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앤이타임즈 김신 기자] 국내 석유시장에는 다양한 상표가 존재합니다.

SK에너지, GS칼텍스, S-OIL, 현대오일뱅크 등 4개 정유사 상표가 주유소에 전파되고 있고 한때는 타이거오일 등 석유수입사 상표가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정유사 상표 도입을 원하지 않는 주유소들은 자가 상표(Private Brand) 즉 자체 브랜드를 내걸기도 합니다.

자가 상표 주유소들은 운영자의 이름이 상표가 될 수도 있고 ‘믿음’ ‘소망’ ‘사랑’ 등 소비자에게 친숙하고 신뢰를 줄 수 있는 단어들을 주유소 상호로 사용해 상표화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상표법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에서 말입니다.

 

‘알뜰’이라는 단어는 ‘아끼고 규모 있는 살림을 한다’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석유유통시장의 경쟁을 촉진하겠다고 정부가 만든 석유유통브랜드가 바로 ‘알뜰’입니다.

공기업인 석유공사가 위탁 운영중이지만 ‘알뜰주유소’ 상표권자는 대한민국 정부입니다.
정부가 상표 출원과 등록을 한 것입니다.

기름을 알뜰하게 구매할 수 있는 주유소를 정부 브랜드로 만들겠다는데 반대할 소비자는 없을 겁니다.

실제로 소비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으면서 알뜰주유소는 5월 현재 전국적으로 1150 여개가 운영중입니다.

1만 2000여 영업 주유소중 9% 이상이 정부가 상표권자인 알뜰주유소 가맹점인 셈입니다.

 

정부는 알뜰브랜드 주유소 운영 사업을 에너지 공기업인 석유공사에 위탁하고 있는데 상표를 사용하는 주유소와 갈등이 적지 않습니다.

석유공사는 알뜰 브랜드 사용 계약과 관련한 내용을 지키라고 주문하고 있는데 주유소들은 지킬 수 없다고 합니다.

알뜰 브랜드 사용의 댓가로 주유소들은 판매 석유제품의 50% 이상을 석유공사로부터 의무 구매해야 하는데 이를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상표권자인 정부는 기름값을 알뜰하게 책정하라고 주문하고 있는데 석유공사에서 공급하는 기름값이 높아 현물시장 등 다른 곳에서 구매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주유소 사업자들의 입장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알뜰주유소들은 석유공사로부터 의무 구매해야 하는 석유 비중을 30% 수준까지 낮출 것을 요구중입니다.

 

정유사들이 생산하는 석유는 정부가 법에서 정한 품질 기준을 충족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 가장 까다롭다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환경 품질 기준을 만족시킬 정도로 훌륭한 수준입니다.

환경부가 실시하는 환경품질평가에서 최고 등급인 별(★) 다섯 개를 받을 정도입니다.

정유사들이 생산하는 석유제품의 품질이 워낙 좋다 보니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정유사 석유제품 품질이 거기서 거기’라고 평가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모두 훌륭한 품질의 석유제품을 생산하고 있으니 어떤 정유사 제품을 사용하더라도 자동차 연료로서 큰 차별성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고 ‘갑돌이’가 생산한 석유제품이 ‘갑순이’가 만든 제품이 될 수는 없지 않을까요?

상표나 브랜드가 존재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생산·공급자에 대한 정보를 소비자에게 전달하고 선택할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하기 위해서입니다.

제품 품질이나 서비스 등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상표권자에게 보상을 포함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정부는 제조물 결함으로 발생한 손해를 소비자가 손쉽게 구제받을 수 있도록 책임 소재와 방법을 명시한 제조물책임법(Product liability)을 운용중입니다.

이 법은 상표나 브랜드의 가치를 인정하는데서 부터 출발합니다.

정유사들도 당연히 제조물책임법 적용 대상에 포함됩니다.

 

다시 알뜰주유소 얘기를 해보려 합니다.

알뜰주유소는 판매 석유중 50%만 석유공사에서 구매하면 됩니다.
하지만 석유공사가 공급하는 석유 가격이 비싸다며 의무구매비중을 30% 수준까지 낮춰달라고 요구중입니다.

어떤 경우든 알뜰주유소에서 판매하는 제품은 여러 공급사 제품이 섞인 혼합석유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알뜰주유소 상표권자는 ‘대한민국 정부’입니다.

그렇다면 알뜰주유소에서 판매하는 혼합석유의 공급자는 ‘정부’나 ‘석유공사’일까요 아니면 현물시장에 석유를 공급한 정유사, 석유수입사 또는 석유대리점일까요?

알뜰주유소에서 판매하는 석유 품질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제조물책임법상 책임은 상표권자인 정부나 사업 운영자인 석유공사가 맡아야 하나요 아니면 현물시장 석유 공급자가 책임져야 할까요?

 

기름값을 낮추는 긍정적인 기능에도 불구하고 알뜰주유소는 몇 가지 태생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1만2000곳이 넘는 주유소가 영업중이고 석유수입사를 포함해 40곳이 넘는 석유공급자가 등록되어 있는 석유유통시장에서 시장 감시자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정부가 상표권자로 알뜰주유소를 등록하고 공기업을 시켜 석유유통사업을 벌이는 것은 명백한 시장 개입이고 우월적인 지위 남용에 해당된다는 것이 첫 번째 지적입니다.

정부 스스로가 제조물책임법 등의 법 정신에 배치되는 ‘넌센스’를 유발하고 있다는 논란도 있습니다.

알뜰주유소에서 판매되는 제품은 혼합석유이기 때문에 제조업자가 누구인지 파악하기 어려워 제조물책임법상 문제가 발생할 경우 책임소재를 따지기가 복잡할 수 있다는 정보를 정부나 석유공사 그 어느 쪽도 소비자에게 전달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오로지 기름값이 싸다는 말만 강조하고 있을 뿐이지요.

 

제조물 사용 과정에서 피해가 발생했을 때 혼합석유 제조자를 밝힐 수 없다면 ‘알뜰주유소’라는 상표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상표’는 경제 활동 과정에서 소비자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하는 중요한 ‘정보’인데 알뜰주유소에서 판매하는 석유 제조자가 누구인지, 품질에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누가 책임질건지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고 이같은 사실을 소비자에게 제대로 공지하지 않는다면 정보로서의 상표 가치가 있는 것일까요?

정유사나 석유수입사 제품이 거기서 거기이고 혼합석유 품질도 마찬가지이니 알뜰주유소 석유 제조자가 누구인지 알려고 하지 말고 그냥 값싼 기름을 즐기면 될 일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정유사 상표 주유소중 상당수는 현물시장에서 ‘샛밥’이라고 불리는 혼합석유를 일부 구매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유사와 주유소간 맺은 전량구매계약에 기초해 제조물책임법과 관련한 1차적인 책임은 정유사가 떠안게 됩니다.

일차적으로 소비자는 상표권자인 정유사에게 손해 배상 등을 청구하면 된다는 뜻입니다.

삼성이나 코카콜라 같은 글로벌 기업들의 브랜드 가치는 수십조원에 달할 만큼 엄청납니다.

단순한 디자인이나 마크에 불과한 브랜드가 천문학적 가치를 띌 수 있는 것은 그 안에 소비자 인지도나 품질과 A/S 시스템 등에 대한 신뢰, 기업 가치 등 다양한 시장 경제 요소들이 담겨져 있기 때문일 겁니다.

경쟁의 기준을 만들고 공정하게 감시해야 하는 주체인 정부가 브랜드를 만들고 시장 플레이어(Player)로 나서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쩔수 없는 명분으로 플레이어가 될 수 밖에 없었다면 상표권자로서의 책임은 민간 기업 보다 더 엄격하게 적용받아야 합니다.

정부라는 브랜드가 또 그 정부가 만든 상표는 소비자인 국민들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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