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산업에서 전자상거래가 각광을 받고 있는 배경은 상품 공급자와 구매자간 비딩(bidding)을 통한 시장 경쟁을 유도하고 합리적인 시장 가격을 이끌어 내는 효과 때문이다.

정부가 한국거래소를 통해 석유현물전자상거래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 역시 석유유통시장에 경쟁 제체를 도입하고 합리적인 시장 가격 지표를 도출해 투명성을 제고하는데 맞춰져 있다.
그런데 석유 전자상거래 출발 자체 부터가 합리적이지 못한 것이 문제다.

정부는 석유 전자상거래 활성화를 이유로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수입석유에 한정해 관세 3%를 무관세로 적용한 것은 물론이고 에특회계 재원이 되는 리터당 16원의 수입부과금은 환급해줬고 모든 시중 유통 경유에 혼합되는 바이오디젤 혼합 의무도 면제시켜줬다.

이로 인해 수입석유는 정유사가 내수 시장에서 공급하는 가격 보다 리터당 60원 가까운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내수 산업 역차별이라는 비난이 커지면서 현재는 정유사와 수입사 모두를 대상으로 수입부과금 환급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지만 역시 합리적인 시장 가격 도출과는 거리가 멀다.
석유전자상거래를 통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기름의 유통 가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석유전자상거래가 온라인상의 경쟁 입찰 과정을 거쳐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정부가 제도상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면서 근원적인 가격 격차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은 큰 문제다.

즉 석유전자상거래를 거친 석유는 자동적으로 수입부과금만큼 거래 가격이 낮아지는 구조이니 오프라인을 통해 유통되는 석유와 합리적으로 가격 비교가 되지 않고 있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경질석유중 약 9% 정도가 석유전자상거래 시스템을 거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세제 인센티브로 인해 나머지 91%에 해당되는 석유 가격까지 지배하는 모순적인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석유전자상거래 유통 석유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면서 내수 기름값 전체를 낮추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니 만족스럽겠지만 수많은 시장 플레이어들은 비정상적인 가격 구조에서 출발한 온라인 거래 석유와 비정상적인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이 같은 구조에서 형성된 석유 가격 지표가 과연 합리적일 수 있는가도 고민해볼 문제다.
석유전자상거래가 유통 과정을 축소해 기름값을 낮출 수 있을 것인가도 짚어야 할 대목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기름 시장은 정유사를 기점으로 수직계열화된 모양새다.
정유사와 석유대리점, 주유소 등의 거래당사자들이 상표권을 기반으로 중장기 적인 공급계약을 맺고 거래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유통 구조다.

하지만 석유전자상거래가 도입되면서 유통과정이 한 단계 더 추가된 모양새다.
전자상거래 도입 초기에 한국거래소는 거래 수수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모색했지만 기름값 상승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표면적으로는 접은 상태다.

하지만 전자상거래를 통한 유통 물량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거래수수료를 부과하겠다는 계획은 여전히 유효하다.
오히려 수수료만큼 기름값 상승 요인이 발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셈이다.
명분이 수단을 합리화할 수는 없다.

시장 가격 합리화와 투명성 제고라는 명분을 앞세워 출범한 석유전자상거래이지만 수입석유에 각종 특혜를 제공해 내수 산업을 차별하고 이중 가격 구조를 형성해 시장 가격을 왜곡시키고 유통단계가 추가되는 일련의 과정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석유전자상거래가 더 이상 정부의 석유 유통 시장 개입과 왜곡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

저작권자 © 에너지플랫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