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신 편집국장
경제활동에서 규제는 필요악이다.

규제가 없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경제 질서를 세우고 게임의 룰이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규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다만 규제를 최소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가 규제개혁위원회를 설치하고 각종 행정 규제의 타당성을 심의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1997년 석유산업을 자유화하면서 석유사업자에 대한 다양한 규제를 풀었다.

특히 석유수입사나 석유대리점 등 석유 유통 사업자에 대한 시장 진입 장벽을 최소화시켰고 수많은 업체들이 석유사업자의 지위를 얻게 됐다.

하지만 지나친 규제완화로 옥석을 가릴 수 있는 최소한의 여과장치조차 마련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해 기준 등록 석유대리점은 635곳에 달하고 있다.

석유대리점의 역할이 정유사와 주유소간 도매 사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해상유 대리점을 빼더라도 산술적으로 대리점 한 곳 당 영업 가능한 주유소는 30~40곳에 불과하다.

정유사와 주유소간 직거래가 가능해 대리점 영업범위는 더욱 좁아지게 된다.

사정이 이런데도 대리점이 차고 넘치는데는 정상적인 석유도매 사업보다는 다른 꿍꿍이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관련업계의 설명이다.

대리점 등록 요건으로 정부는 석유 도매 사업에 반드시 필요한 저장시설이나 수송장비를 임차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저장시설을 갖추는데 굳이 자기 자본이 투입되지 않아도 되니 석유대리점 사업자의 지위를 얻는 것은 너무나 쉽다.

진입장벽이 지나치게 낮다 보니 불량 사업자들이 대리점에 진출해 가짜세금계산서 발급 같은 자료상에 나서거나 가짜석유 판매, 무자료거래 같은 다양한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

문제는 불법 사실이 적발될만 하면 폐업하고 또다시 새로운 대리점을 등록시켜 말을 갈아타면 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한해 폐업하는 석유대리점은 평균 100여곳, 새로 진입하는 곳도 100여곳 수준에 달하고 있다.

이중 상당수는 불법을 저지르고 폐업한 이후 새롭게 등록하는 경우라고 관련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석유도매사업에 필요한 저장시설과 수송장비를 갖추고 정상적으로 세금내며 정품 석유를 유통시키는 건강한 석유대리점들은 불법과 편법을 일삼으며 가짜석유를 유통시키고 가짜세금계산서를 남발하는 불량대리점들 때문에 어지러워진 석유 유통 시장에 내몰리고 있다.

석유수입사 역시 마찬가지다.

수십여 석유수입사가 정부에 등록되어 있지만 지난해 실제 석유를 수입한 곳은 5곳에 불과했고 수입물량 역시 극히 미미한 상황이다.

2000년대 중반 석유수입사의 제세공과금 탈루, 석유 선입금 사고, 다단계 금융사고, 가짜석유 유통 등 다양한 부작용이 발생하면서 정부는 석유수입사의 시장 진입 장치를 강화시켰는데 최근들어 정유사와 경쟁구도를 형성한다는 이유로 저장시설이나 비축의무 완화같은 조치를 취하고 있다.

시장 참입자가 많을수록 경쟁의 효과가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역할에 걸맞는 최소한의 자격요건을 심사하고 관리하는 것은 정상적이고 건전한 사업자를 보호하고 시장 질서를 유지시키는데 반드시 필요하다.

애초부터 정상적인 석유수입사나 대리점 사업을 벌일 의지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손쉽게 불법을 저지르고 생명을 유지해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규제 완화의 목적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때다.

문제가 있다고 규제를 강화해 진입장벽을 치는 것이 최선책은 아니지만 폐해가 심각하다면 규제로 질서를 잡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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