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현 현대오일뱅크 상무
고유가로 국내 휘발유 판매가격이 고공 행진중이다.

고유가 상황의 지속으로 국내 석유가격 결정방식을 국제 제품가격 연동방식이 아닌 원유가격 연동방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부 시민단체 및 국회, 학계에서 거론되고 있다.

국내 석유가격은 1997년 석유시장 자유화 조치 이전과 이후로 크게 나누어볼 수 있다.

1993년까지 정부에서 공장도 최고 가격을 결정하는 정부 고시가격 제도가 시행되다 1997년 유가자유화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원유도입가격과 환율변동에 따라 매월 최고가격을 결정하는 유가연동제를 한시적으로 시행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유가 상승기 소비자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고 반대로 유가 하락기 발생하는 정유사의 손실을 보전해 주기 위해 유가완충기금 제도가 운영되기도 했다.

하지만 1997년 정부의 석유시장 개방화 조치로 국내 석유 시장도 국제 시장에 개방됐고 정부 통제 아래 있던 가격 결정제도가 자유화되며 정유사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으로 바뀌게 됐다.

다만 유가 자유화 초기에는 유가 연동제 시기에 적용했던 가격 결정 방식을 원용해 단순히 원유가격과 환율 변동폭을 반영해 국내 석유 가격을 결정했는데 2000년 초 부터 원유가격 대비 국제 제품가격이 낮은 현상이 지속되면서 시민단체, 언론, 국회 등에서 국제 가격을 기준으로 국내 석유제품 가격이 결정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또한 국제시장에서 싼 가격의 석유 수입이 증가하면서 내수 시장 점유율이 10% 가까이 차지하면서 정유사들도 수입 석유제품과 경쟁하기 위해 자연스레 국제 가격 기준으로 국내 가격을 책정하게 됐다.

즉 싱가포르 현물시장에서 거래되는 국제 제품가(MOPS, Means of Platts’ Singapore)에 환율을 고려하고 관세·부과금 및 유통비용과 시장경쟁 상황 등을 감안해 매주 국내 석유 판매가격을 책정하게 됐고 최근에는 수요 공급, 국제 제품가격 변동 등을 반영해 매일 시장가격을 변동시키고 있다.

국내 석유제품 시장이 개방되고 자유화 되면서 원유가 아닌 국제 제품가격을 기준으로 수요와 공급원칙에 의해 국내 석유제품 판매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을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 고유가 상황이 지속되면서 일부에서 원유가격을 기준으로 가격을 책정할 경우 석유제품 가격을 낮출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이같은 주장은 일반적으로 원유가격이 석유가격에 비해 가격 변동폭이 적고 석유제품은 통상 30~45일전 계약한 원유로 생산해 유가 상승기에는 원유가격을 기준으로 가격을 책정할 경우 국내 가격을 낮출 수 있다는 의견으로 일견 타당성이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국내 석유 시장이 개방되어 있는 상황에서 원유가격을 기준으로 가격을 책정할 경우 여러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먼저 국제유가가 하락할 경우 일반적으로 석유 가격이 더 크게 하락해 국제 석유 가격보다 국내 석유제품 가격이 더 높게 유지될 수 있다.

국제유가가 하락할 경우 수입 석유가 증가하고 국제유가가 상승할 경우 수출 증가로 국내 석유제품 수급 불균형도 초래할 수 있다.

연산품인 석유 특성상 개별 석유제품의 원가 산정이 불가능하고 개별 석유 가격에 사용되는 부가가치의 적정성에 대한 객관적 기준 마련이 어렵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원유가격 기준으로 결정되는 국내 석유 가격과 국제 제품가격으로 거래되는 수출 가격으로 인한 이중가격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국민경제에 매우 민감한 석유 가격 결정 방식은 유가가 급변하거나 고유가 상황에서 항상 논란이 되고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국내 석유시장은 과거와 달리 개방화되고 자유화되어 언제든지 수입 석유제품이 밀려 들어올 수 있고 석유시장이 개방된 미국, EU, 일본 등 선진국에서도 국제 가격을 기준으로 내수 가격을 결정하고 있다.

또한 철광석에서 생산되는 냉연강판, 열연강판, 후판 등 각종 철강제품들도 철광석이 아닌 개별 철강제품의 수요와 공급 및 국제 시장에서의 가격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국내 석유 시장에서 경쟁하는 것은 원유가 아닌 석유제품이며 역내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되는 국제 제품가격을 기준으로 가격을 결정하는 방식이 더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저작권자 © 에너지플랫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