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IEA(국제에너지기구)를 빌어 석유수요억제논의를 공론화하고 나섰다.

산업자원부는 12일 보도자료를 통해 IEA가 전 세계 석유소비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수송부문의 수요억제를 통해 유가안정을 꾀하고 있다고 밝혔다.

눈여겨 볼 대목은 IEA가 고민중인 수송부문의 석유수요 억제책이라는 것이 그간 국내 운전자들이 충분히 체험했거나 익히 알고 있는 상식적인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대목이다.

예를 들어 차량 10부제를 운영해야 한다거나 운전습관을 개선하는 것, 대중교통이용을 늘리는 것, 고속도로 속도제한을 시속 90km 이하로 제한하는 것 등이 IEA가 제시하는 수송부문의 수요억제책들이다.

우리 정부는 수송부문의 에너지절약대책을 차질없이 추진해 나가겠다며 IEA의 충고에 적극 호응할 태세다.

IEA의 지적은 세계 석유수요를 가능한 부분까지 억제해 유가하락의 압력요인을 제공하겠다는 취지에서 충분히 공감대를 살 만 하다.

하지만 과연 그 같은 지적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들인지 또 현재의 고유가를 해결할 수 있는 유효한 수단인지는 좀 더 고민해야 한다.

IEA 스스로가 지적했듯이 차량 10부제 운행이나 카풀제 등의 조치는 수요억제의 효과는 큰 반면 강제화할 경우 대중적인 지지가 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대중교통 이용을 활성화하자는 것도 교통요금 인하를 전제로 하고 있어 수용 가능여부가 불투명하다.

재택근무를 확산하거나 근무일수를 단축하는 방식은 본말이 전도된 듯한 느낌마저 지울 수 없게 한다.

또 현재의 고유가 상황은 단순히 몇몇 IEA 회원국들이 석유소비를 억제한다고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서울대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의 허은녕교수는 본지 기고에서 최근의 "고유가상황은 1970년대처럼 주요 산유국들의 공급제한 등의 영향이 따른 것이 아니라 국제석유시장이 잘 작동하고 있는 와중에 발생하고 있어 새로운 패턴의 석유위기로 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IEA가 석유수요억제 논의를 활발하게 진행중이라며 이례적으로 다양한 수단들을 친철하게 공개한 것은 그 속마음을 따로 두고 있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IEA는 1970년대 오일쇼크를 겪는 와중에 산유국의 일방적인 석유공급 감축에 대비하기 위해 주요 소비국들이 공동 참여해 결성한 OECD 산하기관이다.

주목할 대목은 OECD 회원국중 우리나라의 석유제품 가격이 최상위권에 해당된다는 점이다.

에너지데당트지에 따르면 지난해 4월 기준 우리나라의 휘발유 소비자가격은 리터당 1353원이었던데 반해 일본과 미국, 스페인은 각각 1157원과 552원, 1194원을 기록했다.

휘발유가격이 1657원과 1467원을 기록했던 영국이나 프랑스도 1인당 국민소득을 감안할 경우 우리나라 휘발유 소비자가격을 100으로 기준삼을 경우 각각 52.3과 53.1에 머물렀다.

주요국들의 석유가격차이는 정부 세금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갈라지게 된다.

결국 가장 쉽게 석유소비를 억제하려면 세금을 올리면 된다.

기름가격에 대한 석유수요 탄력성이 크다는 사실은 고유가로 지난해의 국내 석유소비가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IEA는 그 어느 대목에서도 수요 억제를 세금인상으로 풀어야 한다는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보다 세금비중이 현저하게 낮은 OECD회원국들이 제시하는 석유소비억제방안은 그래서 한계가 분명하고 원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정부는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 하다.

고율의 세금을 통해 소비심리를 위축하며 수송용 연료시장의 소비감소를 이끌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또 경유는 세제개편을 통해 추가적인 세금 인상 스케줄이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가 이례적으로 IEA가 권고하는 석유소비억제책을 홍보하며 적극 협력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어 그 속뜻이 궁금해진다.

현재의 고유가 부담이 '단순히 우리만 느끼는 것은 아니다' '선진국들조차 석유소비 감소에 안간 힘을 쓰고 있다'고 설득하고 싶어서일 수도 있다.

또는 기름값이 천장부지로 치솟는 와중에 내국세 인하 등 정부가 그간 수시로 약속했던 유가안정책을 왜 발동하지 않는지에 대한 불만의 시선을 IEA의 수요억제방안으로 돌려보려는 '꾀'로도 풀이할 수 있다.

이미 용도폐기돼 책상속에 접어둔 유가안정책 대신 정부가 IEA의 석유수요 억제방안을 들고 나서는 속 마음이 점점 더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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