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신재생에너지학회 이상훈 소장
박근혜 정부 에너지 정책의 뼈대가 될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이번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안은 우선 산업부와 국책연구기관이 에너지기본계획의 초안을 만든 후 관련분야 전문가들의 자문을 참고했던 관행에서 탈피해 처음부터 다양한 입장과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60여명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에너지기본계획 민관워킹그룹을 조직해 초안을 만들고 이를 기본으로 산업부가 산업부 안을 만드는 절차를 거쳤다.

이런 거버넌스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 수용성 악화, 9.15 순환 정전 발생, 반복적인 전력수급 불안, 밀양 송전탑 갈등 심화, 수도권 계통망 불안 등으로 정책당국에 대한 불신이 커진 반면 에너지 정책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참여 의지가 높아진 상황이 고려된 결과였다.

비록 여건에 떠밀린 수동적 선택이었지만 이는 에너지기본계획이라는 정부의 핵심적 정책 결정에서 정부 주도의 통제와 관리를 벗어나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주체적인 참여자로 협의와 합의과정을 통해서 정책을 만들어가는 새로운 거버넌스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민관워킹그룹 권고안에서 에너지 가격체계 개편이 강조되고 발전용 유연탄에는 세금을 부과하는 한편 LNG와 등유에 부과된 세금은 완화하는 세제개편안이 명시됐으며 중앙집중식 전력시스템을 분산형 전원시스템으로 개편하겠다는 방향이 제시됐다. 무엇보다도 원전의 설비 비중을 기존 계획의 41%에서 22~29%로 낮추겠다는 안이 엄청난 화제가 됐다.

하지만 포장을 벗겨보면 새로운 에너지기본계획안은 실제로 달라진 게 별로 없다.

에너지 소비 조장과 왜곡을 초래해온 에너지 가격체계를 개편하는 중차대한 과제도 전기요금 소폭 인상에서 그칠 가능성이 크며,에너지 상대가격 조정안이 나왔지만 비효율적인 에너지 소비 패턴에 충격과 변화를 주기는 역부족이고 유류 및 천연가스와 전기 간의 상대가격 해소라는 본래의 목적보다는 세수 증대의 수단에 그칠 수도 있다.

비록 원전 설비 비중을 기존 계획보다 낮췄다고 하지만 산업부 의도대로 원전 설비 비중을 현재 26%에서 29%로 높인다면 기존의 원전 확대 계획은 순항할 것이고 과도한 전기화의 추세는 꺾이지 않을 것이다.

온실가스 감축을 고려해 석탄화력발전소에 최신 온실가스 감축기술을 의무화한다고 하지만 발전자회사들도 감축기술 적용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의 현실성이 거의 없다고 지적한다.

결국 제6차 전력수급기본계획과 맥락을 같이 하는 에기본 안에 따르면 온실가스 감축은 흐지부지되고 원전과 석탄화력을 기반으로 하는 중앙집중식 전력시스템은 20년이 지나도 건재할 가능성이 높다.

분산형 전원 확대를 말하지만 수요지 근처에 들어갈 가스복합 열병합시스템은 에너지 세제개편안이 실현되더라도 대용량 원거리 석탄화력에 비해 경쟁력을 갖추기 힘들다.

이대로 간다면 분산형 전원 확대는 그럴듯한 표현일 뿐 결국 재생에너지 발전의 비중이 약간 증가하는 수준에서 그칠 것이다.

재생에너지 보급 정책은 이전보다 크게 후퇴할 전망이다.

2035년 1차 에너지의 11%라는 재생에너지 중기 보급 목표 자체도 후퇴했지만 재생에너지 산업 육성을 우선시하면서 재생에너지 보급에서 정부의 지원을 줄이겠다는 의도가 보이고 이것은 관련 예산의 감소로 이어질 것이다.

시장 경쟁력이 있는 분야를 중점 보급하겠다는 것은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시장 창출을 위한 정부 개입이 필요한 분야에서 손을 떼겠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재생에너지는 창조경제를 실현할 유력한 성장동력임이 분명함에도 이전 정부가 내걸었던 녹색성장 이미지가 강하다는 이유로 도매급으로 홀대받는 분위기이다.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은 후쿠시마 이후 원전 수용성의 감소, 전기화에 따른 전력수요 급증, 원격지 설비집중과 수도권 부하밀집에 따른 계통 불안, 송전망 증설을 둘러싼 갈등 심화, 발전부문 온실가스 감축 등 심각한 도전과 난제에 직면해 있다.

이번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은 이런 도전과 과제에 슬기롭게 대응하여 지속가능한 에너지 정책을 구축하는 것이 시대적 과제였다.

하지만 결과는 민관합동워킹그룹 운영과 그럴듯한 표현이 넘치는 권고안에도 불구하고 계획 기간 동안 원전 비중 확대, 전기화 추세 지속, 발전부문 온실가스 증가, 발전단지 대규모화와 장거리 송전 구조 고착 등 상황을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정리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번 에너지기본계획안은 에너지 정책이 여전히 산업 진흥과 수출 확대, 물가 안정 논리에 밀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 정책은 여전히 에너지다소비업계와 기존 에너지업계가 주축이 된 산업계의 이해에 휘둘리고 있다.

산업 진흥과 수출 확대에 떠밀려 독자성을 유지하지 못하는 에너지 행정을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분리해 독립시킬 때, 비로소 지속가능한 에너지 정책을 향한 의미 있는 변화가 가능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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