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신 편집국장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알뜰주유소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내세운 명분은 양질의 석유제품을 싼 가격에 공급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실행 수단으로 정부는 전국 400여 석유 유통망을 거느린 농협의 바잉파워에 에너지 공기업인 석유공사를 편승시켜 석유 공동 구매 사업을 벌이면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소비자가 신뢰할 수 있는 양질의 석유제품을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것은 가짜석유 단속 법정 단체인 석유관리원에게 맡겼다.

알뜰주유소 가입 조건으로 석유관리원과 품질보증협약을 의무적으로 체결하도록 한 것이다.

품질보증프로그램은 주유소가 가짜석유 단속 법정 단체인 석유관리원과 협약을 맺고 매월 1회 불시 품질 검사를 벌이는 대신 품질인증마크를 부여받는 제도다.

그 비용중 90%도 정부가 지원한다.

정부가 보증하는 석유 유통 브랜드를 도입하기 위해서 알뜰주유소에 철저한 품질 관리 의무를 부여했고 소비자에게는 석유관리원이 부여하는 품질인증마크를 통해 믿음을 심어주려는 조치였는데 알뜰주유소 출범 수개월 만에 정부는 품질보증협약 의무화를 폐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알뜰주유소 진입을 희망하는 업소중 품질보증 가입요건에 부담을 느끼는 곳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결국 알뜰주유소의 진입 장벽을 낮춰 그 수를 늘리겠다는 것인데 알뜰주유소의 양적 팽창에만 몰입된 정부 정책에 실망감을 금할 수가 없다.

정부가 알뜰주유소 가입 요건으로 품질보증협약을 의무화시킨 배경은 알뜰주유소 유치 주요 타깃인 자가폴 주유소의 석유 관리 능력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2007년 이후 지난해까지 5년간 가짜석유 적발율은 자가상표 주유소가 4.66%를 기록해 정유사 평균 대비 5배 수준에 달했다.

자가상표 주유소는 정유사에 얽매여 있지 않아 알뜰주유소로 전환시키기 용이한 반면 가짜석유 취급율이 월등히 높아 보다 강력한 품질관리시스템이 필요했고 그 수단으로 제시된 것이 품질보증협약 의무였다.

알뜰주유소가 엄격한 품질관리의무를 져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알뜰주유소는 정부로부터 일반주유소에 비해 차별적인 특혜를 받고 있다.

정부가 보증하고 홍보하는 석유 유통 브랜드를 도입한 것 자체가 엄청난 마케팅 효과로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예산으로 알뜰주유소의 가격표시판ㆍ폴사인 전환 비용중 최대 2300만원을 지원하고 셀프주유 시스템으로 바꿀 경우 업소당 5000만원 한도내에서 소상공인 자금을 융자해주고 있다.

기름 구매 자금을 정부가 나서 알선하는 사업도 추진한다.

에너지공기업인 석유공사가 신용보증기금에 자금을 출연하고 시중 은행과 협약을 맺어 알뜰주유소 기름 구매 자금 융자를 지원하는 것인데 보증료 면제, 이자율 감면 같은 혜택이 제공된다.

석유 공급권자인 석유공사는 자체 비축시설을 활용해 기름값이 낮은 시점에 정유사로 부터 대량 구매하는 사업도 벌인다.

정부의 브랜드와 예산, 설비 등이 총망라돼 알뜰주유소 운영에 직간접적으로 지원되는 셈이다.

그런 만큼 알뜰주유소는 철저한 석유 품질 관리 의무를 지는 것이 당연하다.

파격적인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알뜰주유소로 전환했는데 가짜석유를 판매하거나 무자료 거래 등 불법을 저지른다면 정부에 대한 소비자 신뢰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는 명분도 잃게 된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알뜰주유소를 런칭시킨 것이 정당한지에 대한 논란이 수그러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알뜰주유소에 보다 엄격한 의무와 책임을 요구해야 하는 정부가 오히려 품질관리를 포기하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알뜰주유소 수를 늘리는데만 올인하다가는 정부의 자승자박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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