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한국조세재정연구원 허경선 박사][Br]수익률 제로 맞춘 공기업과 경쟁 자체 안돼 [Br]석유공사 고유 목적성 부합 여부 등에 대한 연구 필요

[에너지플랫폼뉴스 지앤이타임즈]

▲ 한국조세재정연구원 허경선 박사
알뜰주유소의 낮은 가격이 시장질서와 공정경쟁에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온다는 분석이 석유유통시장의 화두로 떠올랐다.

국책 연구원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지난 9월 ‘공공기관의 시장참여 기능 분석’ 보고서를 발간했는데 공공기관 8개 사업 중 4개(교통안전공단의 자동차 검사, 한국석유공사의 알뜰주유소, 한국관광공사의 면세점, 한국표준협회의 교육 사업)의 경쟁중립성이 제대로 준수되지 않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 연구를 진행한 허경선 박사는 석유공사가 시장의 경쟁 활성화를 위해 알뜰주유소 사업을 직접 수행하고 있지만, 주유소 시장의 공정경쟁을 촉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허경선 박사를 만나 석유공사가 운영하는 알뜰주유소가 왜 문제가 되는지 또한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등을 들어봤다.

▲ 보고서에서 석유공사의 알뜰주유소 사업 문제점을 지적했는데 그 배경은 무엇인지.

- 공공기관의 민간 시장 참여가 시장 구축이나 과도한 공급 같은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는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지적돼 왔지만 정작 이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가 이뤄진 사례가 없다.

공공기관의 민간 시장 참여가 필요한지 또한 공공기관이 시장에 참여해서 경쟁하는게 옳은지에 대해 판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이번 연구의 목표였다.

연구에서는 공공기관 시장참여 상황을 8개의 유형으로 분류했고 그 중 5개 기관의 사업을 경쟁중립성 적용 대상으로 판단했다.

그 대상 중 하나가 알뜰주유소가 된 것이지 알뜰주유소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연구를 시작한 건 아니다.

300개가 넘는 공공기관 중 시장에 참여해 사기업들과 경쟁하는 기관의 예를 찾다 보니 알뜰주유소가 포함된 것이다.

알뜰주유소의 경우 시장 참여 타당성 면에서 민간에서도 충분히 석유유통 사업을 할 수 있는데 공공기관이 굳이 그 곳에 들어갈 필요가 있는지, 정부의 시장 개입이 필요했다면 민간과 공정하게 경쟁하고 있는지 등 두 가지가 주요 화두였다.

석유시장은 정유 4사의 독과점 구조가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고 바뀌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정부가 석유가격 인하를 권고하고 다양한 규제도 시도했지만 기름값 인하 효과가 없었다고 판단해 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형태로 석유공사기 제5의 사업자로 들어간 것으로 해석된다.

민간 자율적으로 경쟁을 촉진했다면 석유공사의 개입이 없었을 수도 있었다는 뜻이다.

▲ 하지만 보고서에서는 석유공사의 알뜰주유소 사업이 경쟁중립적이지 않다고 문제 제기하고 있다. 어떤 이유 때문인지.

- 경쟁중립성 여부는 OECD 권고안의 8가지 기준에 따라 판단한다.

우선 ▲상업적 활동과 비상업적 활동이 구분돼 있는지, 사업을 수행하는 기관이 법인화됐는지 ▲사업 수행에 필요한 자산과 공통비용에 대한 구분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 해당 사업이 민간과 비슷한 수준의 수익률을 내고 있는지 ▲ 공공서비스 책무(PSO:Public Service Obligation) 사업에 대한 예산지출이 투명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교차보조(동일 산업 내에서 한 부문의 결손을 다른 부문에서 나오는 이익금으로 충당하는 것)가 발생하는지, 사업에 대한 구분회계(사업단위별 경영성과와 재무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사업단위별로 재무정보를 산출하는 체계)가 이뤄지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또한 ▲해당 사업이 민간과 동일한 과세기준을 적용받고 있는지 ▲규제상의 혜택이나 불이익이 있는지 ▲ 재원조달 시 공공기관이라는 이유로 이자율 등에서 추가적인 혜택이 발생하는지 ▲ 정부의 사업을 수주하는 과정에서 불합리한 혜택이 있는지를 분석해야 경쟁중립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이 기준에 근거해 정부가 알뜰주유소 사업을 계속 유지하려면 시장에서 공정하게 경쟁하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연구에서는 석유공사를 포함한 분석 대상 공기업들이 경쟁 중립적이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우선 석유공사를 비롯한 공공기관들이 대부분 구분회계를 하고 있지 않았다.

공공기관이 시행하는 각각의 사업이 독립적으로 운영돼야 한다는게 경쟁중립성의 기본 요건인데 우리나라 공공기관은 아직까지 이를 전폭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어 구분회계가 제대로 시행되고 있지 않다.

알뜰주유소의 경우에는 구분회계 말고 다른 조건도 경쟁중립성 면에서 맞지 않았다.

다른 공공기관이 시장에 참여하는 경우 어느 정도의 수익성이 나는 사업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알뜰주유소는 사업을 시작한 목적, 취지 자체가 석유 가격을 낮게 가져가는 것이어서 석유공사는 이익을 내지 않는 방향으로 사업을 진행 중이다.

민간과 비슷한 수준의 수익률이 전제되지 않는 상황은 석유공사가 민간과 경쟁할 때 경쟁중립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

알뜰주유소가 석유공사의 수행하는 다른 사업과 구분이 안되기 때문에 공공서비스책무 사업 예산 지출의 투명성에 대해서도 의문이 생겼고 교차보조 사안도 명확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알뜰로 전환하는 주유소에 세제 혜택 등을 지원해주는 것도 조세중립성 측면에서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된다.

결과적으로 알뜰주유소 사업은 경쟁중립성에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

경쟁 촉진을 통한 기름값 인하라는 정부의 정책적 목표 아래 석유공사가 석유유통시장에 참여했고 석유가격 안정 등의 효과도 어느 정도 인정되는 반면 운영 과정에서 민간과 공정하게 경쟁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경쟁중립성 제고가 필요하다.

▲ 공기업이 공적 역량을 활용해 민간과 경쟁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은데 어떤 의견인지.

- OECD에서 경쟁중립성을 강조하는 배경은 시장 안의 다른 플레이어와 동일한 조건에서 사업을 운영해야 한다는 취지 때문이다.

석유공사의 알뜰주유소 사업처럼 이윤을 ‘0’에 맞추고 기름가격을 책정하게 되면 적정 이윤과 적정 가격으로 사업을 수행하는 민간 사업자들은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석유공사가 알뜰주유소 사업의 수익률을 제로 베이스에 맞출 수 있는 것은 해외자원개발이나 비축 등 본업의 다른 사업이 있기 때문이다.

즉 알뜰주유소에서 수익을 내지 않아도 다른 사업에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기름 판매가 본업인 민간 기업은 사정이 다르다.

석유 유통 과정에서 수익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사업 자체가 유지될 수 없다.

석유공사가 알뜰주유소 사업을 계속 유지하는 지속적 시장 참여자가 되겠다면 공정한 경쟁 여건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민간이 주도하는 경쟁 시장에 뛰어든 만큼 시장왜곡 가능성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공공기관이 공정 경쟁한다는 인식 자체가 없어”

▲ 보고서에서는 석유공사가 알뜰주유소 사업의 수익률을 제로로 맞추고 있는데 대한 문제도 제기하고 있는데.

- 정유사 상표 주유소들은 거래 정유사로부터 주유소 시설개선을 위한 지원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정부가 알뜰주유소로 상표를 전환하는 주유소에 시설개선자금을 지원하게 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다만 석유공사가 알뜰주유소 시설개선 자금 등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정부 세금이나 석유공사 자체 재원이 얼마나 투입되는지를 살펴볼 필요는 있다.

공공 사업을 목적으로 구축된 비축시설을 무상으로 활용하는 것은 분명 형평의 문제가 있다.

자기 자본을 들여 저장시설을 짓는 민간 정유사들은 건설과 관리 비용 만큼을 기름 가격에 반영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석유공사는 에너지 안보라는 공익적 필요로 건설한 비축시설을 알뜰주유소 사업에 무상으로 사용하고 있다.

OECD의 경쟁중립성에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공기업들도 각 사업에 들어가는 비용을 구분해야 한다.

구분회계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석유공사가 알뜰주유소 사업을 진행하면서 기존에 구축된 비축설비를 사실상 무상으로 사용하고 있고 석유 저장과 관련해 민간 사업자들처럼 추가적인 비용이 들지 않는 것은 구분회계가 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것인데 알뜰주유소 사업에 사용되는 비축설비 자산과 비용까지 포함된 구분회계 기준이 마련된다면 석유공사가 공급하는 기름가격은 현재보다 높아지게 될 것이다.

▲ 알뜰주유소 사업과 관련해 석유공사의 우월적 지위 남용 가능성이 있다면 공정거래법상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사실 공공기관이 공정경쟁을 해야 한다는 명제 자체가 아직 우리나라에서 낯설기는 하다.

공공기관은 국민을 위해 공익사업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당연히 정부 지원을 받고 정부에서도 다양한 규제나 혜택을 주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시장의 민간 플레이어들과 공공기관이 동등한 입장에서 경쟁해야 한다는 인식 자체가 아직 낯설고 그래서 공정위에서도 구체적인 입장이나 기준을 아직까지는 가지고 있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

똑같은 사업을 하는데 공공기관이라는 이유로 정부의 다양한 혜택을 받는 것을 놓고 민간 사업자들도 불평 정도만 하고 있을 뿐 우월적 지위 남용 등 불공정 사례를 공정위에 제소한 사례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에서도 공기업의 우월적 지위 남용에 대한 본격적인 대응을 시작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공정위가 한국전력공사, 도로공사, 철도공사 및 가스공사의 계열회사 등에 대한 부당지원행위와 거래상의 지위를 남용한 각종 불이익 제공행위 등을 적발하고, 시정명령과 함께 총 154억4천500만원의 과징금을, 한국전력공사와 철도공사 집단 소속회사의 공시의무 위반에 대해서도 총 5억30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결정했으며 다른 공공기관에 대해 추가 조사도 실시한다고 한다.

공정위가 문제의식을 느낀 만큼, 타 공공기관의 우월적 지위 남용 가능성에 어떤 판단을 내릴지에 대해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

▲ 산업통상자원부는 현재 알뜰주유소 자립화 방안을 검토 중인데 어떤 방향이 바람직하겠는지.

- 알뜰주유소가 독과점 상황의 정유 4사를 견제하는 효과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경쟁의 중립성은 보장돼야 한다.

지금처럼 지원금을 포함한 정부의 각종 혜택, 적정 수익률을 감안하지 않은 석유공사의 사업 추진 방식 등을 통해 기름가격을 낮추는 것은 시장의 적정 가격이 아니다.

알뜰주유소 사업이 석유유통시장 구조를 교란시키지 않으려면 비용과 적정 수익률을 감안한 시장 가격이 형성돼야 한다.

알뜰주유소 운영 주체에 대해서도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석유공사는 알뜰주유소 운영을 목적으로 설립된 공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이 사업을 계속 운영해야 하는지를 놓고 여러 의견이 있을 것 같다.

사실 공기업은 본연의 목적에 맞는 사업을 해야 하고 부수적으로 벌려 놓은 사업은 정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알뜰주유소 사업이 석유공사의 고유 설립 목적에 크게 관련되지 않는다면 석유공사가 이 사업을 계속 끌어 안고 가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별도의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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