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시절 기름값을 잡겠다고 추진되던 석유유통구조개선 3대 핵심 과제는 알뜰주유소 보급 확대와 석유전자상거래 구축, 혼합판매주유소 활성화다.

알뜰주유소는 연내 1000곳을 목표로 맹렬이 달려가고 있고 한국거래소의 석유전자상거래에는 정유사들도 참여하고 있으니 가시적인 성과로 내세우기에 부족하지 않은 모양새다.
문제는 혼합판매주유소인데 정권이 바뀐 현재까지 단 한곳도 등장하지 않고 있다.

혼합판매주유소란 정유사 상표를 도입하면서도 복수의 넌브랜드 석유제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된 변형적 형태의 주유소다.
특정 정유사와 공급계약을 맺은 주유소가 타 정유사나 수입석유까지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되면 거래 정유사에 대한 협상력이 높아져 기름값을 낮출 수 있을 것이라는 ‘정부의 상상’에서 출발한 정책으로 혼합판매 주유소만 활성화된다면 기름값 안정화의 3대 핵심과제를 모두 실현하며 마침표를 찍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혼합판매 주유소 활성화는 억지로도 안되는 모양이다.
개별 주유소 사업자를 대신해 정부가 나서 정유사와 혼합판매 전환 협상을 하겠다며 지원센터까지 구축했지만 아직까지 성과가 없다.

지원센터 등을 통해 정부는 지난 8월까지 총 70여 곳에 달하는 혼합판매 희망 주유소 신청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중 단 한 곳도 현실화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혼합석유판매를 신청한 주유소중 거래 정유사와 잔여 계약기간이 남아 있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아직은 구체적 협상을 진행할 단계가 아니라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 보면 혼합석유판매에 대한 주유소 사업자들의 기대치가 지나치게 높은 것이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에 혼합석유판매 전환을 신청할 때 해당 주유소는 희망하는 혼합석유 판매 비율을 명시하는데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 주유소는 혼합석유 판매 비율을 100%로 적어 냈다.
특정 정유사 상표를 달면서 실제 판매하는 석유는 모두 혼합 석유로 채우겠다는 것인데 상표권자인 정유사가 허락하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판매량중 60~70%를 혼합석유로 채우기를 희망하는 주유소들도 적지 않다.
절반 이상의 석유제품을 혼합석유로 판매하겠다는 것은 정유사 브랜드를 고객을 유인하는 미끼로만 활용하겠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본지 확인 결과 혼합석유 판매를 신청한 총 73곳의 주유소중 44곳이 판매석유중 50% 이상을 상표를 내건 정유사 이외의 제품으로 채우겠다는 의사를 보이고 있는데 이런 상황을 소비자가 수긍할 것인가가 궁금하다.

혼합석유의 품질이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다.
‘A’라는 상표를 선택해 찾아간 주유소에서 정작 판매하는 기름의 상당량이 정체를 알 수 없는 혼합석유라면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상표권에 대한 정보는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
소비자가 ‘사기’라고 항변해도 변명할 여지가 없게 된다.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는 주유소 혼합석유 판매 활성화의 법적 수단을 확보하기 위해 ‘주유소 혼합판매 거래기준’이라는 것을 만들어 허용 가능한 혼합판매비율을 20%로 규정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유야무야됐다.
혼합석유판매 활성화로 3대 석유유통구조 개선 정책의 치적을 마무리하기 원하는 산업부가 대신 그 바통을 이어 받아 혼합석유 판매 활성화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지만 밑고 끝도 없는 모양새다.
혼합석유 판매 희망 비율은 상표권자인 정유사가 수용하기 어려운 수준이 대부분인데도 협상 대리인 격인 정부는 원안 그대로 정유사에 들이 밀고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그 과정에서 정작 브랜드 사용 주체인 소비자들의 생각은 안중에도 없다.
정유사 브랜드를 내걸고 혼합석유를 100% 판매하겠다는 주유소를 소비자들이 받아 들일 수 있을 것인지, 기름 사용자들은 정유사 상표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고 있으며 왜곡된 상표 정보의 전달을 인내할 의사가 있는지 등은 무시한 체 정부는 시장에서 혼합석유 판매주유소를 만들어 내는데만 몰두하고 있다.
성과에 급급한 나머지 정부가 헛바람들어 있으니 정책을 따르는 주유소 업계에 합리적 판단을 요구하는 것도 무리다. 혼합석유 판매에 대한 정부의 풍부한 상상이 100% 혼합 석유를 판매하는 정유사 브랜드 주유소를 만들어 낼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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