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앤이타임즈 김신 기자] 승용차는 생필품이 됐고 화물차는 생계를 책임지는 중요한 구명줄 같은 역할을 하니 기름값에 민감하지 않을 수 없는 시절이다.

국제 유가가 떨어지면 기름값 지출 부담이 가벼워져 운전자들은 신이 난다.

반대로 기름값이 오르면 큰 맘 먹고 구입한 값비싼 자가용 운행을 줄여야 하니 속이 상할 법 하다.
운송료는 똑같은데 기름값만 올라 수입이 줄어드는 화물차 같은 생계형 운전자들은 화가 치밀어 오를 수 밖에 없다.

기름값 변동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소비자들과 달리 오르거나 떨어지거나 호주머니 걱정을 하지 않는 곳이 있다.

바로 ‘정부’다.

 

휘발유와 경유에 부과되는 국세인 교통에너지환경세는 간접세다.
주유소 기름 가격에 붙어 매겨지니 기름을 소비하는 이상 세금을 내지 않을 방법이 없다.

‘세금 뺀 휘발유를 달라’면 어느 주유소가 주겠는가?

세금 탈루가 가능한 가짜석유를 사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불법이니 쇠고랑 찰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법인세나 소득세 같은 직접세는 불합리하다고 판단되면 이의 신청이나 조세 심판 청구 같은 일종의 ‘저항’이 가능하지만 유류세 같은 간접세가 아니꼬우면 안쓰는 것 말고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국세청이 징수한 지난해 교통에너지환경세는 15조원에 육박하며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올해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기름값 비싸니 대중교통 타라’

수년전, 국제유가가 배럴당 120불대를 치솟고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2000원을 넘어서던 시절이 있었다.

승용차 운전자들은 기름값 부담을 이기지 못해 운행을 자제했고 화물차 같은 생계형 운전자들은 기름값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이 줄어 고통스러워 했다.

유류세를 낮춰 기름값을 내려달라는 주문이 이어졌는데 정부는 받아 들이지 않았다.

2012년 5월, 정부는 경제부총리 주재로 ‘위기관리대책회의’를 열고 고유가 대응 방안을 논의했는데 놀랍게도 당시 회의 주제는 ‘석유소비 절감 대책’으로 정해졌다.

회의 모두 발언에서 경제부총리는 ‘원유는 100% 수입하고 있는데 지속적인 고유가 현상이 예상되니 석유수요 감축을 통해 국내경제 안정과 국민 부담을 경감시키자’고 말했고 정부는 ▲대중교통 이용 확대 ▲경제 운전 확산 유도소비자들이 몸으로 떼우거나 평상시에도 당연히 실천해야 하는 뻔한 대책들을 내놓았다.

 

지난해 이후 부터 유가가 확연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기름값이 내려가면서 초고유가 상황이었던 2012년의 지출 비용으로 주유하면 더 많이 주행할 수 있는 여건이 됐다.

연료비 부담이 줄어든 소비자들은 더 많이 달리려고 하고 그만큼 석유 소비는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휘발유와 경유 소비는 2012년에 비해 각각 6.7%와 14.4%씩 증가했다.

그 한편에서는 정부에서 걷는 유류세도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

2011년에 교통에너지환경세로 걷힌 세금은 12조9922억원을 기록했는데 2015년에는 14조8878억원으로 14.6%가 증가했다.

기름값이 떨어지고 석유소비가 늘어나면서 정부 호주머니에 2조원 가까운 세금이 더 걷히고 있다.

 

유가와 관련한 통계중에는 세금 구조 때문에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항목이 있다.

석유 소비자가격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렇다.

오피넷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으로 휘발유 소비자가격중 세금 비중은 61.0%를 기록중이다.
경유 세금도 소비자 가격중 52.3%로 집계됐다.

반면 초고유가 시절이던 2012년 12월 마지막 주에는 휘발유와 경유 소비자가격 중 세금 비중이 각각 48%와 39% 수준을 기록했다.

1리터당 2000원 짜리 휘발유를 구매하던 시절보다 저유가 상황인 지금의 석유 세금 비중이 더 높아진 것이다.

 

2012년과 현재의 교통세 부과액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소비자 가격중 세금 비중이 달라지는 착시 현상은 유류세가 종량세 구조이기 때문이다.
물량 단위당 정액이 부과되고 있는 것이다.

휘발유 교통세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리터당 529원이 매겨지고 있고 경유는 375원이 부과되고 있다.

교통세에 연동돼 부과되는 교육세와 주행세액도 변하지 않았다.

석유 1리터를 구매할 때 소비자가 부담해야 하는 유류세 크기는 정해져 있으니 국제원유가격이 변동되면서 오르고 내리는 내수 석유가격의 크기 변화에 따라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만 달라지는 셈이다.

▲ 2012년 정부가 발표한 고유가 대응 보도자료 내용중 일부.

초고유가 시절, 정부는 생계형 화물차를 비롯해 높은 기름값에 시달리는 소비자들의 유류세 인하 요구를 외면하고 석유 소비 절약을 주문했다.

지금은 저유가 기조로 돌아섰지만 당시 환경과 달라진 것은 없다.
여전히 원유는 여전히 100%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니 석유 수요 감축을 통한 국내 경제 안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는 석유 소비 절약을 유도하는 정책은 서랍안에 집어 넣고 유류세가 늘어나는 현상을 즐기는 모양새이다.

때로 소비자들은 이기적이고 아이 같아서 투정을 부리기 좋아한다.초고유가 시절에는 기름값 지출이 너무 크다며, 저유가 상황인 현재는 세금 비중이 너무 높다며 불평이다.

그런데 엄숙해야 할 정부가 때로는 더 이기적이기도 하다.
저유가 속에서 석유소비가 증가하고 유류세 징수액이 크게 늘어나는 현상을 뒷짐지고 지켜보는 지금이 특히 그렇다.

▲ 2012년 정부 고유가 대응 자료.

| ‘석유 세금, OECD중 중하위권?’

교통세는 정부가 세율을 조정하며 부과액을 늘리고 줄일 수 있는 탄력세율로 운영되고 있다.

국내 산업을 보호하거나 경기를 조절하기 위해 세율을 신축성있게 조절할 수 있는 장치가 바로 탄력세율인데 정부는 2012년 이후 현재까지 휘발유와 경유에 똑같은 금액의 교통세를 적용하고 있다.

경제 여건이 크게 달라졌는데도 탄력세율을 조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휘발유값이 리터당 2000원을 치솟던 2012년, 탄력세율을 조정해 유류세를 낮추고 소비자 부담을 줄여달라는 여론은 외면당했다.

기름값에 상한선인 일종의 ‘캡(cap)’을 설정하고 그 이상으로 치솟을 때 탄력세율을 적용해 물가 안정에 기여해달라는 주문을 거절했던 당시 정부는 경제 안정을 내세워 소비자들에게 석유소비를 줄이라고 역제안했다.

국제유가가 크게 떨어지면서 내수 기름값이 낮아지고 소비가 크게 늘어나고 있는 현재, 소비 절약에 대한 정부의 주문은 사라졌다.

석유 가격중 세금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OECD 회원국중 중하위권 규모에 불과하다며 딴소리를 하고 있다.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 논란에 대처하는 최근의 정부 자세는 석유 유류세 인하 요구를 바라보던 2012년 정부 시각의 데자뷰를 보는 듯 하다.

민심 이반을 우려한 대통령의 한마디로 누진 적용 단계가 한시적으로 축소되는 등 전력 사용자의 부담이 줄어들게는 됐지만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개편해야 한다는 요구를 정부는 일관되게 거부해왔다.

잘 알려진 것 처럼 누진제는 가정용 전력에만 유일하게 적용되고 있고 소비가 늘어날 수록 전력 요금 증가율이 수직 상승하는 기형적인 구조를 띄고 있다.

폭염과 열대야 속에서 고통받는 서민들은 전기요금 폭탄이 두려워 에어컨을 장식품으로 바라봐야만 하는 상황인데 정부는 누진제도를 개선하면 과소비가 유발될 수 있다는 논리로 반대 입장을 고집해왔다.

기름값이 너무 높아 살 수 없다는 운전자들의 불만에 오히려 소비를 줄이자는 캠페인을 제안했던 정부는 전기요금이 너무 비싸 에어컨을 켤 수 없다는 소비자들의 항의에 누진율을 낮추면 전력 과소비가 우려되니 꾹 참고 사용을 자제하라는 메시지로 화답하고 있다.

| ‘과소비 우려하는정부, 늘어나는 세수에는 집착’

석유공사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휘발유 소비량은 3815만 배럴로 전년 같은 기간 보다 3.0% 늘었다. 경유 소비도 7.1%가 증가했다.

석유소비가 늘면서 종량세인 교통에너지환경세 징수액은 지난해 보다 더 증가할 것이 확실해보인다.

에너지 자원 빈국인 대한민국에서 에너지 소비 절약은 모든 국민들이 감내해야 할 숙명이다.

하지만 쓸 때는 써야 하고 달려야 한다면 달릴 수 있어야 한다.

한전은 천문학적 이익을 거두고 있고 정부가 징수하는 교통에너지환경세는 계속 늘어나는데 과소비를 이유로 세금과 요금을 낮추지 않고 절약만 강요하는 정책이라면 국민들의 공감 지수는 안봐도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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