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신 편집국장
역대 정권을 통틀어 보수인가 진보인가와 상관없이 주요 공공기관 사장을 포함한 임원 자리는 보은성 낙하산 인사의 전유물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정권 말기가 다가올수록 그간 챙기지 못한 인사들을 공기업 임원 자리로 배려하는 일들이 빈번했다.

하지만 현 정권은 석유공사와 가스공사 등 주요 에너지 공기업 사장들의 연임을 전격 결정했다.

지식경제부 장관까지 나서 청와대에 주강수 가스공사 사장 등의 연임을 직접 건의했을 정도니 과거 정권과는 분명히 차별화된다는 평가다.

석유공사 강영원 사장과 가스공사 주강수 사장, 지역난방공사 정승일 사장, 광물자공사 김신종 사장이 연임되며 경영의 연속성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들 공기업 사장들이 확고한 경영 철학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주문한다.

청와대나 정부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예스맨’이 돼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당초 연임 가능성이 제기되던 한전 김쌍수 사장은 임기를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상태에서 전격적으로 자진 사임했다.

김 사장이 사임하게 된 결정적인 배경은 소액주주 일부가 한전의 전기 요금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며 소송을 제기한 영향이 컸다.

한전이 전기 요금을 올리지 않아 경영상태가 악화됐다며 김 사장을 상대로 주주대표 소송을 제기한 것인데 김 사장은 지난 8월 퇴임식에서 정부를 강도높게 비난하며 경영 철학과 정부 정책간 괴리가 상당했음을 보여줬다.

김쌍수 사장은 퇴임식에서 “정부가 공기업은 적자를 내도 괜찮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물가 안정을 이유로 원가에도 못미치는 전기 요금 정책을 정부가 고수하고 있는 것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김쌍수 사장의 전격적인 사의 표명은 한전과 마찬가지로 원가 인상 요인을 도매 요금에 반영하지 못하는 가스공사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스공사 역시 공기업이면서 기업이 공개되며 수많은 일반 주주들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상장기업이다.

연임이 결정된 가스공사 주강수 사장은 물가 안정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는 현 정권의 입맛에만 맞추는 수동적 경영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가를 한전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최근 석유공사 강영원 사장은 기자들과 만나 석유공사가 나서면 민간 정유사보다 리터당 100원 정도 싸게 석유제품을 공급할 수 있다고 말해 화제를 모았다.

민간 정유사와 석유 수입업자 등을 대상으로 입찰을 붙이면 자가 상표 주유소에 공급할 수 있는 물량을 확보할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해외자원개발과 비축 안보 확보가 주요 임무인 석유공사를 앞세워 정유사를 견제하겠다며 석유수입과 유통 사업에 진출시키려는 정부 방침에 호응한 석유공사 CEO의 첫 공식 입장인데 현실 가능성과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잘 알려진 것처럼 해외자원개발 기업과 광구 인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석유공사의 부채는 19조원 수준에 달하고 있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석유공사의 해외 자원개발 치적중 하나인 이라크 쿠르드 유전 개발 사업이 사실상 깡통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고 해외 인수업체 실적을 제외한 석유공사의 순수탐사성공률이 4%밖에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석유공사는 경영의 기본인 선택과 집중에 충실해 해외자원개발 사업의 성과를 어떻게 극대화시킬 수 있는가에 충실해야지 정권의 요구를 쫓아 민간 석유 유통시장에 진입하고 에너지를 낭비할 여력이 없다.

경영의 연속성을 보장하기 위해 이례적으로 에너지 공기업 CEO들의 연임을 결정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정부의 일방적인 지시만 따르며 소신있는 경영철학을 외면하게 된다면 오히려 더 큰 화를 부를 수도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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