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신 편집국장
정유사는 당초의 기름값 인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주유소는 정유사의 가격할인요인을 자체 흡수했다는 이유로 지탄을 받고 있다.

한 술 더 떠 기름 수급난을 둘러 싸고 정유사와 주유소간 책임 공방으로 비화되고 있다.

주유소의 기름 판매가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진 것과 관련해 정유사는 주유소의 사재기에 의혹을 돌리고 있고 주유소업계는 정유사의 공급물량 제한 정책을 비판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런데 사정을 들여다 보면 정유사와 주유소가 ‘악덕 기업’으로 지탄을 받아야 할 이유도 또한 정유사와 주유소가 서로에게 손가락질 하며 다툴 이유도 없다.

정유업계는 지난 4월 7일 이후 주유소에 공급하는 소비자 가격중 리터당 100원을 할인하겠다고 선언했다.

소비자 부담을 줄이기 위한 자발적 조치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실은 기름물가 안정을 주문하는 정부의 압박이 주효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감세를 우려한 정부가 유류세 인하에는 소극적이면서 민간 기업인 정유사의 팔목을 비틀어 기름값을 내리도록 한 것이니 오히려 억울한 것은 정유사와 주유소다.

실컷 호주머니 털었더니 덜 내놨다고 야단맞는 꼴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정유사들이 리터당 100원씩의 기름값을 인하하겠다고 소비자들에게 약속한 만큼 시장의 신뢰 측면에서 지켜지는 것이 옳다.

이와 관련해 석유시장감시단측은 정유사나 주유소들이 실제 인하한 기름값은 리터당 60원선에 그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고 정유사들은 국제유가 변동분을 반영해 충실하게 가격 인하분을 반영했다고 밝히고 있으니 논란의 여지는 남겨져 있다.

하지만 4월 이후 무려 3개월 동안 정유사들은 수천억원대의 영업이익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 사실인 만큼 설령 인하폭이 소비자 성에 차지 않았다고 손가락질만 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정부의 무성의와 방관자적인 태도를 탓하는 편이 소비자 입장에서는 더욱 현명하고 정서적 만족을 얻을 수 있다.

정부는 하반기 경제 정책 운용 방안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유류세 인하를 검토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유류세 인하를 검토할 수 있는 때를 정부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130불을 넘어설 때라고 설명하고 있다.

2008년 초고유가 시절을 제외하면 과거 수년간 국제유가가 130불대를 넘어선 경우가 없고 주요 에너지 전문가들은 향후로도 이 정도 수준까지의 폭등은 예상하고 있지 않으니 사실상 유류세를 인하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지난 해 이후 국제유가가 상승세로 접어 들면서 가장 큰 수혜자는 정부다.

기름값에 연동되는 관세와 부가가치세의 특성상 이들 세수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민간 기업을 앞장세워 기름값을 낮추도록 압박하고 있고 끊임없이 석유 유통 경쟁 촉진방안을 찾는데만 몰두하고 있다.

기름 물가를 워치독하는 시민단체인 소비자시민모임은 지난 달 27일 정유사의 기름값 인하효과를 평가하는 토론회를 열었는데 그 자리에 정유업계는 참석하지 않았다.

기름값 인하의 두 민간 주체인 정유사와 주유소 업계가 불려 나와 기름값 인하 효과가 미흡한 이유를 서로에게 따지고 손가락질 하는 모습을 연출하며 심판하는 자리에 끼지 않겠다는 의도로 알려지고 있는데 십분 이해되는 대목이다.

보따리 내주고 뺨 맞는 석유업계를 대신해 이제부터는 소비자들이 나서 정부의 무성의를 견제하고 탓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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