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신 편집국장

성과 지향적인 정책의 끝은 화(禍)로 돌아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석유공사 대형화 정책이 그 꼴이 되고 있다.

감사원이 이명박 정부 당시의 석유공사 경영 성적을 감사한 결과에 따르면 정권 출범 직전인 2007년 당시 3조7000억원에 그쳤던 부채가 2011년 말에 20조8000억원으로 급증했다.

부채 규모가 늘어난 만큼 석유공사의 몸집은 커졌지만 기형적 모습이다.

정부가 성과 지표로 삼고 있는 자주개발율을 늘리기 위해 눈에 보이는 원유 확보에만 급급하면서 생산광구와 해외자원개발기업을 인수하는데 몰두했고 그 결과 탐사광구에 대한 배려는 실종됐다.

탐사 광구 투자 비중이 2007년 47.6%에서 2011년 8.5%로 급감한 것이다.

그렇다고 생산광구나 해외자원개발 기업 인수가 성공적인 평가를 받는 것도 아니다.

캐나다 하베스트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석유공사는 무려 1조3400억원의 덤터기를 썼다.

석유공사는 당초 이 회사의 탐사, 개발, 생산 부문만 인수하기로 했는데 하베스트가 계약 체결 직전 입장을 바꿔 경제성이 떨어지는 정제 부문까지 떠넘겼고 매각대금도 당초의 3조1500억원에서 4조4900억원으로 높여 주문한 것을 석유공사가 수용한 것이다.

석유공사를 상징하는 각종 지표들도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감사원에 따르면 BP와 엑손 등 해외 메이저 기업들의 탐사 성공률이 최대 30%대에 달하는데 반해 석유공사는 대형화 작업이 본격화된 2008년에 3%까지 추락했다.

석유공사가 인수했거나 지분 투자한 광구들 역시 손실투성이다.

감사원이 총 30개 광구를 평가한 결과 최초 인수금액과 사업 투자액 보다 원유 수입 등으로 회수했거나 지분 등의 현재 가치를 평가한 금액이 현저하게 적었다.

그 차액만 무려 12억3000만 달러에 달한다는 것이 감사원의 지적이다.

무리한 외형 키우기 과정에서 단기 차입금에 의존하면서 석유공사는 이제 빚을 내서 빚을 갚아야 하는 처지까지 내몰리고 있다.

올해 석유공사의 지출 계획이 7조원대인데 반해 자원개발 투자 및 차입금 상환에 5조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100위권 밖에 머물던 석유공사의 원유 생산 능력은 세계 70위 권까지 뛰어 올랐지만 상처 뿐인 영광이 되고 말았다.

하루 원유 생산량이 30만 배럴을 넘고 대형화에 성공한다고 해도 막대한 부채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또 그간 인수한 생산광구나 해외자원개발 기업에서 수익 창출을 이끌어 낼 방안은 있는지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이런 공기업에 정부는 기업 본질과 무관한 알뜰주유소 사업까지 떠맡기면서 석유공사는 직접 석유 수입사업에 나서고 있고 주유소 등 거래처에 외상 여신까지 제공하며 가뜩이나 부족한 자원개발 등의 예산의 씨를 말리고 있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정권의 힘 앞에서 공기업은 그저 따를 수 밖에 없지 않느냐’고 항변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정권도 결국 국민이 힘을 빌려 준데 불과한 것이고 공기업이 존재하는 대의명제 역시 국민을 위해서다.

정권의 힘을 쫒은 결과로 석유공사가 유탄을 맞게 됐다는 핑계가 부실 경영의 책임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다.

치적의 수단으로 정권이 석유공사의 정체성을 흔들어서도 안되지만 석유공사 역시 정권에 해바라기하기 보다 국가 에너지 백년대계를 책임진다는 소신을 망각해서는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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