대부분입니다.
부당하게 남의 가치있는 재산을 몰래 훔치는 것을 형법에서는 ‘절도(竊盜)’라고 부릅니다.

하다 못해 땅 속 굴을 파고 ‘기름’을 훔치는 도둑들도 있으니 세상은 넓고 훔칠 것은 많습니다.

훔칠 이유가 또 훔칠 것도 많아서인지 법의 회초리가 지나치게 너그럽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송유관공사라는 민간 기업이 있습니다.

한때는 공기업이었지만 현재는 민영화된 송유(送油) 전문 기업이지요.

울산과 여수, 대산 등 우리나라 4개 정유사 정제시설에서 출발한 땅 속 대형 파이프라인을 통해 국토 남단 여수에서 북단 고양시까지 약 1208km에 걸쳐 휘발유와 경유 등 경질 석유를 수송하는 석유 동맥 역할을 하는 중요한 기업입니다.

지하에 매설된 송유관을 통해 석유제품을 수송하다 보니 기후, 시간, 교통환경 등의 제약을 받지 않아 안정적이고 경제적입니다.

그런데 이 송유관을 뚫고 기름을 훔치는 기상천외한 절도가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습니다.

트랜스포터, 매카닉 같은 할리우드 영화 액션 스타로 유명한 ‘제이슨 스태덤(Jason Statham)’이라는 배우가 있습니다.

이 배우가 주연해 2015년 개봉한 ‘뱅크 잡(The Bank Job)’이라는 영화는 지하 13m의 터널을 뚫고 은행 금고와 연결시켜 절도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제이슨 스태덤이 울고 갈 충격적인 절도 사건이 종종 발생합니다.
주유소와 송유관 사이에 지하 터널을 뚫는가 하면 송유관을 뚫고 강을 가로 지르는 호스를 설치해 훔친 기름을 팔아온 일당들이 적발되고 있는 것입니다.

영업난으로 휴업중이던 전남 곡성의 한 알뜰주유소가 있었습니다.

인근에 송유관이 지나간다는 사실을 확인한 절도범들은 이 주유소를 임차하고 무려 한 달에 걸쳐 주유소 사무실 바닥에 깊이 3m, 길이 25m의 땅굴을 만들어 인근 지하에 매설된 송유관까지 파 들어갔습니다.
송유관에 미세한 구멍을 뚫고 흘러 나오는 기름을 주유소 탱크에 연결하는데 성공한 절도범들은 적발되기까지 6만2000리터의 석유를 절취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송유관공사에 수송을 맡긴 정유사 소유 기름에 빨대를 꽂아 주유소에 연결시켜 놓고 자신들의 제품인 양 팔아온 것입니다.

충북에서는 금강 제방뚝에 매설된 송유관을 뚫고 금강을 가로 질러 대전 유성구 야산까지 약 2km에 걸친 도유 호스를 설치하고 기름을 훔친 일당이 적발되기도 했습니다.

송유관 도유(盜油)는 매년 10건 이상씩 발생하고 있습니다.

2013년에는 무려 23건이 적발됐고 2전 후인 2012년 15건, 2014년 16건이 각각 발생했습니다.

당시는 국제유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국내 휘발유 가격이 1리터당 평균 1800~1900원대를 넘나 들던 고유가 시절이었습니다.

송유관 도유는 매우 위험하지만 성공만 한다면 그만큼의 불로수익이 보장되는 셈이니 절도의 세계에서도 이른 바 ‘하이 리스트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의 원리가 작동했던 셈입니다.

송유관 도유범에 대한 처벌 등이 강화되고 유가가 안정화되면서 도유 범죄가 줄어드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지난해도 7월까지 4건의 도유 사범이 적발됐습니다.

휘발유 등 석유제품은 휘발성과 폭발성이 강한 위험 물질입니다.

또한 위험물인 석유를 밀어 장거리를 수송하기 위해 송유관로에는 매우 높은 압력을 가해지게 됩니다.

송유관에 구멍을 뚫고 석유를 훔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인데 ‘그 어려운 걸 절도범들은 해냅니다’

송유관공사는 관로를 따라 순찰하는 감시 활동에 더해 송유관내 누유나 도유로 발생하는 압력 변화를 감지하는 LDS(Leak Detection System)시스템도 운영중입니다.

하지만 도유범들은 송유관에 아주 미세한 구멍을 뚫어 압력 변화를 숨기며 극소량의 석유를 오랜 기간에 걸쳐 훔치는 전문기술과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조그마한 실수라도 발생하면 도유범 자신들은 물론 인근 지역을 초토화시킬 수 있는 대형 폭발 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2006년 12월의 어느날, 나이지리아에서는 송유관 폭발 사고로 500명 이상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도유범들이 송유관에 구멍을 뚫어 석유를 훔치고 유조차에 실고 달아난 이후 발생한 것인데 인근에 살던 주민들도 가세하며 기름을 빼내다 폭발한 것입니다.

비단 도유 과정이 아니더라도 선진국인 미국은 물론 중국, 멕시코 등 다양한 국가에서 다양한 이유로 송유관 폭발 사고가 발생하며 대규모 인명·재산 피해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송유관 도유범들은 단순한 기름을 훔치는 '절도범'이 아니라 공공(公共)의 안전을 훔치고 위협하는 '테러리스트'와 다름없습니다.

최근 경찰대에서 열린 ‘국가기간시설(송유관) 침해범죄 현황과 형사정책적 대응’세미나에서는 송유관 도유가 대형 사고 위험을 안고 있는 만큼 사회적 법익의 범죄로 해석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습니다.

경철대 강욱 교수는 '도유범죄는 단순한 재산권의 침해가 아닌 공공의 위험을 야기하는 국가적˙사회적 법익의 범죄로 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경찰대 이동희 교수는 '외국에서는 도유범죄에 무거운 형량을 선고하는데 우리나라는 그 심각성에 비해 형사법적 형량이 낮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2012년 이후 지난해 7월까지 적발된 송유관 도유 범죄는 51건인데 이중 징역형을 받은 것은 59.3%에 그쳤고 집행유예가 35.0%, 벌금형도 3.4%로 나타났습니다.

공공의 위험을 야기한 범죄자에게 지나치게 관대한 처벌인 셈이니 그에 걸맞는 강력한 처벌기준은 반드시 적용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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