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연구원 이달석 선임연구위원
[에너지플랫폼뉴스 지앤이타임즈]

OPEC(석유수출국기구)은 지난해 11월 총회에 이어 이번 6월 총회에서도 종전의 생산목표인 하루 3000만 배럴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국제유가는 미국 셰일오일(타이트오일)의 생산 증가와 세계 석유수요 부진 등으로 지난해 하반기부터 급격히 하락했다.

석유의 공급 과잉으로 가격이 하락한 시기에 생산을 감축해 가격을 지탱해 왔던 과거 OPEC의 행태에 비추어 보면 사뭇 다른 결정을 하고 있다.

이를 두고 OPEC이 시장점유율 방어를 위해 종래의 전략을 수정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명이다.

하지만 이것은 전략이라기보다는 최근의 공급 과잉과 유가 하락 상황에서 마땅한 대응수단을 갖지 못해 무력화된 결과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한 것 같다.

OPEC이 감산 합의를 이끌어내기가 곤란한데다, 설령 감산을 실행하더라도 자신들의 판매수입 증대로 연결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OPEC 원유에 대한 수요가 감소해 회원국들의 유휴 생산능력이 늘어나는 시기에는 감산 합의가 어렵고, 합의가 이루어져도 회원국들이 이를 준수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OPEC 회원국들 중에는 내전과 서방국의 제재, 그리고 사회 안정에 필요한 복지비 지출 등으로 막대한 규모의 재정지출이 요구되어 원유 판매량을 줄이기 곤란한 국가가 많다.

또한 감산으로 유가가 지탱된다 하더라도 미국의 셰일오일을 비롯한 캐나다의 오일샌드, 브라질의 심해 원유 등 비OPEC 산유국의 고비용 유전에서 생산이 증가해 시장점유율을 잃게 될 것이다.

OPEC의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사우디는 1980년대 초반에 수요가 감소하고 북해‧멕시코‧중국‧구소련 등 비OPEC 국가의 공급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가격을 지지하기 위해 감산을 했으나 그 결과는 판매량과 판매수입 감소로 나타났다. 사우디는 이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생산량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한편 지난해 총회 이후 강경파로 분류되는 베네수엘라는 비OPEC과의 공조를 통한 감산을 주장해 왔다.

사우디 나이미 석유장관도 지난 4월에 비OPEC 산유국이 참여한다면 유가를 회복시키는데 기여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한 바 있다.

비OPEC 산유국과의 공조는 생산량 감축의 부담을 나눠 가진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공조의 대상은 생산 규모가 큰 러시아인데 감산의 양과 소망하는 가격 수준이 서로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베네수엘라는 어려운 재정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요구할 것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대로 고유가는 미국 등 여타 비OPEC의 생산과 수익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우디는 현재 수준보다는 높은 가격이지만 자국과 OPEC의 시장점유율을 유지하는 동시에 여타 비OPEC 생산을 위축시킬 수 있는 가격대를 선호할 것이다.

물론 현재로서는 그러한 가격 수준이 존재하기 어려운 것 같다.

결국 OPEC은 저유가로 인한 고통을 감내하면서 시장의 힘에 의한 수급과 가격의 조정을 기다릴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현 상황에서 OPEC은 감산에 대한 논의보다는 오히려 회원국 간의 시장점유율 확보 경쟁으로 생산이 더 늘어나는 것을 걱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이란에 대한 서방국의 제재와 리비아 내전 등에서 비롯된 공급차질 물량은 사우디와 걸프 산유국의 증산으로 보충해 왔다.

이란의 생산 차질은 하루 1백만 배럴 정도이고 리비아의 생산 차질은 내전 상황에 따라 하루 60~120만 배럴에서 등락하고 있다.

이란의 생산은 오는 6월 말까지를 최종합의 시한으로 잡고 있는 핵협상이 타결되면 늘어나기 시작할 것이다. 리비아 생산도 정부군과 반군이 폐쇄된 주요 석유수출항의 운영을 재개하기로 합의하면 더 늘어날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이라크의 생산이 생산능력 확장과 더불어 빠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생산량 유지 결정을 주도한 사우디와 걸프 산유국들이 이들의 생산량 증가분을 흡수하기 위해 감산을 이행할 것 같지는 않다.

생산량 제한과 판매수입 극대화를 목적으로 결성된 카르텔인 OPEC이 수급 조절을 시장에 의존하고 회원국들의 생산을 통제할 수 없다면 무력화된 것과 다름없다.

OPEC이 석유시장에 대한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저유가로 인해 셰일오일 생산이 현저히 둔화되고 세계 석유수요가 증가해 수급의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셰일오일 생산은 저유가에 견디면서 크게 줄지 않고, 세계 석유수요 증가를 견인해 왔던 중국의 수요는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다.

OPEC이 전통적인 의미의 카르텔 기능을 회복하기에는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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