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 허은녕교수

▲ 서울대 허은녕교수
좀 과장되게 말해 우리나라는 세계 석유시장에서 월세로 살고 있는 서민이다.

다른 분야에서 열심히 돈 벌어 국제석유시장에서 시세에 맞추어 석유를 사오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 것은 자손만대로 전세나 월세 살자는 것과 같다.

그러나 모두가 경험하였듯이 월세로 살면서 열심히 일해 돈을 모아봤자 집값은 더욱 빠르게 올라 집을 살 희망은 점점 멀어져만 간다. 또한 월세도 올라 계속 같은 집에서 살수는 있을지, 혹시 집주인이 집을 팔게 되면 새주인이 집을 나가라 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살아야 한다.

물론 월세가격, 즉 국제석유시장가격이 진정 장기적으로 안정되어 있는 경우라면 월세가 더 좋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부동산과 마찬가지로, 석유자원은 공급이 한정되어있기에 수요가 넘치는 시기가 오면 시장의 구조역시 불안정하게 되어 현 고유가사태와 같이 시장실패가 자주 일어나는 재화이다.

1, 2차 석유위기 때 바로 우리나라는 월셋집을 내어놓고 나가야 할지도 모르는 위기에 몰렸지 않았는가. 지금도 두 배가 넘는 월셋값 상승에 국민들은 허리띠를 졸라매어야 한다.

해외석유자원개발은 바로 이런 월세살이를 벗어나 집 살 궁리를 하게 될 때 가장 요긴하고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방법이다. 게다가 최근 중국이 전 세계의 유전을 빠른 속도로 사들이고 있고 산유국들도 유전을 국유화 하고 있어 더 이상 지체하다가는 아마 시장에서 좋은 유전들이 자취를 감출 것이다.

다행히 이를 인식한 우리나라 정부도 작년부터 적극적으로 해외자원개발 지원 및 국제자원외교에 공을 들이고 있다.

그러나 최근 철도공사 러시아유전투자 사건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는 일들은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국제석유시장에서 작은집이지만 버젓한 집 주인으로 대접받는 것이 시급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음을 보여준다.

철도공사 문제로 인하여 해외석유개발사업의 위험성과 수익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퍼져 해외석유개발사업에의 투자유치가 위축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여 투자자들을 유치하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쫓아버리고 있는 것이다.

경제규모나 에너지소비규모가 모두 세계10위권이면서도 에너지 정책은 아직도 약소국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불확실성을 없애기 위해서는 해외자원개발사업의 불확실성을 줄여주는데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 최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해외자원개발사업의 평가를 실시할 수 있는 독립적인 해외자원개발사업 평가기관의 설립이다.

기술전문가와 투자전문가들을 모아 민간의 투자자문에 응하게 하고, 또 국가자금이 지원되는 사업의 경우는 이를 사전에 평가하여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할 수 있게 하여야 한다.

이렇게 되면 철도공사의 사례와 같은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또한 민간의 투자자본의 위험부담을 크게 줄여주어 더 많은 투자가 해외자원개발사업으로 유입되는 유인책으로 작동할 것이다.

이러한 평가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기관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한국석유공사 등 국내에도 여럿 있으니 우선 이들 기관에 연내에 관련 부서를 만들어 평가업무에 들어가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 부서를 향후 평가 및 교육기능을 가진 독립적인 기관으로 분리, 발족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에 해외자원개발사업에 일찍이 투자하여 크게 이익을 얻고 있는 한국석유공사나 (주)SK, (주)대성 등 전문기업들이 있음도 역시 크게 홍보하여야 할 것이다.

제대로 된 집을 하나 장만하려면 우선 좋은 집을 고를 줄 아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는 것은 모두들 잘 알고 있는 상식이 아닌가.

석유개발사업 평가기관의 설립은 바로 이런 안목을 길러주어 국제석유시장에서 우리나라가 제대로 된 집주인이 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수 있기에 가장 중요하고 가장 시급하게 다루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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