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37℃가 넘는 폭염속에서 냉방기 가동이 멈추고 조명까지 꺼진 사무실.

전력을 아끼겠다고 냉장고 전원을 뽑는 정부 청사도 있다고 한다.
더위를 견디다 못한 한 공공기관은 건물 외벽의 통유리까지 뜯어냈다는 소식이다.
어두컴컴하고 덥고 습한 그 공간에는 인간 난로들이 헉헉대고 있다.
36℃가 넘는 신체온도에서 내뿜어지는 열기는 실내온도를 더욱 끌어 올린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아예 오전 근무만 하는 공공기관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상적인 행정력이 발휘되는 것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긴 장마 끝에 찾아온 폭염속에 연일 전력 경보가 발동되고 있고 대한민국 행정력은 온통 전력수급위기 극복에 맞춰져 있다.
 
민간도 다르지는 않다.
에너지 다소비 사업장들은 전력피크에 맞춰 휴가를 집중하고 있고 자가발전기 등을 가동하면서 중앙 전력 시스템 부하를 줄이기 위해 안간 힘을 쓰고 있다.
도심지 커피숍이나 패스트푸드 매장으로 사람들이 몰리지만 정부의 냉방온도 규제로 연신 부채질하는 손님들도 가득찼다.
 
올해 전력난의 가장 큰 원인은 정부의 전력수요 예측 실패에도 원인이 있지만 원전 비리에 따른 발전소 가동 중단이 가장 큰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시험성적서 등이 위조된 불량 부품을 사용한 원전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에 가동이 멈췄고 전력공급에 차질을 빚으면서 나라 전체가 찜통더위에 내몰리고 있다.
 
정부의 행정 과실의 댓가를 국민들이 책임지고 희생해야 하느냐는 볼멘 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지만 정부청사나 공공기관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절전 백태를 바라보면서 인내심을 가져볼 만 한데 이런 상황에서 전력 관련 공공기관의 최상위에 서있는 한국전력의 부사장이 검찰에 체포됐다는 소식이다.
 
원전을 담당하는 한국수력원자력 전 사장을 비롯한 임직원들이 원전비리에 연루돼 줄줄이 구속되거나 체포된 것도 모자라 발전사 모기업인 한전 최고위 임원의 부정 행위까지 적발됐다.
원전 비리의 몸통은 도대체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OECD회원국이고 G20정상회의를 개최했으며 세계 10대 경제 강국에 진입한 대한민국의 현주소는 여전히 후진적 비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국가 에너지 안보의 핵심인 원전에 위조 성적서가 부착된 부품이 사용되는 그저 그런 나라에 불과하다는 자조가 터져 나올 만 하다.
 
다만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국가적 어려움에 대처하는 현명함과 인내심은 세계 선진국 수준이 틀림없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찾을 만 하다.
대한민국 블랙아웃의 위기를 국민들은 불량한 행정에 대한 비난과 불평보다는 절전에 동참하는 인내로 되돌려주고 있으니 IMF 외환위기 당시의 금모으기 운동에 비견될 만 하다.
 
정부는 대규모 신규 발전기 준공을 내세워 향후 전력난 해소 기대감을 국민들에게 홍보하고 있지만 이에 앞서 원전비리와 관련한 성역없는 철저한 수사와 전력수급 실패를 진심으로 인정하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정부 행정기관과 공공기관들이 소등하고 냉방기 가동을 멈추며 폭염을 견디는 모습 조차도 ‘쇼’로 전락할 수 있다.
부디 국민 만큼 성숙한 정부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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