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앤이타임즈 김신 기자] 사상 초유의 주유소 동맹휴업 사태가 일단 진화됐다.

주유소협회는 지난 12일을 기해 전국 3000여 주유소가 참여하는 동맹휴업에 나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휴업 돌입 전 날, 산업통상자원부와 막판 협상을 벌이는 모습이 연출됐고 동맹휴업을 오는 24일로 잠정 연기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주유소 동맹휴업은 대통령까지 우려하고 있을 만큼 사회 문제화되고 있다는 측면에서 주유소협회가 정부와 대화의 끈을 놓지 않았고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시키지 못했지만 일단 휴업 시점을 연기한 것은 성숙한 대화의 결과물로 긍정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그 내막을 들여다 보면 동맹휴업이라는 주유소협회의 초강수가 정부를 상대로 제대로 먹히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동맹휴업에 나서는 배경으로 지목된 ‘주간 석유수급 보고 의무화’가 사업자들이 일시에 문을 닫고 정부 정책에 항의할 만한 이슈가 아니라는 것이다.

거래상황 주간 보고는 석유사업법 등에 근거해 주유소 사업자들이 월간 단위로 거래상황 실적을 정부에 보고하던 주기를 주간 단위로 단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주유소 사업자들의 거래 상황 보고 실적이 월간에서 주간으로 단축되면 가짜석유를 포함한 각종 불법 거래 정황에 대한 신속한 판단과 단속이 가능해진다는 것이 정부측의 설명이다.
또한 주간 보고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정부는 자체 예산을 투입해 전산보고 시스템도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제도가 시행돼 가짜석유 유통이 조금이라도 줄어들면 정상 석유 거래가 늘어나 성실한 주유소 사업자들의 경영에 분명 도움이 될 수 있으니 환영할 만한 일인데 주유소 사업자단체는 오히려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 가장 큰 이유중 하나는 모든 주유소를 가짜석유 등을 판매하는 ‘잠재적 범죄자’로 규정하고 정부가 강제적인 수단을 동원해 보고 주기를 단축하며 전산 보고 의무화 등을 추진하려 한다는 것이다.

심정적으로는 주유소 업계의 억울함에 충분히 동의한다.
정부를 대신해 한 해 십 수조원의 유류세를 거두는 일선 창구가 되고 있고 에너지 수급 안정과 정품, 정량 공급에 노력하고 있는 주유소업계 전체를 범죄 가능성이 있는 사업자 집단으로 치부하고 감독을 강화하겠다고 내놓은 정책에 화를 낼 이유는 충분하다.

하지만 과연 이 사안이 동맹휴업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할 만한 이슈가 되는가에 대해서는 사회적 설득을 얻는데 실패한 듯 하다.

일부 에너지 업계 관계자들은 2000년대 초중반 사회문제화 됐던 가짜석유인 ‘세녹스’ 사태와 현재의 상황을 비교하고 있다.
법적 허점을 노려 ‘첨가제’라는 명칭으로 사실상 가짜석유인 세녹스가 전국 방방곡곡에 퍼졌고 주유소 바로 옆 노상에서 불티나게 팔려 나가며 주유소 업계의 생존권을 직접 위협했던 그 당시에도 주유소업계는 동맹휴업 같은 극단적 행동에 나서지는 않았다.
정품 휘발유를 대신해 길거리 노점상들이 가짜석유를 판매하고 있고 운전자들이 주유소 대신 세녹스를 찾는 절박한 상황에서 조차 주유소 업계는 정부에 강력한 단속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냈을 뿐 집단 휴업 같은 고강도 실력행사는 벌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최근의 동맹휴업 사태 빌미가 되고 있는 주간 수급 보고 의무제도가 세녹스 사태 보다 주유소 사업자들의 생존을 더 위협하고 있는 것일까?

주유소 포화와 석유소비 정체 등의 환경 변화로 주유소의 영업이익율은 0.43%까지 낮아지며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는 사실은 각종 통계로 확인되고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정부가 석유유통시장에 직접 개입해 알뜰주유소를 런칭하고 석유전자상거래에 특혜를 제공하면서 시장에 이중가격구조를 제공하며 일반 주유소들이 출혈경쟁에 내몰리며 줄도산하고 있는 상황을 전면에 내세워 소비자들의 이해를 구했다면 어떠했을까?

정부를 대신해 천문학적 세금을 징수하는 창구가 되면서도 유류세까지 포함된 신용카드 수수료를 주유소가 대신 부담하는 모순을 국민들에게 보다 자세하게 설명하고 억울함을 호소했다면 지금보다는 더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주유소협회 홈페이지 등에서는 정부 세금이 지원되는 알뜰주유소나 카드 수수료의 부당성을 부각시켰다면 동맹 참여율이 더 높았을 것이라는 지적도 심심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주유소협회는 동맹휴업이라는 카드로 정부를 압박하고 있지만 전략과 전술 모든 면에서 실패해 여론과 주유소 사업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상황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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