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신 편집국장
정유사 계열 석유대리점들이 석유수입업에 진출하고 있다.

상징적인 수입업 진출 뿐만 아니라 실제 석유를 수입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석유 도소매 사업자인 대리점이 석유수입에 직접 나서지 못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정유사와 대리점간 특수한 관계를 알고 보면 얼마나 이례적인 일인지 이해할 수 있다.

정유사와 대리점은 일종의 혈맹(血盟) 관계로 해석될 수 있다.

원유를 도입해 정제, 공급하는 정유사는 계열 석유대리점을 통해 시장을 관리한다.

정유사 상표를 도입한 주유소는 물론이고 정유사를 대리해 현물시장 등을 통해 석유를 공급하고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역할을 대리점에 맡기고 있다.

정유사가 직접 도소매 시장에 개입하는 것이 비용 효율 면에서 떨어지는 것도 석유대리점을 통해 시장을 관리하는 이유지만 공급 과잉 시장에서 제한된 시장 수요를 놓고 정유사끼리 직접 과열 경쟁하기보다 한 발 물러나 대리전을 치르는 첨병 역할을 맡기려는 의도가 더 짙다.

그 댓가로 정유사들은 계열 석유대리점에 영업권역을 보장해주는 것이 관례다.

정유사와 대리점은 일종의 동체(同體) 개념으로 볼 수 있는데 그런 석유대리점들이 석유수입업에 나서는 것은 혈맹 관계의 해체(解體)를 의미하는 것이니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수입사는 정유사와 경쟁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정유사 계열 석유대리점들이 석유수입사업에 나서는 이유와 관련해 정유사의 전략적 선택이라는 분석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한국거래소가 운영하는 석유전자상거래를 통해 유통되는 수입석유에 파격적인 특혜를 제공 중이다.

정유사 수입 원유에 3%의 관세가 부과되는데 반해 완제품 수입 석유는 무관세를 적용받는다.

정유사는 원유 수입 과정에서 리터당 16원의 부과금을 내야 하는데 석유수입사들은 이것도 면제받는다.

정유사에 의무화되어 있는 바이오디젤 혼합도 적용받지 않는다. 내수 시장 경쟁 촉진을 이유로 수입석유에 인위적인 특혜를 제공해 리터당 50원 가량의 가격 경쟁력을 제공하면서 수입경유의 내수 시장 점유율은 10%를 넘어선 상태다.

에너지 안보를 목적으로 내수 판매량을 기준으로 일정 물량 이상을 의무 비축하도록 하던 것도 석유수입업자에 대해서는 하향 적용시켰다.

석유 비축 물량이 줄어드는 만큼 수입사 입장에서는 재고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유사들은 수입석유에 맞서 정상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이 못된다고 울상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특혜를 제공하는 수입석유를 쿼터로 제한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상반기 쿼터 물량은 휘발유는 70만 배럴, 경유는 300만 배럴로 묶여 있다.

쿼터 한도가 찰 경우 특혜를 받지 못하는 만큼 먼저 수입하는 것이 장땡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정유사가 계열 석유대리점의 수입사업 진출을 허용하거나 묵인해 전업 수입사의 시장 지배력을 줄이려 한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그렇다고 문제가 될 것은 없다.

정상적인 법적 절차를 거쳐 수입업에 등록했고 정부가 제도적으로 허용한 방식으로 수입 석유 특혜를 향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설령 정유사가 직접 석유를 수입해 무관세 혜택 등을 받는다고 해도 시비를 삼을 수 없다.

정유사는 법적으로 엄연한 석유수출입 사업자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정유사간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조성한 수입 특혜 시장에 오히려 정유사가 참여해 과실을 챙긴다는 비난을 살 수 있겠지만 정부 의도가 시장 기름 가격을 낮추는데 있는 만큼 정유사가 그만큼의 기여를 하면 문제될게 없다. 이 보다는 원유 정제 사업자가 남아 도는 석유를 놔두고 수입 시장에 나서거나 계열 대리점을 동원하는 것이 상식적인 선택인가 하는 점이 모순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아이러니한 모습은 어디서 출발하고 있는 것인가?

정부의 잘못된 판단 때문이다.

공정한 경쟁의 룰을 만들어야 할 정부가 오히려 글로벌 스탠다드에 위배되는 수입 석유 특혜를 제공하며 시장에 개입하고 있으니 생존권 보호 차원에서 정유사나 관련 대리점들이 고육책을 찾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쿼터에 묶인 수입석유 특혜 물량을 확보하는 것이 경쟁관계인 전업 수입사로부터 시장을 지키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형평에 어긋난 잣대를 들이대며 경쟁하라는 정부 정책이 시장의 아이러니를 양산하고 있으니 웃지도 울지도 못할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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