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소업계, ‘수평거래 허용되면 가짜석유 범죄 확대될 것’
농협, 농민에 비싼 기름 공급…기름값 인하 위해 반드시 필요
산업부, ‘해결책은 특별 주간수급보고’…관련업계 반발 ‘실효성 無’

▲ 석유관리원 관계자들이 가짜석유‧정량미달여부를 검사하고 있다.(본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지앤이타임즈 박병인 기자] 정부는 과거 고유가시절부터 수직 계열화된 석유유통구조를 수평화 구조로 개선하길 원했다.

수평적인 석유유통구조는 공급자인 정유사부터 유통사슬의 최하부에 있는 주유소까지 단계를 거치지 않고 직접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석유유통구조 수평화를 통해 직거래 구조와 각 유통단계별 경쟁구도를 구축할 수 있으면 기름값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계산이었다.

이 계획에 따라 정부는 장기간에 걸쳐 각 유통단계별 수평거래를 점진적으로 허용해왔다. 현재는 정유사, 대리점, 주유소, 판매소 등 각 단계별 수평거래가 대부분 허용된 상태다.

하지만 정부는 올해 초부터 시작한 이종간 수평거래를 허용하겠다는 방침을 세워 석유업계에 논란의 불을 지피고 있다. 정부는 최근 진행 중인 '석유분야 규제개혁 TF 회의‘를 통해 주유소-판매소간 수평거래를 허용시키겠다는 의지를 수차례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정부가 수평거래를 허용해 왔던 것은 사실이지만, 같은 유통단계에 한해서였다. 같은 석유업계더라도 다른업종간 수평거래를 허용할 경우 무자료석유 유통, 가짜석유유통 등 각종 부작용이 발생하기 때문이었다.

관련업계인 판매소업계, 주유소업계와 석유관리원도 이러한 측면을 우려했다. 현재도 음성적인 형태로 주유소-판매소가 연계한 가짜석유 유통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주유소와 판매소의 수평거래를 허용한다면 이 같은 불법행위를 양성화, 합법화 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반면 대부분 지방에 위치한 농협주유소-판매소들은 정부의 수평거래 허용을 적극 찬성하고 있다.

지방의 농협 판매소들은 그 숫자가 적어 상당히 비싼 가격에 기름을 공급받고 있고, 이에 따라 농민들에게도 높은 가격에 기름을 판매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주유소-판매소의 수평거래가 허용되면 상대적으로 숫자가 많은 농협주유소로부터 저렴한 기름을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에 농민들에게 저렴한 기름을 제공할 수 있다는게 그들의 입장이다.

◆ 판매소업계, ‘수평거래 허용은 가짜석유 양성화나 다름없다’

난방용 등유 판매소인 석유일반판매소업계는 반대입장이다. 이유는 무자료, 가짜석유유통 등 불법석유 유통량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특히 최근 주유소업자가 방치된 일반판매소를 임대해 주유소의 저장시설과 이동탱크 차량을 이용해 가짜석유를 판매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가짜석유를 유통하는 주유소업주들이 방치된 일반판매소를 임대하는 이유는 판매소를 일종의 ‘방패막이’로 내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가짜석유를 판매하다 적발 되면 사법당국으로부터 벌금형, 영업정지 등의 처분을 받는데, 주유소의 경우에는 영업정지 처분을 받을 시 판매량, 영업익 규모 등을 고려했을 때 그 피해가 상당한 편이다.

또한 대로변의 눈에 잘띄는 곳에 위치해 있는 주유소의 특성상, 영업정지 처분을 받을 경우 소비자들에게 안좋은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하지만 판매소의 경우에는 원래 영업을 하지 않던 업소들이기 때문에 영업피해가 거의 없을 뿐 만 아니라, 임대료도 상당히 저렴하기 때문에 영업정지 처분을 받아도 다른 판매소를 임대하면 그만이다.

석유일반판매협회 관계자는 “주유소, 판매소 수평거래 허용 시에는 부정석유 유통 등 많은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석유일반판매협회는 원칙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이다”라고 밝혔다.

◆ 농협, ‘주유소-판매소 수평거래, 저렴한 기름 공급위해 반드시 필요’

대부분 농촌지역에 위치한 주유소, 판매소를 운영하는 농협 측에서는 수평거래 허용에 적극 찬성하고 있는 입장이다. 인구밀도가 적은 농촌지역의 특성상 인구밀도가 높은 도심지역에 비해 기름값이 비싸질 요인이 많기 때문이다.

농협 판매소는 단위지역별 1~2개에 불과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숫자가 많은 농촌형 주유소에 비해 비싼가격에 기름을 매입할 수 밖에 없다.

또한 긴 배송거리에 의해 가격이 비싸지기도 한다. 대부분이 농촌지역에 위치한 농협 주유소, 판매소는 농촌지역에 위치해 있는 반면, 농협 판매점에 기름을 공급하는 대리점들은 대도시 인근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배송거리가 길어져 가격이 비싸진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농협 측은 주유소-판매소간 수평거래 허용을 통해 판매소의 기름 값을 인하 시킬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농협 판매소가 기존 대리점 대신 인근의 농협 주유소로부터 기름을 공급받을 경우, 농협 주유소는 판매소에 비해 대량으로 기름을 공급받기 때문에 원가절감이 가능하다.

또한 인근의 농협 주유소로부터 공급받으므로 대리점 공급대비 유통거리가 짧아져 물류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실제로 농협이 한영회계법인 측에 의뢰해 진행한 연구용역 결과에 따르면 농협주유소를 거점으로 물류체계를 개선할 경우 유의미한 원가절감이 가능하고, 건전한 경쟁 환경 조성 및 가격 투명성이 제고되며 사회적인 물류비용을 줄일 수 있는 등 다양한 경제적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산업부, 해결책은 특별 석유주간수급보고?…실효성 논란

산업부는 주유소와 판매소 간 수평거래 허용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가짜석유유통 등 부작용에 대한 해결책으로 ‘특별 석유주간수급보고’를 고려하고 있다. 수평거래를 하는 주유소, 판매소만을 대상으로 특별 석유주간수급보고를 받음으로서, 일반적인 주유소, 판매소와는 다른 특별 관리를 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기존 시행하고 있는 주간수급보고도 석유업계 내에서는 실효성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는데다 수급보고를 받는 주체는 누가 될 것인가에 대해서도 논란이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주유업계 등에서는 산업부가 시행하고 있는 ‘주간수급보고’ 제도 자체에 대한 반발이 극심한 상황으로, 산업부가 제시한 해결책인 ‘특별 주간수급보고’ 제도를 받아들일지도 의문이다.

다른 해결책으로는 현재 수평거래를 원하는 곳이 농촌지역의 농협 주유소, 판매소에만 한정돼 있다는 점을 고려해 기존방안인 ‘수평거래 전면허용’보다는 ‘제한허용’을 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

농협 주유소, 판매소에만 한정해 제한적으로 수평거래를 허용하면, 농민들의 기름 값 절감 등 편익을 도모할 수 있고, 대상이 제한 적이기 때문에 가짜석유 관리도 용이해지기 때문이다.

주유소-판매소의 수평거래 허용은 그 심각한 부작용 때문에 업계의 반발이 극심한 상황이다. 과연 산업부가 업계의 반대를 극복할 만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지 향후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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