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제혼합 부생·정제유, 유통량도 파악안돼

- 고무패킹 변형·펌프마모 등 고장 유발, 폭발 위험도-

세녹스를 비롯한 유사휘발유로 석유업계가 골머리를 앓더니 이번에는 보일러업계가 불량 연료로 속앓이에 한창이어 대책마련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기름보일러 생산업계에 따르면 보일러사용자들이 공식 지정연료를 대신해 값싼 불량 연료를 공급받으면서 잦은 고장을 일으키고 있다.

그 과정에서 보일러고장의 책임소재를 두고 보일러생산사와 사용자들간의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국내 대표적인 보일러 생산업체인 귀뚜라미 보일러에 따르면 자사제품을 공급받은 숙박업소나 목욕탕 등에서 불량 연료를 사용해 제품고장이 발생되는 사고가 늘고 있는 추세다.

문제는 그 책임소재.

보일러의 고장이 제품하자보다는 불량연료를 사용했기 때문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지만 구입처에서는 막무가내로 보일러제조회사의 과실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중형보일러를 사용중인 목욕탕이나 숙박업소들의 경우 기계 고장으로 난방이나 온수공급이 중단돼 영업에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며 보일러제작사에 영업상의 피해보상도 요구하고 있다.

기름보일러를 생산하는 회사들은 대개 비슷한 고민에 빠져 있다.

▲고장 원인 두고 평행선 = 귀뚜라미보일러는 지난해 말 인천 서구청 뒤편의 한 모텔에 중형보일러 두 대를 공급했다.

각각 10만칼로리 용량인 온수용과 난방용 보일러로 공급한지 두달도 되지 못해 고장이 발생했다.

연료탱크에서 보일러로 연료가 전달되는 경로에 있는 유압실린더내의 고무패킹에 변형이 발생해 기름이 샜고 고가인 기어펌프까지 망가져 정상적인 작동이 불가능하게 된 것.

흥분한 모텔사업주는 보일러의 무상수리와 난방 등의 가동 중단에 따른 영업상의 피해보상을 귀뚜라미측에 요청한 상태다.

이에 대해 귀뚜라미보일러의 C/S팀이 현장조사를 벌인 결과 고장의 원인은 제품하자가 아닌 불량석유를 사용했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이 보일러의 공식사용연료는 경유.

하지만 모텔사업주는 폐유를 재활용한 「정제연료유」를 사용해왔고 그 과정에서 보일러 유압실린더내 고무패킹이 녹아 변형이 생겼고 윤활성도 턱없이 부족해 기어펌프의 고장까지 발생시켰다.

원칙적으로 공식연료를 사용하지 않아 발생된 제품하자에 대해서는 무상 A/S나 영업상의 피해를 보상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귀뚜라미는 더 이상의 문제 확산을 막기 위한 고육책으로 해당업체에 무상으로 부품을 교체해준 상태다.

문제는 이같은 고장사례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며 늘고 있다는 점이다.

▲사용자 연료상식 낮아 = 보일러제작사들이 비정상적인 고장이 발생한 보일러에서 사용연료를 추출해보면 대부분 부생유나 정제연료유 등 공식 지정 연료 이외의 제품을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천 서구청 인근 모텔촌의 보일러 고장 역시 같은 경우다.

지난달 15일 본지 취재진이 귀뚜라미보일러의 C/S팀 관계자들과 보일러의 이상고장이 발생한 한 모텔을 방문한 결과 사용연료는 비 석유제품으로 확인됐다.

이 업체에 연료를 공급한 사업자인 경인 K사에 확인한 결과 해당제품은 정제연료유인 것으로 밝혀졌다.

K사에 따르면 이 모텔에 공급한 연료는 폐기물관리법에 규정된 정제연료유로 품질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3년전부터 인천지역에 위치한 40~50군데의 모텔과 목욕탕 등에 정제연료유를 공급하고 있지만 보일러에 문제가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문제가 된 모텔과 거래하는 과정에서 공급제품이 경유가 아닌 정제연료유라는 사실을 밝혔고 이같은 사실은 공급계약서상에도 명백하게 명시되어 있다』며 불량연료를 정상 경유로 속여 판매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해당 모텔 사업주는 『정제유가 어떤 석유제품인지도 모르고 가격이 싸고 보일러사용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K사의 설명에 제품을 공급받게 됐다』고 밝혔다.

보일러 고장과 관련한 책임공방은 비단 이 모텔만의 문제는 아니다.

귀뚜라미보일러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접수된 기름보일러 관련 A/S문의중에는 제품의 사용설명서에 명시된 공식 연료가 아닌 불량 연료를 사용하다 고장이 발생한 사례가 적지 않다.

▲용제 혼합연료 늘어 = 석유사업법이나 폐기물관리법 등에 의해 규정된 부생유나 정제연료유의 경우 품질불량 사례가 상당하다.

석유품질검사소가 지난해 7월 이후 두차례에 걸쳐 부생유 판매점에 대한 품질검사를 실시한 결과 이중 23.4%가 석유사업법에 규정된 품질기준을 지키지 않은 불량제품을 판매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폐자원의 재활용차원에서 환경부가 권장하고 관리하고 있는 정제연료유는 더욱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석유사업법에 의해 규제받고 있는 경유나 부생유와는 달리 폐기물관리법에 의해 황분이나 수분, 납 등 기초적이고 느슨한 품질기준만 적용받고 있는 정제연료유는 품질검사 의무나 사용지역, 사용시설 등에 대한 별도의 규정도 없다.

정제연료유는 폐유를 정제하는 한계상 냄새나 점도 등 품질상의 문제점이 많고 연소후 잔유물이 많아 월 1회 이상 보일러를 청소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른다.

이같은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폐유정제업자나 판매업자들은 정제연료유에 용제 등을 불법 혼합해 유통시키고 있지만 폐기물관리법에는 정제연료유의 색상이나 타 연료와의 혼합 등을 금지하는 규정이 없어 사실상 단속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생산물량에 대한 보고의무도 없어 용제와 혼합돼 「정제연료유」라는 이름으로 판매되는 연료가 얼마나 많은지에 대해서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상태다.

환경부 자원재활용과의 정관직사무관은 『정제연료유의 대한 생산량 보고의무가 없어 정확한 유통량을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연료사용자들은 정상적인 석유제품에 비해 제세부과금이 적거나 아예 없어 가격이 월등히 저렴한 이들 연료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불량연료 사용이 고장 불러 =보일러의 비정상적인 고장원인은 연료탓이 크다.

실제 불량연료를 사용할 경우 유압피스톤내 고무패킹이 변형되고 기어펌프 등 타 부속품의 고장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용제 등이 불법 혼합된 불량연료의 경우 휘발성도 강해 폭발 위험성도 높은데다 보일러기기내 제품의 마모를 일으키는 주원인이 되기도 한다,

생산사에서 보일러를 출시할 때 특정 사용연료를 지정하는 것도 보일러의 설계나 제작과정에서 보장하는 수명을 유지하고 고장을 방지하기 위한 최적의 연료이기 때문이다.

귀뚜라미보일러 CS팀의 송영철 팀장은 『경유나 보일러 등유를 연료로 사용하도록 제작된 중형보일러에 점도가 낮은 연료를 사용할 경우 윤활작용이 부족해 기어가 맞물리면서 압력이 발생하고 심각한 마모로 고장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폭발성도 높아 화재 등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석유품질검사소의 실험결과에서도 불량연료 사용의 부작용이 일부 확인되고 있다.

석유품질검사소가 지난 2002년경 연료의 윤활성이 보일러의 기어펌프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실험을 벌인 결과에 따르면 윤활성이 열악한 연료를 보일러에 사용할 경우 기어펌프의 소손(燒損)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됐다.

산업용보일러용에 대해서만 사용이 가능한 부생유가 가정용에 불법 전용되면서 보일러의 고장을 유발하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보고되고 있다.

귀뚜라미보일러에 따르면 가정용 기름보일러에서 그을음이 발생하거나 제품에 이상이 발생된다며 A/S를 신청하는 사례중 상당수가 공식사용연료 대신 값싼 부생유 등을 불법 전용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현실성있는 단속방안이 없는 형편이다.

정제연료유는 석유제품에 해당되지 않아 유사석유를 단속하고 제재하는 석유사업법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환경부의 폐기물관리법 등에도 최소한의 관리근거만 유지되고 있어 용제 등과 혼합사용되는 등의 편법에 대응할 수 있는 마땅한 방안이 없다.

이에 대해 석유업계의 한 관계자는 『부생유나 정제연료유는 정상석유에 비해 세금의무가 낮거나 면제되는데 정부의 관리감독도 소홀하다』며 『이대로 방치할 경우 불량석유 유통이 세녹스 같은 유사휘발유처럼 급속히 확산될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석유품질검사소는 정제연료유의 용제 혼합 사용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조만간 실태조사에 착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한 보일러 제조회사가 비정상적인 보일러 고장을 일으킨 사용가에서 확보한 불량연료(위부터)들과 고무패킹이 변형된 유압실린더, 고장을 일으킨 보일러 모습이다>

<김신·박인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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